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4 - 19
CH 매킨토시.
신명기 14장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라 죽은 자를 인하여 자신을 베지 말며 미간 대머리를 만들지 말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여 구별하신 백성이니라”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백성이 있느니라" (1, 2절)
이 장의 시작 부분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모든 특권과 책임의 기초를 우리 앞에 제시합니다. 애정을 알거나 그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기 전에 먼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사이에 친숙한 생각입니다. 이것은 명백하고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남자가 아버지가 아니라면 아무리 논쟁이나 설명을 한다고 해도 아버지의 마음에 있는 감정이나 애정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관계를 시작하는 순간 그는 그들에 대해 모두 알게 됩니다.
모든 관계와 지위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지상에 나가기 전까지는 하나님 자녀의 애정이나 의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수행하려면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렇게 행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은혜로운 도움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입장에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애정이나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이는 너무나 명백해서 논쟁이 불필요하다.
이제 가장 분명한 것은 그분의 자녀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선언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권이며, 모든 일에서 그분의 은혜로운 승인을 구하는 것은 그들의 높은 특권이자 신성한 책임입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 이니 너희는 몸을 베지 말라.” 그들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분께 속하였으므로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거나 얼굴을 훼손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자연은 자존심과 자기 의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행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 자신을 자르거나 눈 사이를 대머리로 만드는 것이 무슨 해로울 수 있습니까? 그것은 단지 슬픔의 표현일 뿐이며 애정 어린 표현일 뿐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입니다. 확실히 슬픔을 이렇게 적절하게 표현하는 데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라”라는 간단하면서도 결정적인 대답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들 주위에 있는 불쌍하고 무지하고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과 관계를 맺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상하게 하고 훼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가까운 높고 거룩한 땅에 있었고, 이 한 가지 사실이 그들의 모든 습관에 특징과 특징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어떤 특정한 습관이나 관습을 채택하거나 삼가도록 요구받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말했듯이 이것은 잘못된 끝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해야 했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 이라 ” 그분은 “너희가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마땅하다 ” 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 그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거룩한 백성, 여호와께 특별한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까? 전혀 불가능합니다. 만일 그들이 그분의 백성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어떤 노력도 그들을 그렇게 만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권적인 은혜로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따라 그들을 그의 자녀로 삼으시고, 땅 위에 있는 모든 나라들 위에 그들을 특별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도덕적 체계의 견고한 기초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습관과 관습, 모든 행위와 방식, 음식과 의복, 행한 일과 행하지 않은 일 등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사실에서 흘러나온 것이었습니다. 자연적인 출생, 즉 그들은 실제로 하나님의 자녀, 그분이 선택하신 백성, 그분 자신의 특별한 소유의 백성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토록 가까이 계시고 우리의 모든 습관과 방식에 그토록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것이 가장 높은 질서의 특권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순한 자연, 즉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분과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분의 거룩한 임재나 그분께 가까이 있다는 생각 자체가 참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진실한 신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그분을 우리 가까이 두는 것과 그분이 우리의 개인 역사와 가장 사적인 삶의 가장 세세한 모든 세부 사항에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즐거운 생각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먹는 것과 입는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낮과 밤, 자고 깨고, 집에서나 밖에서나 우리를 돌보십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에 대한 그분의 관심과 보살핌은 자기 아기에 대한 가장 부드럽고 사랑이 많은 어머니의 관심과 돌봄보다 훨씬 더 뛰어납니다.
이 모든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확실히 우리가 그것을 더 완전하게 깨닫는다면 우리는 아주 다른 종류의 삶을 살게 될 것이고,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많으신 주님이 낮에는 우리의 길을, 밤에는 우리의 잠자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얼마나 거룩한 특권이요, 얼마나 귀중한 현실입니까? 우리가 아침에 옷을 입을 때, 식사할 때, 우리가 사업을 할 때,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교제를 할 때 그분의 눈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이러한 감각이 지상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의 마음 속에 살아 있고 변치 않는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3절부터 20절까지는 정하고 부정한 짐승과 물고기와 새에 관한 율법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주요 원칙은 이미 레위기 11장 에 나와 있습니다 .* 그러나 두 성구 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레위기의 지시는 주로 모세와 아론에게 주어졌습니다. 신명기에서는 그 내용이 백성들에게 직접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두 책의 특징이다. 레위기는 특별히 제사장의 지침서라고 불릴 수 있다. 신명기에서 제사장들은 거의 전적으로 배경에 있고 백성들은 두드러진다. 이것은 신명기가 단지 레위기를 반복한다는 생각에 대한 근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 책 전반에 걸쳐 뚜렷이 드러납니다. 진실에서 더 이상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각 책에는 고유한 영역, 디자인, 작업이 있습니다. 독실한 학생은 깊은 기쁨으로 이것을 보고 소유합니다. 불신자들은 고의적으로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레위기에 관한 주석" 11장에서 제시한 것처럼, 우리가 믿는 장의 4-20절의 성경적 의미를 독자들에게 언급해야 합니다.}
우리 장 21절에는 하나님의 이스라엘과 이방인 사이의 뚜렷한 구별이 뚜렷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무엇이든지 스스로 죽은 것은 먹지 말 것이니 그것을 성중에 우거하는 객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에게 팔아도 가하니 너는 네 여호와의 성민임이니라 하나님."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관계라는 중대한 사실은 그들을 해 아래 있는 모든 나라들과 구별시켜 주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 자체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낫거나 더 거룩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거룩하셨고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세상 사람들은 종종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분리하고 세상의 쾌락과 오락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매우 바리새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질문을 실제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죄 많은 세상의 헛되고 어리석은 일에 참여하는 것은 전형적인 표현을 사용하면 이스라엘 사람이 스스로 죽은 것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가엾고 죽은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 즉 참 만나가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부활하여 하늘에서 영화롭게 된 인간의 예표인 “가나안 땅의 묵은 곡식”을 먹습니다. 이 가장 귀중한 것 중에서 회심하지 않은 불쌍한 세속인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이 그에게 제공하는 것을 먹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 자체를 바라보는 사물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해결되지 않았다면, 저절로 죽은 것을 먹는 것이 잘못된 일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우리는 옳고 그름의 문제에 관해 세상이 우리와 함께 보고 느끼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신성한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단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전혀 건드릴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세상적인 사람에게는 상당히 일관성 있게 행해질 수 있습니다. 참된 신자가 자기 앞에 놓인 모든 것에 대해 물어보아야 할 질문은 간단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일을 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것과 연결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만져서는 안 됩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인의 모든 기준과 시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매우 간단하게 만듭니다. 질문하는 대신, 그러한 일이 우리의 직업 , 원칙, 성격 또는 명성 과 일치합니까 ?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와 일치하는가? 이것이 모든 차이를 만듭니다. 그리스도께 합당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그리스도인에게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붙잡으면 수천 가지 세부 사항에 적용될 수 있는 큰 실제적인 규칙이 제공될 것입니다. 만일 마음이 그리스도께 진실하다면, 우리가 성신의 사역으로 강화되고 성경의 권위로 인도를 받아 신의 성품의 본능에 따라 행한다면, 우리는 옳고 그름의 문제로 인해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잘못된 우리 장을 마무리하는 아름다운 문단을 독자들에게 인용하기 전에, 우리는 21절의 마지막 절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그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습니다. "어린 아이를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이 계명이 여러 가지 면에서 세 번 주어졌다는 사실은 이 계명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실천적으로 중요한 계명임을 나타내기에 충분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입니다.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우리는 주님의 백성이 자연에 어긋나는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피해야 한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피조물의 영양을 위해 의도된 것을 그것을 끓이는 데 사용하는 것은 명백히 자연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통해 본성에 따른 것, 즉 아름다운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자연 그 자체도 가르쳐 주지 않는가?" 영감받은 사도는 고린도 모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연에는 창조주에 의해 심어진 어떤 감정과 본능이 있는데, 이는 결코 분노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자연의 고유한 감각에 폭력을 가하는 어떤 행위도 하나님에게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기독교 윤리의 확고한 원칙, 공리로 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를 자연 너머로 인도하실 수 있으며, 종종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나 결코 자연을 거스르지는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장의 마지막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구절에서 우리는 흔치 않은 훌륭한 실용적인 교훈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너는 해마다 밭에서 나는 모든 소산의 십분의 일을 성실히 드리라. 그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의 십일조를 먹을지니라. 네 포도주와 네 기름과 네 소와 양의 첫 새끼를 가져다가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길이 멀고 네가 갈 수 없을 때에는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거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후에 그 돈을 돈으로 바꾸어 네 손에 보관할지니라 그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으로 가서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주어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나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살지니라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가족과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너는 그를 버리지 말라. 그 사람은 너와 함께 할 몫도 없고 상속 재산도 없기 때문이다. 삼년 후에는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문 안에 저축하라.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리라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주의 뜻이 있느니라.”(22-29절)
이것은 매우 흥미롭고 가장 중요한 구절로서 이스라엘 민족 종교와 국내 종교의 매우 단순성, 기초, 중심 및 실천적 특징을 가지고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숭배의 웅대한 기초는 그들 자신과 그들의 땅이 모두 여호와께 속했다는 사실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땅은 그분의 것이었고 그들은 그분 아래에서 소작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그들의 땅에 충실하게 십일조를 바침으로써 이 귀중한 진리에 대해 간증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너는 해마다 네 밭에서 열매를 맺는 모든 수확의 십일조를 성실하게 바쳐야 한다.” 그들은 이러한 실제적인 방법으로 여호와의 소유권을 소유해야 하며 결코 그 소유권을 잊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 외에는 다른 집주인을 소유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존재와 그들이 가졌던 모든 것은 그분의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민족 숭배, 즉 민족 종교의 확고한 기초였습니다.
그리고 중심에 관해서도 똑같이 명확하게 설명됩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신 곳으로 모여야 했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이름을 진실로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귀중한 특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다른 많은 부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구절에서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정기적으로 모으는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찬미할지어다. 그분은 사랑하는 백성이 그분의 면전에 모여 그분과 서로서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공동의 몫을 함께 누리고, 여호와의 땅의 열매를 먹으며 달콤하고 사랑에 찬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의 십일조를 먹고 …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우리라.”
