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7. (주일예배). ...그리고 전쟁. 창세기 14:14~24
노량진 강남교회 (고문산 목사)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창세기 14:14~24)
지난주에 4개국 엘람 연합군과 5개국 소돔 연합군의 전쟁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4개국 연합군이 밑에 나라들이 조공을 안 바치니까 연합군을 형성해서 치고 내려온 겁니다. 급기야는 소돔 지역에 연합군이 형성돼 있는 5개국 지역의 싯딤 골짜기 앞에 이제 대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의 결과는 엘람 원정연합군의 승리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그 결과로 소돔에 머물러 있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함께 끌려갔다고 하는 것이죠.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이 318명의 정예 군사를 이끌고 쫓아가서 연합군을 쳐부수고 롯과 빼앗겼던 물건들을 다 찾아왔다 이렇게 성경이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세 가지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역학적으로 볼 때 아브라함이 중동 지역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가나안 지역의 이방인입니다. 나그네이고요. 변방에 머물렀던 그런 사람인데 이 사건을 통해 중동 세력의 중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죠.
두 번째 영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집트 왕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브라함을 점점 담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여러분! 이집트 사건 기억나세요?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있다가 기근을 피해서 이집트로 내려가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내를 이용해서 목숨을 연명하려고 했던 그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이집트 왕에게 명령을 내리시고 결국에는 아브라함을 부자로 만들어서 어느 정도 부자라고 그랬죠? 극심한 부자! 기억나죠? 극심한 결핍을 피해서 왔는데 하나님은 한마디도 안 하시고 아브라함을 극심한 부자로 만드셨어요. 그러니까 그때 아브라함이 깨달은 거예요. 하나님은 대제국 이집트 왕도 주관하시는구나. 그래서 그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이 전쟁에 끼어들었다 하는 것이죠.
세 번째 언약적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너로 큰 민족을 만들겠다고 하셨어요. 너를 복으로 만들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심지어는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직접 건드릴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아내를 건드린다거나 혹은 아브라함의 조카를 누군가가 건드리게 되면 아브라함을 건드리는 거랑 똑같아요. 그러니까 저주를 받는 거죠. 그런 언약이 실제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 강해지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함께 점점 실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혼자 일하실 수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만한 능력을 갖고 계신 분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점점 강해지는 것과 함께 하나님의 약속을 구체화 시키세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약속을 꼭 받으시고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이루실 때에 그 약속에 대한 믿음, 하나님에 대한 그 믿음이 점점 강해져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가운데 동참하는 그런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이 왕의 골짜기에서 두 왕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이 두 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왕이 누구냐 하면 패전한 연합군의 지도자 소돔 왕 ‘베라’(בֶּרַע)였습니다. 소돔은 어떤 곳이었죠? 롯이 눈을 들어 선택했던 육신의 눈으로 안목의 정욕을 가지고 선택했던 풍요의 땅이에요. 그러나 성경은 소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죠. 창세기 13장 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그러니까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유황불로 멸망시키겠다는 그런 도시가 소돔입니다. 창세기 13장 13절에 보면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다. 그러니까 세상이 전반적으로 악한데 유난히도 소돔이라고 하는 땅은 어떤 땅이었다? 큰 죄인이었다 그 말이에요. 따라서 지금 아브라함 앞에 나와 있는 소돔 왕의 정체는 뭡니까? 여호와 앞에서 악한 큰 죄인들의 왕이며 우두머리라는 말이죠.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방금 진 패전국의 왕이고, 앞으로 장차 유황불 심판으로 멸망당할 도시의 왕이다라고 하는 것이죠. 왜 갑자기 나타났을까? 여러분! 이 정도 들으면 소돔 왕 베라의 정체가 조금 느껴지지 않습니까? 특히나 베라라고 하는 이름이 뭐냐하면 이 베라는 히브리어로 ‘벤’(בֵּן) ‘아들’이라는 뜻과 ‘라’(רַע‘) ’사악하다’라고 하는 말의 결합어입니다. 그러니까 뜻이 뭐냐 하면 ‘악한 아들’ ‘악마의 자식’이라는 뜻이에요. 승리한 아브라함 앞에 지금 하나님 앞에서 악한 자들의 왕이며 이미 패배한 자이고, 동시에 앞으로 멸망당할 자들의 왕 베라가 지금 나타난 것입니다. 왜 나타났을까 하는 거예요. 베라가 아브라함을 맞이하면서 요구한 것이 뭐냐 하면 21절에 가보면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전리품은 갖고 사람들을 돌려보내라는 거예요. 네가 전쟁에서 승리한 그 전리품은 네가 다 가져가라. 물품은 다 가져가되 단 사람은 나한테 달라는 거예요. 그런데 원문을 보면 사람이라고 하는 단어가 ‘네페쉬’(נֶפֶשׁ)로 써 있어요. ‘네페쉬’가 뭐냐 하면 ‘영혼’이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흙으로 만드셨는데 거기서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잖아요. ‘네페쉬 하야다’ 생기를 가진 영혼이 되었다 할 때 그 ‘네페쉬’라는 말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베라가 뭐라고 말하냐면 사람이라는 영혼은 나한테 주고 물건은 다 가져가라 그런 말이에요.
