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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교훈/신약 생활의 원리 - 놀만 B,해리슨

신약 생활의 원리 - 서문

by 복음과삶 2008. 1. 16.
제목 없음

 

신약 생활의 원리

(NEW TESTAMENT LIVING)

 

서문 - 신약 생활의 원리

NORMAN B, HARRISON, D,D.

 

 

모든 생명은 항상 내면적인 것이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다. 외부로 나타나는 것은 단지 그 생명의 표현된 형태일 뿐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혼동하는 데서 기만과 가식이 생긴다. 이것은 극히 중대한 문제이다.

예컨대 인간의 신체를 보면 그 모든 중요기관이나 기능들은 다 내부적인 것이며 이것을 보호하는 피부에 의하여 가리워지고 있다.

가령 오렌지의 예를 들어보자. 오렌지는 보기에 아름답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나타난 크기와 모양과 혹은 빛깔이나 껍질 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만으로써 만족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가 알기를 바라는 것은 그 내용이다. 우리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은 그 알맹이 뿐이다.

허다한 설교와 성경연구가 성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의 영적 생활에 만족할만한 알맹이를 주기 위하여 형식의 껍질을 벗겨 주는 지침서 같은 것이 보기 드물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그릇된 강조 :

나는 지난 7년 동안 만국주일학교 공과책들을 유심히 조사해 본 결과 그것들이 서로 의논이라도 한 듯이 신앙생활이 형식상 문제들에만 치중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적이 놀랐다. 이를테면, 그리스도의 생애를 비롯하여, 구약의 역사나 선지자들에 관한 이야기들, 혹은 사도행전과 서한들에 관한 설명들만이 빽빽이 취급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가 그리스도인의 외부적 행동 규범에 대한 교훈을 그 주요한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의 내적 체험의 문제를 위하여는 다만 극 소수분의 지면이 할당되고 있을 따름이었다.

종교 교육에 있어서의 이와 같은 경향은 즉각 우리 교계에 커다란 그릇된 풍조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곧 외형주의의 유행이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라는 것이, 밖에 나타나는 행위로서 성립되는 그 무엇이라는 생각은 하나의 통념이 되고 말았다.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이러이러해야 하며, 이것은 행하고 저것은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신앙의 요점인 것같이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풍조는 극히 경계해야할 크나큰 과오이다. 만약 우리가 구약의 계명대로의 생활을 함으로서 우리 자신을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내세워 보려고 해 보라. 아마 거기에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결과는 영적 타락 이외의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교회는 각종 행사나 수없는 계획만으로서 참 생명의 대신물로 삼게 될 것이고, 우리는 한갓 천박하고 피상적인, 세속적 그리스도인들을 조제해 내는 데만 정신을 빼앗기게 되고 말 것이다.

 

계시의 진전성은 성경을 특징지우고 있는 크나큰 요소의 하나이다.

예수자신께서는 새 언약 아래 살지 아니하였다. 이 언약이 그의 주검으로서 세워질 때,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라고 그가 말씀하셨던 그 때부터, 비로소 이 언약은 세워졌던 것이다. 따라서 신약의 효력발생은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부터, 즉 그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그 결과 성령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후부터였다. 신약성경은 이 네 가지 사실 위에 기초를 둔 새로운 약속이요, 새로운 생활 방법을 선포한 책이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생활을 어떻게 받아 드리며 어떻게 이것을 실지로 생활할 수 있느냐 라는 문제에 대한 보다 명확한 복음은 서한 가운데 발견된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요 16:12)

그렇다, 새 언약이 발효한 때까지는 인간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때에 하지 않고 두신 말씀들을 그는 언제 다 하시겠다고 하셨던가?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시리라”(요 16:13) 예수께서 성서에 말씀하시기를 보류하셨던 (많은 것들) 이라는 것은 서한에 이르러 성령에 의하여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일은, 우리들이 서한 가운데서 성령의 가르침을 받고 또한 주어짐을 받은, 이 탁월한 신약적 생활방식에 충분한 고려를 베풀 때에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신약적 생활 :

1. 이하에 수록된 인구의 제목들은 새 언약 아래서 이루어지는 새 생활의 본질을 규명하고, 이를 우리의 실생활로서 받아 드리고자 하는 의도로서 꾸며졌다. 우리는 이 생활이 새 언약 이전에는 결코 있을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그 무엇이라는 것을 직각적으로 분별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 전 그리스도인의 90퍼센트가 내재하시는 그리스도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그 진정한 의의를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 이 때, 우리는 이하에서 논구하려는 모든 진리들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할 수는 결코 없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행위나 생활에 있어서의 의식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우리의 결심을 비난할 성도도 없을 것이다. 순수한 신약정신의 내용부터 구비한 다음, 이 내용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외형만이 가장 참된 것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생활과 인간성을 변화시키는 신약의 원리 :

D.L 무디의 성경책의 여백에는 TP라는 두 글자가 여기저기 기입되어 있다. 이 글자는 TRIED AND PROVED의 준말로서, 시험해 본 결과 그 진실성이 증명되었다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생활에서 시험해 보고 그것이 진실이라는 증거를 허다히 얻었던 것이다. 미국 각지에 걸친 전도 사업에 몸을 바쳐온 우리들이 여러 해 동안의 체험을 통해서 얻은 결론은 이 책 가운데 있는 모든 진리들이 다만 진실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변화 시키는 힘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이론적으로 타당할 뿐만 아니라 풍부한 현실성도 가졌다는 것이다. 현대는 위기의 세대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어려운 개인적 문제로 말미암아 시달림을 받고 있으며, 쓰디쓴 패배감에 사로잡히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위해서 우리가 얻은 많은 체험들 가운데 일부를 다음에 소개하고자 한다.