모든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 여호와를 참으로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심판을 받는 곳은 다른 곳에서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모든 사람은 그 사랑스럽고 존경받는 이름이 기록된 신성한 장소로 모여드는 것을 기뻐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멀리 떨어져서 십일조를 가지고 특정 장소로 여행하는 것을 보는 것이 이상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관습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왜 집에서 식사하지 않느냐?" 그들은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단순한 사실은 그러한 사람들은 그 문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그 귀중함에 전혀 참여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는 하나의 큰 도덕이 있었습니다. 지정된 장소로 여행하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 느니라 " 라는 영광스러운 모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그는 그곳에서 여호와나 그의 형제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혼자 먹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했을 것입니다. 경건하지 않은 여로보암은 자신의 이기적인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질서를 방해하려고 생각하고 벧엘과 단에 그의 송아지를 세웠으나 그곳에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와 그의 집에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가져온 대담한 악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스라엘의 이후 역사에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모든 사악한 왕들에게 끔찍한 죄악의 모델로 사용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모든 충실한 사람들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오직 하나의 신성한 중심에서 발견될 것이 확실했습니다. 집에 머물기 위해 온갖 종류의 변명을 하는 것은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자신이 선택한 곳이나 다른 사람이 선택한 곳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볼 수도 없습니다. 아니, 당신은 그들이 여호와 삼마에게, 그곳에서만 모여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편협함과 편협함이었는가? 아니,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만날 장소를 정하셨다면, 분명히 그분의 백성도 그곳에서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장소를 지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풍성한 선하심으로 그분을 경배하는 백성들이 그 장소를 가능한 한 편리하게 만들 수 있는 수단을 고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거든 그 길이 네게 너무 멀고 네 하나님이 네게 복을 내리셨은즉 너는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으로 가서 … 너와 네 집이 기뻐하리라."
이것은 완벽하게 아름답습니다. 주님께서는 부드러운 돌보심과 사려 깊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고려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사랑하는 백성이 그분 주위에 모이는 문제에 있어서 그들의 길에 단 하나의 어려움도 남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구원받은 백성이 그분의 면전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특별한 기쁨을 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신성하게 임명된 중심지에서 발견됨으로써 그분의 마음의 사랑스러운 갈망을 충족시키는 것을 기뻐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이스라엘 사람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와 시간에 자기 형제들과 함께 모이는 복된 기회를 등한히 하는 것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이나 그분의 백성을 향한 마음이 없다는 것을 단순히 증명했을 것입니다. 결석한. 그는 자신이 집에서도 행복하고 다른 곳에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순종의 길, 즉 하나님의 약속을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길에서 찾은 행복이기 때문에 그것은 거짓된 행복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현재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가장 귀중한 교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옛날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하나님의 뜻은 그분의 백성이 그분의 면전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장소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중심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에 신성한 빛의 불꽃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점에 대해 거의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신성한 성품의 본능, 성신의 인도, 성경의 가르침은 의심할 바 없이 주님의 백성이 예배와 친교와 교화를 위해 함께 모이도록 이끈다. 경륜의 시대는 다를 수 있지만 항상 유효하게 유지되는 특정한 위대한 원리와 주요 특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모이는 것은 가장 확실하게 이것들 중 하나입니다. 낡은 경륜 하에서든 새로운 경륜 하에서든 주님의 백성을 모으는 것은 신성한 제도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행복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참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께서 지정하신 장소에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에는 언제나 깊은 기쁨과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 안에 함께 있으면서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주님의 사랑하는 백성들, 즉 그분의 이름을 사랑하고, 그분의 인격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고, 함께, 그분의 식탁 주위에, 그분 주위에 있는 것은 단순히 지상 천국입니다. 우리의 사랑하고 흠모할 만한 주님을 기억하며 함께 빵을 떼고 그분이 오실 때까지 그분의 죽으심을 알리는 것이 허락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거룩한 합창으로 하나님과 어린 양을 찬양하는 성가를 부르며; 부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교회의 머리가 되신 이가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은혜를 따라 서로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일입니다. 우리 마음을 쏟아 달콤한 교제와 기도와 간구와 도고로 모든 사람과 임금들과 권세 있는 모든 사람과 믿음의 온 가족 곧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을 위하여 주님의 일과 온 땅의 일꾼들이여.
우리는 가능한 모든 확신을 가지고 이 모든 것을 기뻐하지 않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이 세상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는 영혼의 올바른 상태에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것과 비교될 영광이요?
그러나 우리의 행복은 문제가 아닙니다. 2차 미만입니다. 우리는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그분의 거룩한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예배와 서로 덕을 세우기 위해 함께 모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든 이를 고의적으로 거부하거나 게으르게 무시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에 심각한 손실을 입힐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불명예를 돌리고, 그분의 영을 슬프게 하며, 그분의 백성의 모임에 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중대한 결과이며 모든 주님의 백성의 진지한 관심을 요구합니다. 그분의 백성이 그분의 면전에서 함께 모이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따른 것임을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영감받은 사도는 히브리서 10장에서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집회에는 특별한 가치, 관심, 중요성이 부여됩니다. 이에 대한 진리는 신약성경의 첫 페이지부터 우리에게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Matt. 18:20 , 우리는 복되신 주님의 말씀을 읽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 여기에 신성한 중심이 있습니다. " 내 이름." 이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신명기에서 끊임없이 언급되고 강력하게 주장되는 곳)에 대한 대답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한 곳에 모이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무엇을 선택할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선택은 절대적으로 엄격하게 배제되었습니다. 그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이요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명백해서 우리는 단지 “당신은 어떻게 읽었습니까?”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선택도, 인간의 판단도, 인간의 의견도, 인간의 이성도, 인간의 어떤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신성합니다. 우리가 모이는 장소 는 신성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구속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인 중심 은 신성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모으는 능력 은 신성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임을 위한 권위는 신성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귀중한 만큼 분명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단순한 신앙뿐입니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틀림없이 어둠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교국의 종파들과 당파들의 서로 상충되는 주장들 사이에서 절망적인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 유일한 자원, 유일한 힘, 유일한 위로, 유일한 권위는 하나님의 귀한 말씀입니다. 그것을 없애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것을 주면 우리는 더 이상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모든 것을 우리 영혼에 그토록 현실적이고 확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 독자에게도 위로와 안정감을 줍니다. 우리 모임에 관한 진리는 우리의 구원에 관한 진리만큼 분명하고 단순하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복된 범위 안에 있다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땅 위에, 하나님의 중심 주위에,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하나님의 권위 위에 모였음을 확신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우리가 하나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답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의 모임을 위해 선택하신 장소에 대해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습니까? 그분의 명시적인 계명으로. 그들은 지도에 대해 어떤 손실을 입었습니까? 분명히 아니다; 그분의 말씀은 다른 모든 것과 관련하여 그들의 예배 장소에 관해서도 분명하고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불확실성에 대한 조금의 근거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 앞에 너무도 명백하게 제시되어 있어서 누구든지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단지 고의적인 무지나 적극적인 불순종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예배 장소, 모임의 중심과 터라는 큰 주제와 관련하여 이스라엘보다 더 나쁜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의심과 불확실성에 남아 있습니까? 공개 질문인가요? 각 사람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도록 방치된 것이 문제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흥미롭고 매우 중요한 질문에 대해 우리에게 긍정적이고 명확한 지시를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상상하는 지혜로는 주목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문제들에 대해 옛 백성들에게 은혜롭게도 교훈하셨던 분이 이제 기초에 관한 어떤 명확한 인도도 없이 그분의 교회를 떠나실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까? 우리 예배의 중심과 특징은 무엇입니까? 전혀 불가능합니다! 모든 영적인 마음은 결단력과 열정을 가지고 그러한 생각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기독교 독자 여러분, 당신은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하늘 백성을 이와 같이 대하시는 것이 우리의 은혜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할 특별한 장소는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상 백성을 위한 그런 장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복된 이스라엘과 점차적으로 모든 나라를 위한 그러한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건히 세워지고 모든 작은 산 위에 높아지리니 모든 민족이 그리로 몰려오리라 많은 백성이 가서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니 이는 시온에서 나올 것임 이니라 율법과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온 여호와의 말씀이라." (사 2장) 그리고 또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이라 땅의 모든 족속 중에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그들 위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 슥 14:16-17 .)
여기에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선지자들의 두 구절이 발췌되었는데, 하나는 처음부터, 다른 하나는 마지막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두 구절 모두 예루살렘이 이스라엘과 모든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중심지가 될 영광스러운 때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독자들이 이 심오하고 흥미로운 주제에 관해 이사야와 스가랴와 완전히 조화를 이루고 한마음으로 모든 선지자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가능한 모든 확신을 가지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구절을 교회나 천국에 적용하는 것은 인간의 귀에 들려온 가장 분명하고 장엄한 말씀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일과 땅의 일을 혼란스럽게 하고, 선지자와 사도들의 신적 조화로운 음성에 완전히 모순을 주는 것입니다.
인용을 곱하는 것은 불필요합니다. 모든 성경은 예루살렘이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백성과 모든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지상 중심지가 될 것임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곧 오순절 날 곧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시던 때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데리러 오실 때까지입니다. 이 세상 밖에는 주님의 백성을 위한 장소도 없고, 도시도 없고, 신성한 곳도 없고, 지상의 중심지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룩한 곳이나 성별된 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유대인에게 하늘에 예배 장소가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는 완전히 낯선 일입니다. 적어도 그래야 합니다. 그 아이디어는 완전히 제자리에 있지 않고 성격에도 맞지 않습니다.
독자가 잠시 요한복음 4장을 펴보면, 우리 주님께서 수가 여인과 나누신 놀라운 대화에서 이 주제에 대한 가장 복된 가르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이시니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무엇을 예배하는지 알지 못하노라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느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19-24절)
이 구절은 현재 어떤 특별한 예배 장소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배제합니다. 실제로 그런 것은 없습니다. “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씀에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느냐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모든 것을 내 손으로 만들었단 말이냐?" ( 사도행전 7:48-50 .) 그리고 또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사람의 손으로 예배함을 받으시는 것 같이 아니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이 없느니라 그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느니라" ( 행 17:24-25 .)
신약의 가르침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배의 주제에 대해 명확하고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독자는 그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의 온 도덕적 존재를 이해하고 그 권위에 복종시키려고 노력할 엄숙한 의무가 있습니다. 교회 역사의 아주 초기부터 의의 문제뿐 아니라 예배의 문제에 있어서도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강력하고 치명적인 경향이 있어 왔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생명과 의를 위해 율법 아래 있을 뿐만 아니라 예배의 순서와 성격을 위해 레위의 의식 아래 놓였습니다. 우리는 이 "주석"의 4장과 5장에서 전자를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후자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행동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성격에 미치는 영향에 있어서 그다지 심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의 교회를 그 지위와 행실과 예배와 관련하여 그 탁월함에서 끌어내리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는 오순절 날 교회가 세워지자마자 부패하고 훼손하는 과정을 시작했으며, 18세기 동안 악마적인 집요함으로 그 일을 계속해 왔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이 분명한 구절들에 비추어, 아버지께서 지금 추구하시는 예배의 성격과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성전에 거하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에 관하여 우리는 각 시대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았습니다. 모세 경제 시대의 상황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강함. 그러므로 큰 건물, 인상적인 의식, 사제직, 합창 예배에 대한 욕망은 모두 그리스도의 마음과 신약의 가장 명백한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대됩니다. 공언하는 교회는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의 영과 권위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고 슬프게도 바로 이러한 것들이 기독교의 놀라운 발전의 증거로 계속해서 호소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공공 교사와 지도자 중 일부는 복된 사도 바울이 교회가 달성하게 될 위대함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높은 통로와 칠해진 창문이 있는 우리의 존경받는 대성당 중 하나를 볼 수 있고, 오르간의 울림과 합창단의 목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그는 예루살렘 다락방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아! 독자 여러분, 그것이 모두 철저한 착각임을 확신하십시오. 교회가 발전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위쪽이 아니라 아래쪽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고, 아버지에게서 멀어지며, 성령에게서 멀어지고, 말씀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우리는 독자들에게 다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 다음 주일에 런던에 왔다면 사도 행전 20장 7절 에 기록된 대로 1,800년 전 드로아에서 발견한 것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었겠습니까 ? 단지 성령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서 그를 기념하여 떡을 떼며 그가 오실 때까지 그의 죽으심을 전하는 제자 무리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당시의 신적 질서는 그랬고, 지금도 신적 질서는 그래야 합니다. 우리는 사도가 다른 어떤 것도 받아들일 것이라고 잠시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는 신성한 것을 찾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게 아니면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이제 그는 그것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까? 주님께서 배반당하시던 그날 밤, 그는 어디로 가서 주님께서 친히 정하신 식탁을 찾을 수 있었겠습니까?