여러분 잘 생각해 보면 이건 참으로 뻔뻔한 요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몰상식하고 무례한 요구죠. 패전한 왕이 무슨 권리를 요구할 수가 있어요. 그리고 지금 자기 거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게 소돔 왕 베라한테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지금 뻔뻔하게 아무것도 없는 자가 마치 있는 자처럼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자가 마치 선심을 쓰듯이 은혜를 베풀듯이 지금 아브라함에게 요구하고 있는 거죠. 이것은 바로 사탄의 전형적인 특징이죠. 이 사탄이 가지고 있는 특징 아닙니까? 사탄은 어떻습니까? 이미 패배했잖아요. 그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이미 패배했고 앞으로의 사탄의 운명이 뭡니까? 하나님에 의해서 저 무저갱으로 들어가서 영원히 멸망당할 자예요. 근데 이 사탄이 마치 이 세상이 자신의 것인 양 지금도 성도들을 속이고 있죠. 세상 사람들은 이미 다 속였고 이제 성도들만 속이면 되는 거죠. 끊임없이 속이고 있어요. 과거에 예수님께서 금식하고 공생애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이 마귀가 나타나 가지고 세 번째 시험 뭐죠? 온 세상 만물을 다 눈앞에 펼쳐 보이면서 나한테 무릎 꿇으면 이걸 다 주겠다 이렇게 말했어요. 자기 것도 아니면서 과거에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났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타났으며 똑같은 시험과 유혹을 가지고 오늘 누구에게 나타나요? 나에게. 오늘 우리에게 이 신앙인들에게 나타나서 똑같은 시험을 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사탄은 이 땅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 권리도 없는 존재로서 최종적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존재임을 여러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의 생존의 문제, 그리고 풍요의 문제는 사탄의 권리 아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어요.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자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로새서 1:16~17)
아멘. 여러분 믿으시죠? 만물이 다 주님의 것이에요. 그러니까 주님이 그 모든 것을 쥐고 계세요. 사탄은 거짓말쟁이예요. 세상에서 마치 자기가 주인인 양, 모든 것의 소유자인 양 우리를 유혹하고 속입니다. 그러나 진짜 주인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오실 주님인 줄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다음 소돔 왕 베라 다음에 누가 나타나냐면 살렘 왕 멜기세덱이라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이 멜기세덱은 굉장히 신비한 존재예요. 이 중동의 9개 국가에 속하지 않은 처음 등장하고 있는 살렘이라고 하는 국가의 왕입니다. 그러니까 중동 9개국 연합 전쟁에 휘말리지 않은 유일한 나라예요. 기원과 지역적 근거를 찾아볼 길이 없어요.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도 몰라요. 멜기세덱이라고 하는 이름은 ‘멜레크’(מֶלֶךְ) ‘왕’이라는 말과 ‘세데크’(צָדַק) ‘의’ ‘의롭다’라고 하는 말의 결합어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라는 뜻이죠. 그러니까 9개의 국가가 서로 치고 받으며 전쟁할 때에 결국 최종 승자인 엘람왕이 아브라함에게 패배한 이후에 10번째 국가 살렘 왕 멜기세덱 의의 왕이 이제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에요. 왜 왔느냐 하는 거죠. 어디서 왔는지 기원도 없고 또 아브라함과의 만남 이후에는 찾아볼 길이 없어요. 성경에 오늘 딱 한 번 등장합니다. 물론 시편과 히브리서가 멜기세덱을 인용은 하고 있어요. 그러나 딱 한 번만 등장합니다. 본문은 이 멜기세덱의 역할과 직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뭐라고 소개하냐 하면 18절에 보니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갑자기 제사장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어요. 이 멜기세덱은 왕인데 평화의 나라의 왕인데 이 왕의 하는 일이 뭐냐?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제사장이라고 하는 거는 어떤 역할을 하는 거죠?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서로 연결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이 필요하셔서 이 제사장을 보내신 거죠. 그죠? 제사장 제도라고 하는 것이 사람이 만들어낸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필요해서 만드신 거예요. 사람들이 살다 보니까 죄도 많이 짓고 그러니까 종교 제도를 만들어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어떤 인물을 만들어야겠다가 아니고 성경에 나오는 모든 직책은 하나님이 만드신 거예요. 심지어는 신약에 나오는 모든 목사직 감독직 다 하나님이 만드신 거예요. 설교자 다 하나님이 만드신 거예요.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만든 게 없어요. 인간은 원초적으로 그런 것에 대해 필요로 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필요하신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 제사장을 만드셔서 보내신 거죠. 문제는 뭐냐 하면 그 제도가 수백 년이 지난 이후에야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인간 조직으로 정착하게 되었다는 것,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이 이야기는 모세와 아론의 제사장 제도가 있기 직전 수백 년 전에 일어났다라고 하는 거예요. 번개처럼 등장을 해가지고 번개처럼 사라져요. 이 평화의 나라에 의의 왕으로 나타났다가 그냥 순간적으로 이게 제사장직이다. 그러고 제사장직을 짠 하고 딱 도망가버리는 거예요.