 

실례 :

1. 아내이며 어머니인 어떤 가정주부의 경우 :

이 부인에게는 좋지 못한 악습이 한 가지 있었다. 어느 날 예배가 폐했을 때, 이 부인은 그의 악습에서 놓여나고 싶은 간절한 소망과 누차의 실패로 말미암은 비참한 패배감이 뒤섞인 심각한 표정으로서 내 앞에 나타났다. 그 후로도 여전한 투쟁 가운데 수 개월을 허송하던 부인은 마침내 이러한 편지를 내게 보내 왔다. “저는 비결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예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 부인은 자기의 도로에서 손을 떼고 이 진리를 깨닫게 되는데 이만큼이나 오래 걸렸던 것이다. 그가 발견한 비결은 효능을 나타내었을까? 일년 후 내가 다시 부인을 만났을 때 그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난 일년 동안 주님께서 제게 역사하신 일들을 죄다 말씀드릴 수는 없을 지경이에요. 제 남편도 이제는 눈을 떴고, 가정도 많이 변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연이어 내게 하는 것이었다. 현재 이 부인은 성경교사로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기쁨을 세상에 나타내는 충실한 기계가 되고 있다.

2. 어느 미용사와 그 남편의 경우 :

이 부부는 극히 최근에 죄악된 생활로부터 발을 떼낸 후,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지난 생활의 묵은 상처가 끊임없이 그들을 괴롭히고 간신히 암흑에서 빠져 나온 그들의 마음 까지 자칫하면 주저앉게 만들려고 했다.

나는 영혼과 정의의 순결을 획득하는 비결로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생활 즉 내주의 생활에 대하여 몇 마디로 일러주었다. (고후 10:5)

그러자 여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 생활을 머리에 그리면서 즉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 참말 저는 이 시대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에요, 저는 이것을 의심할 수가 없어요!”

여인의 말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실이 그 말대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 지금까지 이 여인은 계속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다같이 그들 가운데 내재하시는 그리스도를 그들의 생활로서 훌륭히 증거하고 있다.

3. 한 젊은 음악가의 경우 :

S라고 하는 이 여자는 우리 교회의 피아니스트였다. 어느 날 우리가 함께 앉아서 사람을 자유케 하는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났을 때, S는 문득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목사님은 지금 무서운 죄인 곁에 앉아 계십니다. 저의 마음에는 증오감 만이 가득 차 있어요. 저는 도무지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사랑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이 여자를 이렇게 만든 원인과 내용인 즉 심각한 가정불화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의 손길은 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까지 빠짐없이 뻗친다. 우리가 함께 엎디어 기도 드린 바로 그 순간, 그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던 증오는 구주의 사랑과 그 자리를 바꾸었다.

지금은 S를 만나는 사람마다 그의 얼굴에서 충만한 은혜의 생활의 표정인 기쁨과 평안의 빛을 찾게 되었다.

4. 어느 목사 부인의 경우 :

이 부인에게는 병적인 우울증이 있었다. 누구든지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람을 자유케 하시는 살아 계신 진리이시다. 하루저녁 부인은 그의 약점을 주지 하고 있는 여러 이웃과 벗들 앞에서 그야말로 문자대로 빚을 발하는 얼굴로서 그가 근간에 얻은 신기한 평안, 이전에는 결코 생각할 수 조차 없었던 평안에 대하여 간증했다. 그러나 부인의 이 체험은 그 후 두 주일이 지나서 그에게 닥쳐왔던 무서운 시험에 대한 하나님의 예비 길이었다. 이일을 기록한 편지 가운데서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제가 이전의 상태에서 이일을 당했더라면 완전히 주저앉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님의 온전한 평안이 나를 붙들어 주고 있습니다.”

부인의 남편도 아이들도 다 같이 이 빛나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5. 슬픔에 잠긴 한 여인의 경우 :

남편과 어머니를 동시에 잃고 자기연민의 노예가 되고 있던 이 여인은, 하루 밤 갑자기 이 비참한 지경으로부터 해방을 얻었다. 그는 이 일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간밤에 저는 방에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울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제 눈에서 나온 눈물은 한탄의 눈물이 아니고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역사가 제게 일어났던 것이에요!”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그의 마음에 들어온 새로운 기쁨을 말해주고 있었다.

6. 변화를 받은 가정 :

내가 아는 여러 가정 가운데서 이 가정이 특별히 머리에 떠오른다.

깊은 영적 각성을 체험한 이 집의 주인 내외는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순종하고 가정에서 성경을 부지런히 숙독했다. 남편 된 사람은 행복한 목소리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살게 된 이후로 우리 집 가정생활은 일변 했습니다.” 그들은 모든일을 그리스도에게 맡겨 버리고 있었다. 그들의 아이들도 그리스도를 닮으며 어여쁘게 자라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의 가정에 평강의 주님으로 머물러 계신다.

 

이상의 몇 가지 실례들을 여러분께 소개한 까닭은, 이 책이 고취하고 있는 생활 이념이 결코 가공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것만이 해결을 기다리고 있는 여러분의 모든 문제들의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확증하기 위한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순전히 연구적 목적에 국한 되어 있음으로 문학적 수사에 대한 관심은 거의 떠나서 기록했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문장은 간결하고, 요약적인 것이 되었고, 그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때때로 본문을 떠나서 더 깊은 연구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경우가 많이 있을 것이다.

내용의 전부는 성경 중심적으로 되어 있어 독자들은 항상 성경을 펴들고 읽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책을 공부하는 여러분의 생활에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을 바라며, 나아가서는 이 책의 합동연구 같은 것을 다른 친구에게도 권고해 주시기를 바란다. 여러 사람이 한 자리에서 연구할 시에는 서로 토론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  놀만 B. 해리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