마가, 독자여, 우리는 사도 바울이 주님의 식탁과 만찬을 가질 것을 주장했을 것이라고 믿을 것입니다. 이는 그가 주님의 식탁과 만찬을 영광 가운데서 자신으로부터 직접 받고, 제10장과 11일에 성령으로 주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서한의 장 —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우리는 그가 1세기에 하나님의 질서를 가르치고 19세기에 인간의 무질서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신성한 제도를 함부로 조작할 권리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유월절의 질서를 방해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는 성찬과 관련된 일점 일획이라도 변경할 권한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독자들이 하나님의 임재와 성경의 빛에 비추어 깊이 생각하고 대답하도록 간절히 간청합니다. 사도는 런던이나 다음 주의 날에 기독교계의 다른 어느 곳에서 이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까? 성령의 능력 으로 예수 이름이라는 한 중심에 모여 한 몸의 땅 위에 모인 제자들 가운데 그가 어디로 가서 주님의 식탁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로? 인간의 권위나 임명이나 안수 없이도 그가 자신의 은사를 행사할 수 있는 영역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독자의 마음과 양심을 훈련하기 위해 이러한 질문을 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비록 약하고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들이 수행될 수 있는 곳이 여기 저기 있다는 것을 충분히 확신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독교 독자가 그것을 알아낼 엄숙한 책임이 있다고 믿습니다. 아아! 아아! 다른 방식으로 모이는 그리스도인 대중에 비하면 그 숫자는 매우 적습니다.
사람들이 그가 사도 바울이라는 것을 안다면 기꺼이 그에게 사역을 허락할 것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갈라디아서 1장에서 자신의 사역이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기 때문에 그들의 허락을 구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죽음에서 살아났어요."
그뿐 아니라, 우리는 복된 사도가 한 몸의 신성한 기초 위에 주님의 식탁이 펼쳐질 것을 주장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신약에 규정된 신성한 질서에 따라서만 주의 만찬을 먹는 데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잠시 동안 신성한 현실 외에는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제도에 대한 인간의 간섭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모임의 새로운 기반이나 조직의 새로운 원칙도 받아들이실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감받은 말을 반복하곤 했습니다. " 몸은 하나 이고 성령도 하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많으나 빵이 하나이고 몸이 하나입니다. 이는 우리가 모두 한 빵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각처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과 이 땅에서 교회가 존재하는 모든 시대에 선을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적용됩니다.
독자는 이에 대해 매우 명확하고 뚜렷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합과 일치의 원칙은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사회, 교회, 단체를 조직하고 형성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마음, 현재의 성령의 활동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행동을 합니다. 인간은 교회를 세우는 것보다 세상을 형성하는 일에 착수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신성한 작품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이 인정하는 유일한 교회, 유일한 몸입니다. 수천 명의 참그리스도인이 그것을 승인하고 옹호하더라도 그 밖의 모든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독자가 우리를 오해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구원이나 영생이나 신성한 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집합의 참된 근거, 즉 성찬이 차려지고 성찬을 거행해야 하는 신성한 원칙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수천 명의 주님의 사랑받는 백성들이 로마 교회의 친교 안에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끔찍한 배도이다. 그리고 미사 제사는 주의 만찬이 아니라 악마가 만들어낸 손상되고 훼손되고 비참한 창조물입니다. 독자의 마음 속에 있는 질문이 단지 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잃지 않고 얼마나 많은 오류를 승인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라면, 우리 앞에 있는 위대하고 중요한 주제를 계속 진행하는 것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비참하고 낮은 곳을 택하는데 만족할 만큼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자녀인 것으로 만족하고 그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와 양떼와 소떼를 즐길 수 있었지만, 여호와께서 예배하시는 곳에 예배하러 갈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고대 이스라엘 사람을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그의 이름을 기록했는가? 그 신성한 곳을 사랑하지 않은 충실한 유대인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주여 내가 주의 집이 계신 곳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나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국가 체제가 무너지고 백성들이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들 가운데서 진실한 포로들이 다음과 같은 감동적이고 설득력 있는 애도를 쏟아내는 것을 듣습니다. 우리가 거기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도다 거기서 우리를 사로잡은 자들이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였도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지상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중심) “내 오른손이 그 간교함을 잊게 하소서.” ··· 내가 너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 내가 나의 가장 큰 기쁨보다 예루살렘을 더 좋아한다면 말이다.” ( 시 137 .)
그리고 다시 다니엘 6장 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유배자가 사자 굴이 형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루에 세 번씩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왜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라고 고집합니까? 유대인의 미신이었나요? 아니; 그것은 신성한 원리의 장엄한 표현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어리석음과 죄로 인한 우울하고 굴욕적인 결과 속에서 하나님의 표준을 펼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예루살렘은 폐허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관한 하나님의 생각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은 그분의 지상 백성을 위한 그분의 중심지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조밀하게 건축된 성읍이 되었나니 여호와의 지파들이 그리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증거를 위하여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게 하려 함이요 거기에는 심판의 보좌 곧 여호와의 보좌를 두셨음이로다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라 네 성 안에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도 평안이 있기를 내가 이제 이르노니 네 안에도 평안이 있을 지어다 내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집에서 네 복을 구하리로다” ( 시 122편 )
예루살렘은 과거에도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중심지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위와 유사한 구절을 현세나 내세, 땅에나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적용하는 것은 단순히 상황을 뒤집어 놓고 본질적으로 다른 것들을 혼란스럽게 하며 성경과 인간의 영혼 모두에 헤아릴 수 없는 피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러한 부당한 자유를 취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예루살렘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지상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교회는 영광스럽고 무한히 귀중한 예수의 이름 외에는 어떤 중심도 소유해서는 안 됩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소중한 센터! 신약성경은 이것만을 지적하며, 성령은 이것만을 모십니다. 우리가 예루살렘이나 로마, 런던, 파리, 캔톤 등 어디에 모이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디가 아니라 어떻게 입니다 .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이 신적으로 실제적인 일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그렇지 않다면 예수의 복된 이름 안에 모인다고 공언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믿음에 관한 사도의 말은 우리 모임의 중심지에 관한 문제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사람이 말하되” 예수 이름으로 모이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나님은 도덕적 현실을 다루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 충실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그분의 이름 외에는 다른 어떤 센터나 모임의 장소를 소유하는 데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아주 분명하지만, 그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아아! 아아! 사람들이 그 복되고 거룩한 땅에 있다고 공언하면서도 그들의 정신과 행실, 습관과 방법, 그들의 모든 행동과 성품은 그들이 그들의 공언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합니까?
사도는 고린도인들에게 “말은 알지 못하고 능력만 알”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확실하고 항상 필요한 말씀이지만,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중요한 주제와 관련하여 특별히 필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임재의 거룩한 은퇴와 신약성경의 빛 속에서 이 문제를 고려하는 기독교 독자의 책임을 사랑으로, 그러나 가장 엄숙하게 강조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것을 제쳐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주님의 영광과 그분의 진리를 유지하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이 무엇이 본질적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중심지에 집합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습니까? 미해결 질문으로 남겨졌나요? 모든 사람이 스스로 센터를 선택할 수 있습니까? 신명기 14장 에 비추어 그 대답을 생각해 보자 .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하나님의 중심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신 곳에서 감히 등을 돌리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아주 빨리 자신의 실수를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지상 백성에게도 해당된다면, 교회와 그리스도인 개인에게도 똑같이 해당되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장 높고 가장 신성한 의무에 따라 한 몸 외에는 모일 수 있는 모든 근거를 거부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제외한 모든 모임의 중심지 ; 성령 외에 모으는 모든 능력 ; 하나님의 말씀 외에 모으는 모든 권세 . 모든 곳에 있는 주님의 사랑하는 백성이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도록 인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가장 가치 있고 실용적인 가르침을 찾을 수 있는 장의 마지막 문단을 인용하여 이 부분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삼년 끝에는 그 해 네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문 안에 저축하고 또 레위인(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라)과 타국인과 네 성중에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리니 그리 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여기서 우리는 사랑스러운 가정의 장면, 신성한 성품의 가장 감동적인 표현, 이스라엘 하나님의 은혜와 친절의 아름다운 광채를 봅니다. 이와 같은 구절의 향기로운 공기를 호흡하는 것은 마음에 유익합니다. 그것은 우리 주변의 냉랭한 이기심과 생생하고 눈에 띄는 대조를 이룹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을 생각하고 돌보도록 가르치실 것입니다. 십일조는 그분의 것이었지만 그분께서는 마음을 기쁘게 하는 복된 목적에 그것을 바칠 수 있는 흔치 않고 절묘한 특권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었습니다.
"오리라", "먹고 배부르게 되리라"라는 말에는 특유의 감미로움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나님처럼 말입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분은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분의 백성을 그분의 마음의 은혜와 친절과 동정이 모든 사람에게 흘러가는 통로로 만드는 것이 그분의 기쁨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나님의 구제자, 그분의 은혜의 분배자, 그분의 선하심을 나타내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우리가 이 모든 것의 깊은 축복 속으로 더욱 완전하게 들어가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의 분위기를 더 많이 호흡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신실하게 반영하게 될 것입니다!
28절과 29절에 제시된 매우 흥미롭고 실제적인 주제는 26장을 연구할 때 또 다른 연결로 우리 앞에 올 것이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 다루지 않겠습니다.
