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창세기 2장은 두 개의 주요한 주제에 시선을 모으게 한다. 그것은 "일곱째 날"과 "강"(江)이다. 이 중에서 일곱째 날은 특별한 관심을 자아낸다. "안식일"의 교리만큼 오해와 모순을 범하게 하는 문제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식일을 오해하거나 모순을 범해도 된다는 약간의 근거라도 있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에 대한 주제 전부가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말씀 속에 그대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백한 계명은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출애굽기를 생각할 때 다루게 될 것이다. 그런데 본장에서는 사람에게 주어진 명령은 없다. 그러나 단지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는 기록만 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장1~3절)
여기에도 사람에게 계명을 준 적은 없다. 우리가 단지 여기서 듣고 있는 사실은, 단순히 창조에 관한 것을 두고 말한다면, 모든 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안식을 즐기셨다는 것뿐이다. 더 이상 이루어 놓아야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엿새 동안 일하셨던 하나님께서 일하기를 쉬시고 안식을 즐기셨던 것이다.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 모든 것은 지극히 좋았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친히 만드셨던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안에서 그냥 푹 쉬셨다. "그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욥 38:7) 창조 사역이 끝났으므로 안식일을 경축하셨던 것이다.
분명하게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것이 곧 안식일의 참된 성격이라는 것이다. 영감받은 성경 기록이 가르쳐 주는 범위 안에서 볼 때 이것이 하나님께서 경축해 오셨던 유일한 안식일이다. 이 후에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으나 사람은 그것을 철저히 지키지 못하더라는 기사를 보게 된다. 그러고 난 후에는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라는 말을 결코 다시는 읽지 못하게 되었다. 반대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라는 말씀을 들을 따름이다.
용어의 의미를 엄격하고 철저하게 따져 볼 때, 안식일은 정말로 더 이상 이루어져야 할 아무런 일도 없을 때에 비로서 지켜질 수 있을뿐이다. 안식일은 때묻지 않은 창조의 영역에서만 경축되어질 따름이다. 다시 말하면 한점의 죄도 없는 그런 창조 아래서만 안식일은 가능했다. 그러므로 죄가 있는 곳에서는 하나님께서 안식을 취하실 수 없다. 사람들은 자기 주위를 돌아보아도 지금의 창조세계에서는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안식을 즐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 신음하고 있는 창조세계에는 가시와 엉겅퀴가 돋는가 하면 기타 우울하고도 비천한 수많은 열매들이 생기고 있어서, 하나님은 결코 안식하실 수 없고 활동하셔야먄 한다는 것을 선포해 주고 있다. 가시와 찔레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이 평안히 안식하실 수 있을까? 폐허가 된 세상의 온갖 한숨과 눈물, 울부짖음과 슬픔, 병과 사망, 그리고 퇴락과 죄책 가운데서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겠는가! 즉 이런 환경 속에서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킬 수 있겠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무어라고 답할지는 모르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는 것은 이렇다. 즉, 창세기 2장에서 언급된 안식일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하나님은 결코 안식일을 갖지 못하셨다는 것이다. 다른 날이 아닌 바로 "일곱째 날"이 안식일이다. 이 날은 창조 활동의 완전성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창조 활동에 금이 가게 되었고 일곱째 날의 안식이 방해를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타락으로부터 시작하여 성육신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다. 성육신에서 시작하여 십자가에 이르기까지는 아들이 일하고 계셨다. 또한 오순절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는 성령께서 일하고 계시는 중이다.
확실히,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는 결코 안식을 모르셨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사역을 기쁘고 영광스럽게 완수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을 어디서 보냈셨던가? 무덤에서였다. 그렇다! 주 그리스도,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안식일의 주인, 천지의 창조자와 보존자이신 그분은 어둡고 외로운 무덤에서 일곱째 날을 보내셨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지 않은가? 일곱째 날은 진정한 안식과 평안을 누리며 보내야만 하고 포괄적인 의미에서 어떤 일도 행해서는 안 된다면 과연 하나님의 아들은 일곱째 날에 무덤에서 누워만 계실 수 있었을까? 불가능한 말이다! 안식일을 경축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무덤만큼 입증해 주는 것은 없다. 그 무덤 곁에서 있었을지도 모르는 우리는 일곱째 날에 무덤이 한 사람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라게 된다. 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인간은 타락으로 파멸되어 죄책을 지는 피조물이다. 그런데 그 오랜 죄책의 경력은 끝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주를 십자가에 못박았을 뿐만 아니라 주가 무덤에서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무덤 입구에 큰 돌을 갖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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