예수님이 오시는 계절이에요. 이 성경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왜 오실 수밖에 없었는지 왜 오셔야만 했는지 구약이 다 오랫동안 그리며 노래하며 저 멀리에서 일어날 그 일을 기대하고 고대하고 그게 너무나 기뻐서 현실의 고난도 다 참아낼 수 있었어요. 내가 당장에 그 예수를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아도 예수가 올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에 그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 오랜 세월의 종살이도 견딜 수 있었어요. 여러분! 우리 이 현실을 이길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어요.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밖에는 없어요. 그게 유일한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래서 신약을 보면 다름 아닌 예수님이 하나님의 대제사장이라고 선포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대제사장직의 역할과 그 모든 것들을 본문에서 한 번 등장하고 있는 이 멜기세덱과 서로 연결시키고 있다 하는 거죠. 확인해 보겠습니다.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내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in the order of)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히브리서 5:5~6)
여기에 정확히 나오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았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만들었던 그런 인간적 조직의 체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늘 신비하게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하늘로부터 와서 하늘로 사라지는 바로 그런 질서를 따라 그런 계통을 따라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대제사장이 누구다? 예수다. 이렇게 히브리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이예요. 궁극적으로 성경은 이 살렘 왕 멜기세덱은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하도록 계속 유도를 하고 있어요. 성경을 깊이 읽다 보면 이거 예수님 같네! 이렇게 느끼셔야 돼요. 마치 소돔 왕 베라가 이거는 사탄의 전형인데! 이렇게 느끼셔야 된단 말이에요.
멜기세덱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사역’을 알려주며 이 땅에서 하늘의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요. 이 땅에서 하늘의 문을 활짝 열어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고 하나님은 어떠한 일을 하시는지를 알려주고 있죠. 멜기세덱은 지금 아브라함 앞에 찾아와 가지고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다라고 알려주고 있는 거예요. 직접 자기 입으로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자기 입술을 벌려서 하나님은 너를 위하여 이런 일을 하시는 분이야라고 지금 직접 계시를 전해주고 있는 거예요. 아브라함은 그동안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자기 집을 떠났어요. 하란도 떠났어요. 자기의 근거지를 떠났어요. 가라는 대로만 갔어요. 또 지난번에는 이집트로 들어갔다가 깜짝 놀라고 부자가 돼버렸어요. 그랬던 하나님을 이제 멜기세덱이 나타나서 명확하게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하나님은 너를 위하여 이런 일을 하시는 분이다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누가 하시는 일이에요? 예수님이 하시는 일,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첫 번째,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고 알려주고 있는가? 멜기세덱이 선포한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다. 창세기 14장 19절에 보면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하늘과 땅의 소유주란 말이에요.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요.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말인데, ‘아도나이’(אֲדֹנָי)‘여호와’(אֱלָהּ) ‘엘로힘’(אֱלֹהִים) 다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처음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명칭이 등장했어요. ‘엘리온’(עֶלְיוֹן)이라고 하는 말, ‘지극히 높다’ 그러니까 왕보다 높은 왕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든 신들 중에 가장 뛰어난 신, 최고의 신,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최고의 신이다라고 멜기세덱이 지금 아브라함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하나님의 정체가 아브라함에게 점점 드러나는 거예요. 막연하게 알았던 하나님, 나에게 말씀하시고 내가 잘못하고 실수해도 부자로 만드시고, 생명을 구원해 주시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라고요? 천지 만물을 소유하고 계시는 분이며 신들 중에 가장 최고의 신이다라고 아브라함에게 직접 멜기세덱이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알고 믿으면 이 세상에서 섬길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는 안 계시는 것이죠. 그러니까 멜기세덱이 지금 아브라함 앞에 나와 있지만 사실은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대면하면서 아브라함은 축복해주고 하나님께는 찬송을 올려드리고 있어요. 참 신기한 존재죠. 그 중간에 딱 서 가지고 지금 아브라함에게 말하는 건데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또 하나님께 부탁을 해요. 여기 아브라함에게 복을 달라고 그리고 또 그 하나님을 찬송을 하는 존재예요. 누구예요? 이분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말씀을 통하여 귀로 듣고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소돔왕 앞에서 멜기세덱이 선포한 하나님을 그대로 선포를 해요.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창세기 14:22)