신명기 15장
매 칠년 끝에 너는 면제할 것이요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권자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 지니라 이는 여호와의 해방이라 칭하느니라 .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면 네 형제에게 속한 것은 네가 다시 징수할 것이니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그것을 기업으로 주시나니 그가 네게 약속하셨으니 네가 많은 나라에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네가 많은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그들은 너를 다스리지 아니하리라.” (1-6절.)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레위 의식의 다양한 희생과 엄숙함과 제도를 통해 그분의 백성의 마음을 자신에게로 이끄려고 노력하신 방식을 표시하는 것은 참으로 교훈적입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어린 양이 있었습니다 . 매주 거룩한 안식일이 있었습니다 . 매달 초승달이 있었다 . 매년 유월절이 있었습니다 . 3년 마다 십일조를 냈습니다 . 7년 마다 석방이 있었습니다 . 그리고 매 50년 마다 희년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깊은 관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그 자신의 달콤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자신의 소중한 교훈을 마음에 가르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아침과 저녁의 어린 양은 언제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가리켰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는 안식의 사랑스러운 예표였습니다. 초승달은 회복된 이스라엘이 의의 태양 광선을 열방 위에 반사할 때를 아름답게 예표했습니다. 유월절은 그 나라가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된 것을 기념하는 기념물이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해는 여호와께서 땅을 소유하신다는 사실과 또한 그분의 일꾼과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분의 지대를 지출해야 하는 아름다운 방법을 명시해 줍니다. 안식년은 모든 빚이 탕감되고, 모든 대출금이 처리되고, 모든 부담이 제거될 밝은 시간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희년은 포로가 풀려나고 포로가 오랫동안 잃어버린 집과 상속 재산으로 돌아갈 때, 모든 것이 회복되는 때의 장엄한 모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땅과 온 땅이 다윗의 자손의 자비로운 정부 아래서 기뻐할 때입니다.
이제 이 모든 사랑스러운 제도에서 우리는 두 가지 두드러진 특징, 즉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에게 축복을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신성하고 영원한 유대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완전한 영광과 피조물의 완전한 축복이 서로 불가분하게 연결되도록 정하셨습니다. 이는 마음에 깊은 기쁨이 되며,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기뻐하노라”라는 친숙한 문장의 힘과 아름다움을 더욱 완전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 영광이 충만한 광채로 빛날 때, 인간의 축복과 안식과 행복은 확실히 충만하고 영원한 완성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는 일곱째 해에 이 모든 것에 대한 사랑스러운 서약과 예표를 봅니다. 그것은 “주의 해방”이었으므로 단에서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난한 빚진 자들은 그 복된 영향력을 느낄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빚진 자의 마음을 즐겁게 노래하게 함으로써 그분과 교제할 수 있는 높고 거룩한 특권을 그분의 백성에게 허락하실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배우기만 한다면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솔직하게 용서하는 깊은 축복을 그들에게 가르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 자신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분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이름이 영원히 찬송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아아! 불쌍한 인간의 마음은 이 사랑스러운 수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 천국의 길을 걸을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 않습니다. 슬프게도 그것은 낮고 비참한 이기심으로 인해 신성한 은혜의 원칙을 파악하고 실행하는 데 있어서 비좁고 방해를 받습니다. 이 천국의 분위기는 그다지 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길에서 그토록 밝게 빛나는 왕 같은 은혜의 그릇이자 통로가 되기에는 아직 준비가 부족합니다. 이는 다음 구절의 주의 사항을 너무 충분히 설명할 뿐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네 형제 중 가난한 사람이 있거든 네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며 가난한 형제에게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오직 너는 그에게 네 손을 펴서 그가 원하는 대로 그에게 넉넉히 꾸어주라. 너희는 삼가서 네 악한 마음으로 이르기를 일곱째 해 곧 면제의 해가 가까웠느니라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네가 네 가난한 형제를 악하게 바라보고 그 에게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리니 그가 너를 향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네가 그에게 줄 때에는 근심하지 말지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그러므로 네 땅에는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리라 . 네 땅에 있는 네 형제 곧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 (7-11절)
여기에서 가련하고 이기적인 마음의 깊은 샘이 발견되고 심판됩니다. 인간 본성에 숨겨진 악의 뿌리를 드러내는 데에는 은혜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인간은 신성한 사랑의 매개체가 되기 전에 도덕적 존재의 가장 깊은 샘에서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은혜를 통해 새로워진 사람들도 우리의 타락한 본성이 옷을 입고 있는 추악한 형태의 이기심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합니다. 은혜 외에는 어떤 것도 인간의 모든 필요에 대해 마음을 활짝 열어 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운명이 걸린 비참하고 황폐한 상황 속에서도 축복의 통로가 되려면 우리는 하늘 사랑의 샘 곁에 굳건히 머물러야 합니다.
“네 손을 활짝 펴라!”라는 말씀은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그들은 바로 천국의 공기를 호흡합니다. 열린 마음과 넓은 손은 하나님과 같습니다. “주께서는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그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느니라."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을 본받는 사람이 되는 흔치 않고 가장 절묘한 특권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 그것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마음은 놀라움과 사랑과 찬양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은혜 안에 서 있고, 복된 은혜의 다스림 아래 살고, 은혜의 분위기를 호흡하며, 우리 형제들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은혜의 살아 있는 해설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가족.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그리스도인 독자들이여, 이 모든 신성한 교훈에 우리 마음을 부지런히 적용합시다. 그것은 가장 귀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의 진정한 소중함은 그것을 실제적으로 실행해 볼 때에만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만 가지 형태의 인간의 비참함, 인간의 슬픔, 인간의 필요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사방에 상한 마음, 짓눌린 영혼, 황폐한 집이 있습니다. 과부, 고아, 이방인들이 매일 우리가 걷는 길에서 우리를 만납니다. 이 모든 것과 관련하여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우리는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그들에게 손을 닫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주의 해방”이라는 사랑스러운 정신으로 행동하려고 합니까? 우리는 신성한 본성과 성품을 반영하는 사람,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과 인간의 모든 필요 사이를 직접 소통하는 통로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공언하는 도덕적으로 영광스러운 기독교의 모든 특징과 원칙을 가장 비참하게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천국의 복된 빛을 우리 주위에 비추는 것은 우리의 높고 거룩한 특권이며, 그렇습니다. 우리의 특별한 사명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가족이든지, 들판이든지, 마트나 공장이든지, 상점이든지 계산실이든지, 우리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은 우리의 길, 우리의 말, 우리의 모습. 그리고 어떤 필요한 일이 우리 앞에 나타나거나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위로의 말을 귀에 대고 눈물을 흘리거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동정의 한숨을 쉬어야 합니다.
독자여, 우리도 이와 같습니까? 우리는 신성한 사랑의 샘 근처에 살고 있으며 하늘의 공기를 호흡하여 이러한 것들의 복된 향기가 우리 주위에 퍼지도록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본성의 추악한 이기심, 타락하고 패괴된 인류의 거룩하지 못한 성품과 성품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이기적인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보기 흉한 대상입니까? 그는 서있는 모순이자 살아 있고 감동적인 거짓말입니다. 그가 고백하는 기독교는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그의 삶에서 드러나는 불경건한 이기심을 어둡고 끔찍한 안도감으로 몰아냅니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고 부르는 모든 사람이 매일의 삶에서 모든 사람이 알고 읽는 흠 없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도록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불신앙은 적어도 가장 중요한 주장 중 하나, 가장 심각한 반대를 박탈당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일관성 없는 삶보다 이교도들에게 더 강력한 탄원을 제공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한 간청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잠시 동안만 유효하거나 강력하게 주장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경전을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 경전의 빛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는 일관된 그리스도인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춰 그들이 그들의 선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할 엄숙한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하늘의 원칙을 일상생활에서 보여주고 설명할 엄숙한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말의 탄원이나 논쟁도 없이 이교도를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마음에 새기면, “주님의 해방”이라는 기쁜 제도를 묵상하여 하나님을 송축할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제 히브리 종과 관련하여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제도를 독자들에게 인용하겠습니다. 우리는 성신의 진정한 언어를 전하는 것의 중요성을 점점 더 느끼고 있습니다. 독자가 참조할 성경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는 성경 구절을 참조할 때 많은 경우에 우리가 들고 있는 책을 내려놓기를 꺼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참조를 읽으려면 우리 손에 있어야합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어떤 논평의 목적은 단순히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독자가 우리가 인용하는 성구를 이해하고 감상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려 육년 동안 너를 섬기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네게서 자유롭게 할 것이요 그를 빈손으로 보내지 말고 네 양 떼 중에서와 네 마당에서와 네 포도주 틀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중에서 그에게 후히 줄 지니라.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완벽하게 아름답고, 언제나 은혜로우신 우리 하나님과 얼마나 흡사합니까! 그는 그 형제가 빈손으로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자유와 빈곤은 도덕적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 형제는 그의 자유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넉넉한 재산을 가지고 자유롭고 충만하며 해방되고 부여된 길로 보내질 예정이었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신성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절묘한 윤리를 가르치는 학교에서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 주위에 천국의 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하나님의 낙원의 향기로운 냄새를 발산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대하신 것이 아니냐? 그분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찬양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과 자유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현세와 영원을 위해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후하게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무한한 하늘 보고를 열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우리를 위해, 곧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분의 품의 아들을 주셨습니다 . 우리 에게 , 만족시키기 위해 .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지금의 삶과 앞으로 올 삶에 관한 모든 것은 우리 아버지의 관대하신 손길로 완전하고 완벽하게 보장됩니다.
그리고 히브리 종이 대접받을 방식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주목하는 것은 깊은 감동을 주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에게 후하게 베풀어 주십시오 ." 마지못해서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합당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그분의 백성의 행동은 그분 자신을 반영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도덕적 대표자가 되는 높고 거룩한 존엄성을 갖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무한한 은혜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영원한 지옥의 불길에서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세상 가운데서 그분을 대신하여 행동하고 그분과 같이 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이 숭고한 존엄성을 부여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엄청난 재산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늘의 무한한 자원은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무한한 은혜를 통해 “만물이 우리 것”입니다. 오! 우리가 우리의 특권을 더욱 충분히 깨닫고, 그리하여 우리의 거룩한 책임을 더욱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우리 장 15절에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적인 동기, 즉 그들의 애정과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탁월하게 계산된 동기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네가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내가 오늘 네게 명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속량하여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여 영원히 지속될 것이니라 그리고 불쌍한 형제를 향한 그들의 행동의 강력한 동기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 원칙이며, 우리가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거래에서 우리의 동기를 찾는다면 이보다 더 낮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우리 마음 앞에 간직할 때에만 우리는 참된 길을 추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형제를 향한 것이든 외부인을 향한 것이든,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 솟아오르는 단순한 친절한 감정이든, 다른 사람의 슬픔과 고난과 궁핍으로 인해 생겨나는든,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자신 안에서만 나타날 것입니다. 다년생 샘.
16절에는 종이 주인과 함께 있기를 더 좋아하는 경우가 고려되어 있습니다. “그가 너와 함께 행복하므로 내가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르거든 너는 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뚫으라. 문을 열면 그는 영원히 당신의 종이 될 것입니다."
이 구절을 출애굽기 21:1-6 과 비교해 보면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이 각 책의 독특한 성격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전형적인 특징이 두드러진다. 신명기에서는 도덕적인 . 그러므로 영감받은 저자는 출애굽기 21장 에 있는 모형의 아름다움과 완전성에 매우 중요하지만 여기서 그의 목적에 맞지 않는 것으로서 후자에서 아내와 자녀에 관한 모든 것을 생략합니다 . 우리는 이것을 단지 신명기가 전임자들의 무익한 반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많은 놀라운 증거 중 하나로 주목했을 뿐입니다. 한편으로는 반복도, 다른 한편으로는 모순도 없고, 각 책의 신성한 목적과 범위에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랑스러운 다양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이 장대한 부분을 불경건하고 무모하게 쳐부수는 불신자들의 경멸할 만큼 천박함과 무지가 너무도 큽니다.
그렇다면 우리 장에서는 이 흥미로운 제도의 도덕적 측면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종은 주인을 사랑했고 그와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주인과 함께하는 영원한 노예 생활과 그 특징을 그에게서 빼앗아 자유와 관대한 몫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양측 모두에게 좋은 주장이 될 것입니다. 연결이 오래 지속될 경우 이는 주인과 하인 모두에게 좋은 징조입니다. 지속적인 변화는 일반적으로 어딘가에서 도덕적 잘못의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예외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인과 하인의 관계에서도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고려해야 할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이 끊임없이 종들을 바꾸는지, 아니면 종이 끊임없이 주인을 바꾸는지 고려해야 합니다. 전자의 경우, 겉모습은 주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후자에서는 하인을 상대로.
사실, 우리 모두는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주인인 우리는 종들의 안락과 행복, 견고한 이익을 얼마나 추구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종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일의 양보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살고 살자"라는 낮은 수준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인을 행복하고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 지붕 아래에 집이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의 손의 수고로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마음의 사랑을 원합니다. 우리는 아주 큰 회사의 사장에게 "당신은 얼마나 많은 하트를 사용합니까? "라고 물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주인과 하인의 관계에 얼마나 작은 마음이 있는지를 진심으로 슬퍼했습니다. 그러므로 " 손을 사용한다 "는 흔한 무자비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스승은 전체적으로 더 높은 수준에 서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 되는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면 종을 향한 그의 모든 행동이 규제될 것이다. 그것은 일상 생활의 모든 실제적인 세부 사항에서 그분을 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깊은 관심과 탄탄한 이익을 가지고 그분의 신성한 모델을 연구하도록 이끌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종과 관련하여 그의 지위와 행동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과 마찬가지로 그도 이 땅을 밟았던 유일하고 참된 종의 길과 사역에서 그 앞에 놓인 위대한 모범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분은 그분의 복된 발자취를 따라 걷고, 그분의 영을 마시고,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다른 모든 관계를 다 합친 것보다 종의 교훈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셨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독자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디도서에서 이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종은 도용하지 않고 다시 대답하지 않음으로써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리를 빛낼 수 있습니다. 그는 영원한 현실에 대해 수천 명에게 말씀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정 생활의 가장 평범한 의무에서도 주 그리스도를 효과적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인과 종이 모두 하늘의 원리에 의해 서로 다스려질 때, 둘 다 한 주님을 섬기고 영광을 돌리기를 추구할 때, 그들은 행복하게 함께 지낼 것입니다. 주인은 가혹하거나 자의적이거나 가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종은 자기만을 추구하거나 완고하거나 교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각자는 자신의 상대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상대방의 위안과 행복, 그리고 가정 전체의 평화와 행복에 기여할 것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이러한 하늘의 방식을 따른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러면 참으로 하나님의 진리가 입증되고, 그분의 말씀이 존중되며, 그분의 이름이 우리의 가정 관계와 실제적인 방식에서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18절에는 가난한 인간 마음 속에 있는 도덕적 뿌리를 매우 충실하면서도 아주 섬세하게 우리에게 드러내는 권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그를 네게서 자유롭게 보낼 때에 네게 어려움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육년 동안 너를 섬김으로 품꾼의 갑절이나 가치가 있는 것임이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
이것은 매우 영향을 미칩니다. 인간의 마음, 즉 주인의 마음 앞에 서서 가난한 종의 변호를 변호하고 그의 주장을 제시하기 위해 겸손히 낮아지시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치 그분 자신을 위해 부탁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는 사건을 강화하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6년 동안 봉사한 것의 가치를 상기시키고, 그의 관대한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더 큰 축복을 약속함으로써 그를 격려합니다. 그것은 완벽하게 아름답습니다. 주님께서는 관대한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그 일을 받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방식으로 행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는 행동의 내용 뿐만 아니라 스타일 도 생각합니다 . 때때로 우리는 친절을 베푸는 일에 전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의무로서 그것을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어려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 행위는 모든 매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관대한 행위를 빛나게 하는 것은 관대한 마음이다. 우리는 그 행위로 인해 우리 자신의 마음이 기쁘다는 것을 받는 사람이 확신할 수 있도록 친절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성한 방식입니다. "갚을 것이 없었을 때 그분은 두 사람 모두를 솔직히 용서해 주셨습니다."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하는 것이 모임입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는 기쁨이 되느니라" 오! 우리 아버지 마음의 소중한 은혜를 더 밝게 비추는 사람이 되도록!
매우 흥미로운 이 장에 대한 설명을 마치기 전에 독자를 위해 마지막 단락을 인용하겠습니다. “네 우양의 처음 난 수컷은 다 구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것이요 네 수소의 첫 새끼에게는 아무 일도 하지 말며 양의 첫 새끼의 털도 깎지 말고 여호와 앞에서 먹을지니라” 너와 네 가족은 해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그 몸에 흠이 있거나 절거나 눈이 먼 것이나 무슨 흠이 있거든 너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리지 말지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여 너는 그것을 네 성문 안에서 먹으라 부정한 자나 정한 자나 노루나 사슴 같이 먹되 그 피는 물 같이 땅에 뿌리지 말라 " (19-23절)
오직 완전한 것만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했습니다. 맏아들, 흠 없는 남자,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적절한 모습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우리 평화의 썩지 않는 기초이자 우리 영혼의 귀중한 음식을 하나님 앞에서 바치셨습니다. 이것은 신성한 일이었습니다. 회중은 신성한 중심 주위에 함께 모여서, 동시에 우리의 희생이요, 중심이요, 절기이신 그리스도의 지정된 모형이었던 하나님 앞에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분의 가장 귀하고 영광스러운 이름에 대한 영원하고 보편적인 경의!
신명기 16
이제 우리는 신명기의 가장 심오하고 포괄적인 부분 중 하나에 접근합니다. 그 부분에서 영감받은 저자는 우리가 유대력의 세 가지 주요 절기라고 부를 수 있는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또는 구원과 성령과 영광이니라. 여기서 우리 는 안식일을 계산하면 여덟 개의 절기가 있는 레위기 23 장에 나오는 것보다 아름다운 제도에 대해 더 압축된 견해를 갖게 됩니다 . 그러나 우리가 안식일을 구별되는 것으로 본다면, 하나님 자신의 영원한 안식의 모형으로서 그 자체의 특별한 위치를 갖는다면, 일곱 절기, 즉 유월절이 있을 것입니다. 무교절; 첫 열매의 축제; 오순절; 트럼펫; 속죄일; 그리고 장막.
가장 놀라운 책에 대한 우리의 연구에서 우리가 감히 언급한 바와 같이, " 제사장의 지침서" 라고 부를 수 있는 레위기의 절기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 그러나 주로 백성을 위한 책인 신명기에는 의례적인 세부 사항이 거의 없으며 입법자는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백성에게 적용되는 과거를 제시하는 위대한 도덕적, 국가적 기준에만 국한됩니다. 현재도, 미래도.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는 양 떼와 소 떼를 구별하지 말고 칠일 동안에는 무교병 곧 고난의 떡 을 먹지 말지니 이는 네가 광야에서 나왔음이니라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살라 네가 평생 동안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하라 그리하면 칠일 동안 네 모든 경내에서 유교병이 보이지 아니하리라 네가 첫날 저녁에 제사한 고기를 아침까지 밤새도록 지내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어느 성에서든지 유월절 제사를 드리지 말라 이는 어디에서든지 별 일이 아닌 것 같이 함이니라 , 절기를 지키면 — "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 다른 곳에서는 — "유월절 양을 저녁과 해질 때에 드리고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것을 구워 먹되 너는 아침에 돌아와서 네 장막으로 돌아갈지니라. 엿새 동안 너는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일곱째 날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지니라”(1-8절)
출애굽기 주석에서 이 기초 잔치의 위대한 주요 원칙을 어느 정도 충분히 다루었으므로 독자가 그 주제를 연구하기를 원한다면 그 책을 참조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명기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되는 신명기의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리고 우선, 우리는 절기가 지켜지는 “장소”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흥미와 실제적인 순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에 따르면 잔치가 어떻게 지켜졌는지, 어디에서 잔치가 지켜졌는지는 아주 사소한 문제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가 주의 깊게 주목하고 깊이 숙고해 보면 인간의 사고는 이 문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신성한 생각이자 신성한 권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만날 장소를 정하시고 결정적으로 정하실 권리가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위의 구절에서 가장 뚜렷하고 강조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그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이라는 중요한 구절을 세 번이나 삽입하셨습니다.
헛된 반복인가요? 아무도 감히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더욱이 그것을 주장하지도 못하게 하십시오. 가장 필요한 강조점입니다. 왜 가장 필요한가요?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 그리고 고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무한한 선하심으로 그분의 백성의 마음과 양심과 이해력에 특별한 수고를 하셔서 특히 기억에 남을 만한 가장 의미 있는 유월절 잔치를 지킬 한 장소를 마련하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축하의 장소를 주장하는 곳은 신명기에만 있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출애굽기에서는 그것에 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집트에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에는 그것에 관한 내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광야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명기에는 그 땅 에 대한 지시가 있기 때문에 권위 있고 확실하게 결정되어 있습니다 . 신명기가 전임자들의 빈약한 반복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 또 다른 놀라운 증거입니다.
우리 장에 기록된 세 가지 대축일 모두에서 매우 뚜렷하고 단호하게 주장된 "장소"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하는 백성을 그분 주위에 모아 그분의 잔치에서 함께 잔치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있음; 이는 그가 그들 안에서 기뻐하고 그들이 그 안에서 그리고 서로 안에서 기뻐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특별한 장소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만나고 그분의 백성을 만나고자 하는 모든 사람, 하나님에 따른 예배와 교통을 원하는 모든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중심지로 나아갈 것입니다. 자기 의지는 "우리 가족의 품에서 잔치를 지킬 수 없느냐? 긴 여행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확실히 마음이 옳다면 장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마음이 옳다는 것에 대한 가장 명확하고 최선의 증거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단순하고 진지한 소망에서 찾을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날 장소를 정하신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발견될 것이고 다른 곳에서는 발견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의 임재만이 그들의 모든 위대한 민족 상봉에 기쁨과 위로와 힘과 축복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많은 사람들이 일 년에 세 번씩 함께 모여 함께 잔치를 벌이고 기뻐한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자부심, 자기 만족 및 흥분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모여 여호와를 만나고, 그분의 복된 임재 앞에 모이고, 그분이 자신의 이름을 기록한 곳을 소유하는 것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전체에 걸쳐 참으로 충성스러운 모든 마음의 깊은 기쁨이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고의로 집에 머물거나 하나님이 정하신 장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여호와를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분의 최고 권위에 반역하는 것입니다.