이거 어떻게 배운 거예요? 누가 누구에게 알려준 거예요? 방금 멜기세덱이 알려줬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걸 알려준 대로 자기가 소돔 왕 앞에서 그 악마의 자식 앞에서 지금 손을 들어 선포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셔야 돼요. 아브라함 보세요. 아브라함은 무슨 믿음의 조상입니까? 원래 얼마나 치졸하고 얼마나 비열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점점 만들어 가십니다. 심지어는 멜기세덱을 보내서 그 입술에 하나님의 존재, 그 하나님의 에센스(essence, 본질, 가장 중요한 것, 핵심)를 그대로 입술에 붙여주잖아요. 이런 역사가 여러분에게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 멜기세덱이 선포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에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분이시고 아브라함의 대적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입니다. 19절, 20절에 보면 이런 말을 해요.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창세기 14:19~20)
지금까지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겁니다. 당연하죠. 앞으로 아브라함이 받을 복 역시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이에요. 왜? 하나님이 처음부터 약속하셨어요. 그러니까 그 약속대로 이루시는 게 맞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승리 역시도 하나님께로부터 왔어요. 하나님께서 싸우게 하셨고 또 하나님이 싸우셨고 승리하게 하신 게 맞아요. 그런데 멜기세덱이 그 아브라함의 복과 승리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직접 명확하게 알려주시고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에요. 이건 다른 거예요. 아브라함은 막연하게 깨달았겠죠.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네. 어떤 분이 자꾸 나를 부르시네. 내가 실수를 했는데도 그분이 나를 부자 되게 하시네. 또 내가 전쟁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네. 이렇게 막연하게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 멜기세덱이 나타나서 어떻게 한 거예요? 그 복,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그 승리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이렇게 알려주셨단 말이에요. 주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처럼 입술을 벌려 알려주시는 것처럼 성령이 깨닫게 하시는 것처럼 아 그 말씀이 그런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가! 그 정도가 아니라 그 말씀이 내 말씀이었구나! 이게 나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이었구나! 그것을 깨달았다. 그 말이에요. 누구 때문에? 멜기세덱 때문에. 이렇게 멜기세덱은 시작도 끝도 없는 그런 존재, 순식간에 나타나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알려주는 그 멜기세덱을 통해 점점 믿음의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예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또 가르쳐야 될 것은 교회가 이것만 하면 돼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 이 두 가지만 가르치면 돼요. 아브라함은 지금 그것을 멜기세덱을 통하여 직접 배웠어요.
그 결과가 뭐냐 하는 거죠? 아브라함이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십일조 이야기가 처음 등장하고 있어요. 여러분! 잘 들으세요. 정리하세요. 오늘 십일조에 대해서 잘못 드리면 복이 안 됩니다.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면 아무런 복이 안 돼요. 십일조가 왜 생겨났느냐 하는 거예요.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세기 14:20)
누구에게 줬어요? 처음 보는 왕 멜기세덱에게 준 거예요. 왜 줬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이 나의 왕이시며 나는 하나님 나라 백성임을 십일조로 고백하는 거예요. 여러분! 헌금은 고백이에요. 많이 드리고 적게 해드리는 건 여러분 자유예요. 무조건 많이 드린다고 많이 복 받는 게 아니고 적게 드린다고 적게 복을 받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에요. 거기에는 반드시 고백이 담겨져 있어야 돼요. 어떤 고백입니까? 나는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나의 왕은 누구다?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 고백이 십일조예요. 지금 아브라함이 멜기세덱 왕 앞에서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서로 치열하게 치고받고 세력 전쟁하는 그 9개 국가에 소속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대제국 이집트 왕에게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나는 메소포타미아 내가 살았던 그 풍요의 땅에도 소속되지 아니한 바로 이 평화의 왕 멜기세덱 의의 왕이 속해 있는 그 하나님 나라의 소속된 백성이요 시민입니다라고 십일조로 고백을 한 것이에요.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지만 이 땅에서 내가 애쓰고 노력해서 내 재능을 동원해서 일하고 있지만, 우리가 그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 나는 이 땅에 소속된 자가 아닙니다. 나는 나그네입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영원한 세상을 살 존재고, 지금 내가 일하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요, 일에 대한 결과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주어졌음을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쓰십시오. 나머지 모든 것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하는 고백이 십일조 안에 들어있는 거예요. 올바르게 하나님 앞에 드리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반면에 소돔 왕 베라에게는 아브라함은 부를 위해서 아무것도 취하질 않아요.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致富:재물을 모아 부자가 됨)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창세기 14:22~24)
참 놀라운 고백 아닙니까? 나는 네가 주는 건 안 받아. 소돔 왕 베라! 네가 가진 게 하나도 없지만 네가 나한테 뭘 준다고? 그러면 나는 절대로 실 한 오라기도 안 가져 갈 거야. 다만 나하고 연합군 형성에서 동참했던 그 동네 주위의 형제들한테는 분깃 나눠주고 이미 먹은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고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네 거를 하나도 안 가져가겠다는 거죠.
여러분! 이 믿음이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나에게 부를 주시는 분은 누구다? 하나님이다! 네가 안 줘도,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나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은 누구다? 하나님이시다. 이기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가난도 이기게 하시고, 질병도 이기게 하시고, 관계의 억울한 일도 이기게 하시고, 이 세상의 강진도 거부할 수 없는 강진까지도 하나님이 이기게 하실 거다. 부와 승리는 오직 하나님께로 온다. 사람에게 오지 않는다. 내 스스로의 능력으로도 오지 않는다. 앞으로도 오직 하나님께서 나에게 부와 승리를 주실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해요? 십일조로 고백을 하고, 베라한테는 한 푼도 안 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성도들은 십일조만 생각해요. 그러니까 세상에서 온갖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악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마치도 보상하듯이 이렇게 십일조를 바치는 거예요. 그게 복입니까? 여러분! 그건 저주예요. 여러분! 두 가지 같이 가셔야 돼요. 적게 벌어도 하나님 제가 이걸 양심적으로 벌었습니다. 그때 그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나는 하나님 믿는 백성이기 때문에 절대로 불의나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믿는 믿음으로 이번 한 달은 이것밖에는 못 드리네요. 하나님! 그러나 하나님께서 결국 내 가정을 책임지고 내 사업 하나님이 부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새해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은 중동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이미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전쟁은 계속되고 있죠. 바로 마음의 전쟁, 믿음의 전쟁입니다. 물리적 승리 이후에 영적인 전쟁이 남아 있었고,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의 도움으로 그 전쟁 또한 승리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부와 승리와 생명과 구원이 나 자신이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나의 부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나의 승리는 곧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에게는 이 땅에서의 삶이 하늘의 섭리와 연결이 돼버린 거예요. 물리적인 전쟁과 영적 전쟁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실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리적 일들은 다 영적인 것들과 직결되어 있어요. 신앙인들이 자꾸 이것을 이원화시킵니다. 기도하고 예배하고 이건 왠지 영적인 것 같고, 세상에서 돈 벌고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고 하는 것들은 다 물리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간주해서 신앙이 철저하게 이원론적으로 갈라져 있어요. 철저하게 신앙적 방법을 아셔야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 하나님이 영적으로 역사하십니다.
평화의 나라 의의 왕 멜기세덱, 그리고 소돔 왕 악마의 자식 베라가 지금 아브라함 앞에 서 있어요.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풍요와 생명은 하나님께 있음을 가르쳐준 것이고, 지금 베라는 아브라함의 부가 철저하게 사람으로부터 온다고 하는 사실을 지금 가르쳐주고 있는 거죠. 선택해야죠. 마치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그 나무 앞에 선 아담과 하와처럼 지금 아브라함도 서 있는 거예요. 동일한 유혹 앞에 서 있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지금 떡과 포도주를 들고 나오는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고 사탄과 같은 존재인 베라, 패전에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 베라가 주겠다고 한 모든 부의 제안들을 단호하게 거절했던 거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그 지혜롭게 할 만한 그 탐스러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아브라함은 거절한 것이고, 생명나무를 붙잡은 것이고, 모든 세상의 죄인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늘 두 가지의 선택 앞에 서 있어요. 생명나무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냐? 살렘이냐? 소돔이냐? 멜기세덱이냐? 베라냐? 세상의 죄냐?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냐? 결국에는 나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예요. 그러나 이 선택이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하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행히도 예수님을 이 땅에 대제사장으로 보내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로 만들어 가심을 믿고 감사하며 승리하며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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