이제 장소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한 후 축하 의 방식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이 역시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우리 책의 특징입니다. 여기서 가장 큰 특징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그러나 독자는 이 떡이 " 고난의 떡"이라는 흥미로운 사실에 특히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모두는 무교병이 하나님과의 참된 교통을 누리는 데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마음과 삶의 거룩함의 모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거룩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거룩함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은 우리 구원의 근거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친교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허용된 누룩은 친교와 예배에 치명적인 타격을 줍니다.
우리는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은 대로 날마다 살도록 부르심을 받고, 속박되고, 특권을 받은 개인의 거룩함과 실제적인 경건의 삶에서 이 위대한 기본 원칙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천국에 있는 영원한 안식처를 찾기 위해 여행하는 장면과 상황 가운데서 말입니다. 알려진 죄 가운데 살면서 친교와 예배에 대해 말하는 것은 우리가 둘 중 하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우울한 증거입니다. 하나님과의 교통, 즉 성도들의 교통을 누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우리는 개인적인 거룩함의 삶, 알려진 모든 악에서 분리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에서 우리의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에 따른 거룩한 교제와 예배에 참여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은밀한 죄 가운데 살거나 다른 사람에게 악을 허용하는 것은 모임을 더럽히고 성령을 근심하게 하며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여, 하나님의 심판을 우리에게 내리소서. 하나님은 지금 자기 집을 심판하시고 자기 자녀들을 징계하셔서 궁극적으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모든 것은 가장 엄숙하며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진정으로 갈망하고 경건함과 경건한 두려움으로 그분을 섬기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의 진지한 관심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모형의 교리를 갖는 것과 그 위대하고 도덕적인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생활에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입니다. 어린 양의 피를 양심에 뿌렸다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이 무교절을 지키도록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으니 우리가 절기를 지키자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독과 악의의 누룩으로도 하지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빵으로 하라." ( 고전 5:6-8 .)
그러나 우리는 “고난의 떡”을 무엇으로 이해해야 합니까? 오히려 우리는 이집트의 속박과 비참함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잔치와 관련하여 기쁨과 찬양과 승리를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심할 바 없이, 우리가 이전 상태로부터 온전한 구원과 그에 수반되는 모든 결과와 그 모든 결과에 대한 복된 진리를 깨달을 때 매우 깊고 참된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유월절 잔치의 두드러진 특징이 아니었음은 매우 분명합니다. 실제로 이름조차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고난의 떡”이 있지만 기쁨이나 찬양이나 승리에 관한 말씀은 없습니다.
자, 왜 그럴까요? 고난의 떡이 우리 마음에 어떤 위대한 도덕적 교훈을 전달합니까?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죄와 그 죄가 마땅히 받아야 할 심판에서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 우리의 사랑스러운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대가를 강력하게 우리 앞에 가져옴으로써 성신께서 만들어 내시는 깊은 마음의 훈련으로 제시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훈련은 또한 출애굽기 12 장의 “쓴 나물”로 상징되며 ,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강력한 활동으로 인도되어 스스로를 징계한 고대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에서 반복해서 설명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면전에서 “그들의 영혼을 괴롭게”합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행사에는 법적인 요소나 불신앙의 흔적이 조금도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스라엘인이 유월절 구운 고기와 함께 고난의 떡을 먹을 때 그것은 그의 완전한 구원에 대한 의심이나 두려움을 표현하였습니까? 불가능한! 어떻게 그럴 수 있니? 그는 그 땅에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중심, 즉 그분의 임재로 모였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이집트 땅에서 자신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구원을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그 생각은 단순히 터무니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구원에 대해 어떠한 의심이나 두려움도 없었지만 고난의 떡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유월절 잔치에서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은 네가 평생에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하게 하려 함이라 .”
이것은 매우 깊고 실제적인 작업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일을 결코 잊지 말아야 했습니다. 오직 약속의 땅에서 대대로 이를 기억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들은 참되고 실천적인 그리스도인 경건을 특징짓는 거룩한 행사를 상징하는 축일로 그들의 구원을 기념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고난의 떡”이 가리키는 진리의 전체 노선에 그리스도인 독자들이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일 것을 매우 진지하게 권고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은혜의 교리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특히 젊은 교수들에게는 합법성과 속박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경솔함의 반대 극단, 즉 가장 끔찍한 올무에 빠질 위험이 매우 큽니다. 나이 많고 경험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슬픈 악에 빠지기 쉽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가장 엄숙하게 경고해야 할 사람은 우리 가운데 있는 젊은이들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 믿음으로 의롭게 됨, 율법으로부터의 구원,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지위에 있는 모든 독특한 특권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이 모든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할 필요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그들에 대해 너무 많이 듣는 것은 전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들은 더 많이 이야기되고, 기록되고, 설교될 것입니다. 수천 명의 주님의 사랑받는 사람들은 그 위대한 기본 진리에 대한 무지로 인해 어둠과 의심과 법적 속박 속에서 그들의 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사실이기는 하지만, 반면에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아쉽습니다! 은혜의 원리에 대해 단지 지적으로만 친숙하지만,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습관과 태도, 스타일과 행실로 판단한다면, 그들은 위대한 저들의 성화시키는 능력을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원칙 - 마음과 삶에 미치는 힘.
이제 유월절의 가르침에 따라 말하면, 누구든지 무교병, 곧 고난의 빵 없이 그 절기를 지키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일은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용납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꼭 필요한 성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개인적 거룩함과 출애굽기 12 장의 "쓴 나물"로 매우 적절하게 표현된 영혼의 상태를 지키고 지키도록 권고받는 절기의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또는 신명기의 요소인 "고난의 떡"은 그 땅에 대한 영구적인 상징인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우리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우리 마음에 드러내심으로써 만들어 내실 영적 감정과 애정, 즉 영혼의 심오한 훈련이 우리 가운데 깊고 긴급하게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우리 죄를 없애 주소서.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의 파도와 파도 아래를 지날 때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참으셨던 것입니다. 슬프게도 우리에게는 귀중한 구주의 고난과 죽음을 영적으로 사로잡은 데서 흘러나오는 깊은 마음의 통회가 부족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양심에 뿌리는 것과 그리스도의 죽음을 영적인 방법으로 마음에 가져오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실제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마음에 적용시키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전체 코스와 성격.
우리는 어떻게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그렇게 가볍게 죄를 지을 수 있습니까? 어찌하여 그토록 경솔하고, 그토록 무절제하며, 그토록 많은 방종과, 그토록 많은 육체적 안일함과, 그토록 거품 많고 피상적인 것이 많습니까? 우리의 잔치에는 “고난의 떡”으로 상징되는 그 재료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기독교에 깊이와 진지함이 매우 한심할 정도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두려워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심오한 신비에 대한 경솔한 논의가 너무 많고, 내적 힘이 없는 머리 지식이 너무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은 독자의 진지한 관심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우울한 상황이 적지 않게 복음을 전파하는 특정 스타일에 너무도 정당하게 추적될 수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최선의 의도로 채택되었지만 도덕적 효과에 있어서는 그다지 해롭지 않은 것입니다. . 단순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것은 어떤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성령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보다 더 간단하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완전히 인정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말하는 설교에는 매우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영적인 깊이가 부족하고 거룩한 진지함이 부족합니다. 합법성에 맞서려는 노력에는 경솔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합법성은 큰 악이지만 경솔함은 훨씬 더 큽니다. 우리는 두 가지 모두를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은혜가 전자에 대한 치료법이고 후자에 대한 진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올바로 조정하고 적용하려면 영적인 지혜가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진리의 강력한 활동으로 깊이 단련되고 성령의 강력한 사역으로 철저히 갈아진 영혼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제시된 대로 하나님의 순결하고 귀한 은혜의 깊은 위로를 쏟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효과적인 희생. 이것이 상한 마음, 통회하는 심령, 깨어진 양심에 대한 신성한 치료법입니다. 영적인 쟁기로 깊은 고랑을 팠을 때, 우리는 썩지 않는 하나님의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만 하면 되고, 그것이 뿌리를 내리고 때가 되면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반면에 은혜에 관해 매우 거창한 언어를 사용하고 큰 소리로 합법성에 반대하며 순전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쉬운 말씀을 제시하려고 하는, 가볍고 경쾌하며 깨지지 않는 상태에서 행동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구원받는 방법에 있어서 우리는 이것이 마음과 양심에 진리를 매우 엄숙하게 적용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공언하는 교회 안에 이 마지막 요소가 해외에 방대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크게 두려워합니다. 우리 유형의 언어에 따르면 유월절을 무교절과 분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심판에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안주하고 구운 어린 양과 성결 의 빵 과 성찬의 빵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난 .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로 묶으셨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기를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는 귀한 진리를 참으로 누릴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깊은 축복과 소중함과 효능에 대해 우리 마음에 보여 주실 때, 그분은 우리가 영혼을 굴복시키는 그분의 고난의 신비를 묵상하고 그분이 하신 모든 일을 마음속에 묵상하도록 이끄십니다. 슬프게도 우리를 영원한 결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분이 치르신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통과하셨습니다! 너무 자주 가볍게 커밋합니다.
이제 이것은 매우 깊고 거룩한 일이며, 무교절의 “고난의 빵”에 상응하는 활동으로 영혼을 인도합니다. 우리의 죄를 깊이 생각할 때 생기는 감정과 그 죄를 없애기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생각할 때 나오는 감정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결코 잊을 수 없으며, 우리가 파낸 구덩이를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덩이 위에 머무는 것과 우리를 구덩이에서 끌어내신 은혜와 우리의 귀중한 구주께서 그것을 행하기 위해 치르신 대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더 깊은 일입니다. 우리가 마음속 생각을 계속해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후자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변덕스러워서 잊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더 깊고 실제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그분을 대적하는 모든 것에 십자가를 적용할 수 있도록 매우 진지하게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어조의 깊이, 영의 부드러움, 마음과 삶의 거룩함을 이룬 강렬한 호흡, 모든 면에서 세상과의 실제적인 분리, 거룩한 굴복, 우리 자신과 우리의 생각과 말과 길에 대한 질투심 많은 깨어 있음을 부여할 것입니다. 일상 생활에서 우리의 모든 행동. 한마디로, 그것은 우리 주변에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기독교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개인 역사를 전시합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직접적이고 강력한 사역을 통해 우리 마음에 " 구운 어린 양", " 무교병 ", " 고난 의 빵 "이 의미하는 바를 더욱 더 많이 드러내시기를 바랍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한 추가 설명을 보려면 독자에게 출애굽기 12장 과 민수기 9장을 참조하세요 . 특히 후자에서는 유월절과 성찬의 연관성이 드러난다. 이는 가장 깊은 관심을 끄는 점이자 실천적으로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고대했습니다. 주의 만찬은 그것을 되돌아본다. 전자가 신실한 이스라엘 사람에게 있었던 것처럼, 후자는 교회에게 있었습니다. 만일 이것을 좀 더 충분히 알게 된다면 주의 만찬과 만찬에 대한 만연한 태만과 무관심과 오류를 대면하는 경향이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성경의 거룩한 분위기에 사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매우 간단하고 분명하게 제시된 주제에 관해 생각의 혼란과 실천의 다양성을 표시하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게 보일 것입니다. .
사도들과 초대교회가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기 위해 모였다는 사실은 성경에 머리를 숙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약에는 가장 귀중한 의식을 한 달에 한 번, 분기에 한 번, 또는 6개월에 한 번으로 제한하는 영장의 그림자가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제도에 간섭하는 것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희가 자주 행하는 대로"라는 말을 통해 많은 것을 얻고자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조항에 근거한 어떤 주장이 사도 행전 20:7 에 있는 사도적 선례에 직면하여 잠시 동안 어떻게 설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 주일의 첫날은 의심할 바 없이 교회가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날이다.
기독교 독자는 이것을 인정합니까? 그렇다면 그는 그에 따라 행동합니까? 그리스도께서 배반당하시던 그날 밤, 너무나 큰 영향을 끼치는 상황 속에서도 그분이 정하신 특별한 의식을 등한히 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확실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하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이 특별한 방법으로 그분을 기억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이 귀중한 기념을 습관적으로 무시하고 살아가는 것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까? 고대 이스라엘 사람이 유월절을 무시했다면 그는 “끊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이었고 우리는 은혜 아래 있습니다. 진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주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이유가 됩니까?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해 독자들의 주의 깊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여기에는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18세기 동안의 성찬의 역사 전체가 흥미와 교훈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성찬이 다루어지는 방식에서 교회의 실제 상태에 대한 놀라운 도덕적 지표를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서 떠날수록 교회는 성찬이라는 귀중한 제도를 무시하고 왜곡시켰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영이 언제든지 교회 안에 특별한 능력으로 역사하셨듯이, 주의 만찬은 그분의 백성의 마음 속에서 그 참된 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주제를 각주에서 더 이상 추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독자들에게 그것을 감히 제안했고, 독자가 스스로 그 내용을 따르도록 이끌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그가 이것이 가장 유익하고 암시적인 연구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유월절 다음으로 이어지는 오순절 절기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너희는 일곱 주를 계수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때부터 그 일곱 주를 계수하고 자원하여 예물을 드리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 칠칠절을 지킬지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손을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고 너와 네 아들과 딸과 남종과 여종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그리고 네 성읍 안에 있는 레위인과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너는 너였음을 기억하라 너는 애굽에서 종이 되었으니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9-12절)
여기에 오순절 날의 잘 알려져 있고 아름다운 예표가 있습니다.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선포합니다. 첫 열매의 단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상징입니다. 그리고 칠칠절에 우리는 부활 후 50일 만에 성령이 강림하실 것을 우리 앞에 예표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스라엘이 그 의미를 이해하는지 여부와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의 마음에 따라 이 절기들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내용을 말합니다. 신약성경에 비추어 이 모든 전형적인 제도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그렇게 볼 때 우리는 그 모든 놀라운 유형의 신성한 완전성과 아름다움과 질서에 경이로움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은 신약성경이 구약성경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성한 볼륨의 사랑스러운 통일성을 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통해 숨쉬는 것이 얼마나 명백하게 한 성령인지 봅니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는 거룩한 성경의 신적인 영감에 대한 소중한 진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내적으로 강화되고, 불신자 작가들의 모든 모독적인 공격에 맞서 우리의 마음이 강화됩니다. 우리의 영혼은 산 꼭대기로 인도되어 그곳에서 성경의 도덕적 영광이 하늘의 광채로 우리에게 빛나고, 그곳에서 우리는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고 우리 아래에 굴러다니는 불신앙적인 생각의 차가운 안개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구름과 안개는 우리가 무한한 은혜로 서 있는 수준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불신자 작가들은 성경의 도덕적 영광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매우 확실합니다. 즉 영원의 한 순간이 성경과 그 저자에 대해 격노하고 글을 쓴 모든 이교도와 무신론자의 생각에 완전히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매우 흥미로운 칠칠절, 즉 오순절을 보면서 우리는 즉시 그것과 무교절 사이의 차이를 깨닫게 됩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낙헌 제물”에 대해 읽었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성령에 의해 형성되고 “피조물 중 일종의 첫 열매”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교회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레위기 주석" 23장에서 이 예표의 특징을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그것에 대해 다루지 않고 순전히 신명기적인 내용에만 국한할 것입니다. 백성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신 대로 그들의 손으로 자원하여 예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유월절에는 이와 같은 일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유월절은 우리가 아무것도 바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 제물로 자신을 바치셨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와 사탄으로부터의 구원과 그 구원의 대가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구운 양으로 예표된 우리의 귀중한 구주의 깊고 다양한 고난을 묵상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그분에게 지워진 것이 우리의 죄였음을 기억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상함을 받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심판을 받으셨으며, 이는 깊고 진심 어린 통회, 즉 진정한 기독교인의 회개로 이어집니다. 회개는 죄인이 처음 눈을 떴을 때 느끼는 단순한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수난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지속적인 도덕적 조건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충분히 받아들인다면, 우리 대다수가 안타깝게도 결여되어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품성에 깊이와 견고함을 더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오순절에는 성령의 능력과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분의 복된 임재의 다양한 효과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신 대로 우리 몸과 모든 소유를 자원하여 하나님께 드리게 하십니다. 이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놀라운 예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하는 유월절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회개와 자기 판단과 실제적인 거룩함 속에서 그 죽음이 우리에게 미치는 도덕적 영향을 제시하는 무교절에는 아닙니다. 그러나 오순절은 성령의 귀한 은사의 모형으로 인정됩니다.
이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즉 오직 신성한 축복의 정도에 의해서만 측정될 수 있는 요구에 들어갈 수 있게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보고 이해하도록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자신, 즉 영과 혼과 몸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것은 참으로 “즐거운 제사”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주의 영이 계시는 곳에는 자유가 있”기 때문에 속박의 원자는 없습니다.
요컨대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봉사 전체에 담긴 사랑스러운 정신과 도덕적 성격을 보게 됩니다. 법 아래 있는 영혼은 이것의 힘과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영혼은 결코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두 가지는 완전히 호환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잘못 인도된 불쌍한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능력을 행하시는 이가니라 너희 가운데서 그것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성령의 귀중한 은사는 우리의 사랑스러운 주이자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영광의 결과이며, 결과적으로 어떤 형태나 형태의 "율법 행위"와도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이 땅에 성신이 임재하고 그분이 모든 참된 신자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기독교의 웅장한 특징적인 진리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알 수도 없었고 알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생애 동안에는 제자들조차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떠나시기 전날에 친히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오시지 아니 하리라 그러나 내가 떠나면 그를 당신에게 보내겠습니다.” ( 요한복음 16:7 .)
이것은 주님과 개인적으로 교제하는 높고 귀중한 특권을 누렸던 바로 그 사람들조차도 주님이 떠나고 보혜사가 오심으로 인해 높은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가장 결정적으로 입증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느니라” ,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함이라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시고 너희 안에 계시겠음이니라.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이 거대한 주제를 자세히 다루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공간은 우리가 그것을 기뻐해야 하는 만큼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장에서 제시된 대로 칠칠절이 제안하는 한두 가지 요점으로만 제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자원하여 드리는 헌금”으로 아름답게 예표된 개인의 헌신과 봉헌 생활의 살아있는 샘이요 능력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근거이며, 성령의 임재이며, 그리스도인이 자신과 영과 혼과 몸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 12:1 ).
그러나 우리 장 11절에는 가장 깊은 관심을 끄는 또 다른 요점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리라.” 유월절이나 무교절에는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엄숙함 중 어느 것과도 도덕적으로 부합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유월절은 우리가 현세와 내세에서 실현할 수 있거나 실현하게 될 모든 기쁨의 바로 그 기초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 그분의 고난, 그분의 슬픔, 즉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의 파도와 물결이 그분의 영혼을 휩쓸었을 때 그분이 겪으신 모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식탁을 둘러싸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그분의 죽으심을 전하는 잔치를 지킬 때, 우리의 마음은 주로 이 심오한 신비 위에 고정되어야 하며, 또 고정되어야 합니다.
이제, 영적이고 사려 깊은 독자에게는 그러한 거룩하고 엄숙한 제도에 고유한 감정이 기뻐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우리는 복되신 주님의 슬픔과 고난이 영원히 끝났음을 확실히 기뻐할 수 있고 기뻐합니다. 그 끔찍한 시간은 지나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잔치에서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존재가 끝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겪은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너희는 주님의 죽으심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귀한 죽음으로 인해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묵상하도록 부름을 받을 때 성령께서 만들어 내시는 영혼의 심오한 훈련을 통해 우리의 기쁨이 징계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복되신 구세주의 슬픔과 고통, 십자가와 수난을 보여 주십시오. 우리 주님의 말씀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입니다. 그러나 성만찬에서 우리가 특별히 기억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여주는 것은 그분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 앞에 이러한 엄숙한 현실이 있을 때, 성신의 능력으로 거기에는 거룩한 굴복과 진지함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만찬을 거행하는 즉각적인 기회, 즉 그러한 순간에 적합한 감정과 애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성령의 강력한 사역에 의해 산출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경건한 노력으로 적절한 정신 상태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전혀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은 제단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일로서 하나님께 가장 불쾌한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성만찬을 합당하게 거행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뿐입니다. 그분만이 우리가 모든 경솔함, 모든 형식, 모든 일상적인 생각, 모든 방황하는 생각을 버릴 수 있게 하시고, 그분께서 지정하신 대로 그분의 상에 차려진 기념식에서 주님의 몸과 피를 분별할 수 있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절기에는 기뻐하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었습니다. 이 경우에 우리는 "쓴 나물"이나 "고난의 떡"에 대해 아무 것도 듣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보혜사, 즉 성신의 강림이 아버지에게서 나와 부활하신 분에 의해 내려오시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 승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머리가 하늘에 계시고, 그분의 백성의 마음을 찬양과 감사와 승리의 기쁨으로 가득 채우시고, 죄와 사망, 지옥, 사탄과 사탄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영광스러운 머리와 완전하고 복된 교제 안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모든 어둠의 세력. 성령의 임재는 자유, 빛, 능력, 기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고 읽습니다. 의심, 두려움, 법적 속박은 성령의 귀한 사역 앞에서 도망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사역과 내주하심, 즉 그분의 살리심과 인치심을 구별해야 합니다. 영혼에 대한 확신의 첫 번째 새벽은 성령의 활동의 열매입니다. 모든 참된 회개로 이끄는 것은 그분의 복된 사역이며, 이것은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우 좋고, 매우 필요하며,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쁨이 아니라 깊은 슬픔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통해 우리가 부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구주를 믿을 수 있게 되면,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가 받아들인다는 인침과 우리 기업의 보증으로서 그분의 거처를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이제 이것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우리를 가득 채웁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이 채워지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는 통로가 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라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령이 아직 계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이는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신자의 마음에 있는 능력과 기쁨의 샘입니다. 그분은 우리 주변의 가련하고 목마르고 궁핍한 영혼들을 섬기는 일에 우리를 그분의 그릇으로 적합하게 채우시고 사용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영광 가운데 계신 인간과 연결시키시고, 그분과의 살아있는 교통 안에서 우리를 유지하시며, 우리의 미약한 분량으로도 그분의 어떠하심을 표현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동은 그리스도의 향기로 가득 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이 거룩하지 않은 성품, 이기적인 길, 탐욕, 탐욕, 세속적인 영, 시기와 질투, 교만과 야망을 나타내는 사람은 자신의 신앙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하며 그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가 고백하는 영광스러운 기독교, 그리고 우리는 칠칠절의 사랑스러운 모형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절기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그 근원을 두고 널리 흘러 퍼져서 하나님의 선하심에 포용되는 기쁨으로 가장 두드러지게 특징지어지는 절기입니다. “너와 네 아들과 딸과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 과 객 과 타국인과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희 중에 고아 와 과부도 있느니라'
정말 사랑스러워요! 얼마나 완벽하게 아름다운가! 오! 그 원형이 우리 가운데 더욱 충실하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흘러나와야 할 상쾌한 물줄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흠집 없는 그리스도의 서한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 읽혀지는 곳은 어디입니까?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백성의 길에서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어디에서 볼 수 있습니까? “참된 기독교가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감동시켜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고자 하는 더욱 강렬한 열망을 가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 우리 손과 우리 가정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분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입히시기를 바랍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과 양심에 말씀하시고, 하늘의 빛으로 우리 자신과 우리의 길과 우리의 교제를 판단하게 하시고, 온전히 헌신된 증인들의 무리를 그 이름을 위하여 모아 그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려 하심이라 ! 독자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이것을 요청하시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이 장에 제시된 진리의 범위에 놀라운 완전성을 부여하는 아름다운 초막절 제정에 대해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네가 곡식과 포도주를 모은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키라 너와 네 아들과 네 딸과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이여,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절기를 지키라. 네 모든 소산과 네 손으로 한 모든 일을 인하여 네가 반드시 즐거워할 것이라. 네 모든 남자는 일년에 세 번씩 무교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 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 앞에 보이되 칠칠절과 초막절에 빈손으로 여호와 앞에 나오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13-17절)
여기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놀랍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초막절은 아직 그 실체가 없습니다. 유월절과 오순절은 그리스도의 귀중한 죽음과 성령의 강림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셋째 대축일은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로 그의 모든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모든 것이 회복될 때를 가리킨다.
그리고 독자들은 특히 이 축일을 거행하는 시간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은 “네가 곡식과 포도주를 거둔 후”가 되어야 했습니다. 즉, 수확과 포도 수확 이후였습니다. 이제 이 두 가지 사이에는 매우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은혜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심판을 말합니다. 세상 끝에 하나님은 밀을 창고에 모아두시고 무서운 심판으로 포도주틀을 밟으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에는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주제에 관한 매우 엄숙한 구절이 있습니다 .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가졌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외쳐 구름 위에 앉으신 이에게 큰 음성으로 이르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땅의 곡식이 익었느니라 하시니라 땅에 거두어들였느니라."
여기에 수확이 있습니다.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예리한 낫을 가졌고 또 다른 천사가 제단에서 나오는데 이는 심판의 상징이라 불을 다스리는 자라 큰 소리로 외쳐 이한 낫 가진 이가 이르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나무를 거두니라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그 틀이 성 밖에서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디디미터에 이르렀느니라." 팔레스타인 땅의 전체 길이와 같습니다!
이제 이 묵시적인 인물들은 초막절을 거행하기 전에 반드시 연출되어야 할 장면들을 특징적인 방식으로 우리 앞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밀을 하늘 창고에 모아들이실 것이며, 그 후에 그리스도교국을 진멸하는 심판으로 오실 것입니다. 따라서 영감의 책의 모든 부분, 모세서, 시편, 선지자서, 복음서 또는 그리스도의 행적, 성령의 행적, 서신서, 묵시록 등은 모두 세상이 복음으로 개종하지 않을 것이며 상황이 개선되지도 않고 개선되지도 않고 점점 더 악화될 것입니다. 초막절로 예표된 그 영광스러운 때는 포도 수확, 곧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영감받은 정경의 모든 부분에서 제공되는 그토록 압도적인 신적 증거 앞에서도 사람들이 복음으로 개종한 세상의 기만적인 희망을 계속 간직할 것인가? "모은 밀과 밟힌 포도주 틀"이란 무슨 뜻입니까? 확실히, 그것은 개종된 세상을 의미하지 않으며 의미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아마도 모세의 모형이나 묵시적인 상징 위에는 어떤 것도 세울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유형과 기호만 있다면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축적된 영감의 광선이 이러한 유형과 상징에 모여서 그 깊은 의미가 우리 영혼에 드러날 때, 그것이 선지자와 사도들의 음성, 그리고 우리 주님의 살아있는 가르침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을 발견하십시오. 한마디로, 모두가 같은 언어를 말하고, 모두 같은 교훈을 가르치며, 이 시대의 마지막에는 영적 천년왕국을 위해 준비된 개종한 세상 대신에 포도나무가 있을 것이라는 엄숙한 진리에 대한 분명한 간증을 갖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을 위하여 완전히 익은 무서운 송이로 덮이고 지져졌느니라.
오! 그리스도교국의 남성과 여성, 그리고 그 교사들이 이 엄숙한 현실에 마음을 쏟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것들이 그들의 귀에, 그리고 그들의 영혼 깊은 곳에 흘러들어 그들이 소중히 간직한 망상을 바람에 날려버리고, 그 대신에 명백히 계시되고 명확하게 확립된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가 묵상해 온 세 가지 흥미로운 유형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된 모든 위대한 진리의 복된 영향력을 일상 생활에서 나타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상기시켜 주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특징은 세 가지 큰 형성 사실, 즉 구속, 성령의 임재, 영광의 소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고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며 구주를 찾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이것은 확고한 사실, 신성한 현실, 위대한 형성적 진리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원리나 의견이 아니라 우리 영혼에 힘이 되고 우리 삶에서 빛을 발하도록 고안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이 엄숙한 행사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실제적인지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택하신 장소에서 여호와 주위에 모였을 때 이스라엘 회중이 얼마나 많은 찬양과 감사와 기쁨과 축복과 적극적인 자비의 물결을 흘렀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찬양과 감사가 하나님께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관대한 자비의 축복된 흐름이 필요한 모든 대상에게 흘러나왔습니다.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네 하나님 여호와께 보이되 빈손으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너를."
사랑스러운 단어! 그들은 주님 앞에 빈손으로 나와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일꾼들과 주님의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찬양이 가득한 마음과 신성한 선하심의 열매가 가득한 손으로 와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아름다웠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그분 주위에 모아서 기쁨과 찬양이 넘치도록 채우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분의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머물러서는 안 되었으며, 거기에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풍성하고 다양한 자비를 기뻐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그 자리에서는 괜찮고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요; 일년에 세 번씩 그들은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만남의 장소로 가서 거기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할렐루야를 높여야 했으며,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 모든 형태의 인간에게 그들에게 부여하신 것을 넉넉히 섬겨야 했습니다. 필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레위인, 나그네, 과부, 고아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풍성한 특권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 자신이 기뻐하시는 사업입니다. 그분의 이름이 영원히 찬송받으실 것이며, 그분은 그분의 기쁨을 그분의 백성과 나누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분이 그분의 백성을 만나는 장소가 기쁨과 찬양의 영역이요, 축복의 강물이 사방으로 흘러나오는 중심지라는 것을 알고 보고 느끼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음성이요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이 대사는 작가와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들어보자! 그것이 우리 마음에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가득 차고 우리 손이 선한 일로 가득 차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의 단순한 모형과 그림자가 그토록 많은 감사와 적극적인 자선과 연결되어 있다면, 축복 자체의 효과는 얼마나 더 강력해야 하겠습니까!
하지만 아! 문제는 우리가 그 축복을 깨닫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까? 우리는 교묘하지 못한 믿음의 힘으로 그것들을 붙잡고 있습니까? 여기에 모든 문제의 비밀이 있습니다. 유월절이 예표한 것, 즉 심판과 현 악한 세상으로부터의 완전한 구원을 완전하고 확고하게 누리는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오순절의 충만하고 안정된 누림, 곧 성령의 내주하심과 인과 보증과 기름부음과 증거를 우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대다수의 교수들에게 “당신은 성령을 받았습니까?”라는 단순한 질문을 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어떤 대답을 얻을지 확인하십시오. 독자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습니까? 그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았고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 주변의 수많은 교수들 중 상대적으로 소수만이 그리스도의 몸의 가장 단순한 지체에게 부여된 특권인 귀중한 것들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은 크게 두려운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초막절에 관해서도 그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적습니까! 사실, 그것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것이 제시하는 현재의 능력 안에서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우리의 삶은 우리가 서 있는 “은혜”와 우리가 기다리는 “영광”의 결합된 영향력에 의해 지배되고 우리의 성품이 형성됩니다.
그러나 만일 영혼들이 은혜 안에 굳게 서지 아니하고 자기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면, 구원을 확신하는 것이 주제넘은 일이며, 끊임없는 의심과 두려움 속에서 사는 것이 겸손과 경건이라는 것을 그들이 배운다면;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없는데, 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입장을 취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열매를 나타내며,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희망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옛 이스라엘 사람이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인지, 여호와의 회중의 일원인지, 그 땅에 있는지 의심한다면, 그가 어떻게 무교절인 오순절이나 초막절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것에는 아무런 의미도, 의미도, 가치도 없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 어떤 이스라엘인도 그토록 완전히 터무니없는 일을 한 순간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전하게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인데 결코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터전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그들은 의심과 두려움, 어둠과 불확실성 속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그들의 종교적인 활동과 예배는 소유하고 즐기는 삶의 결과가 아니라 법적 의무와 내세를 위한 도덕적 준비로서 시작되고 진행됩니다. 참으로 경건한 많은 영혼들이 평생 동안 이런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가 우리 앞에 놓아서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하고 현세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하려고 제시한 “복스러운 소망”에 대하여는 그들은 그 소망에 들어가지도 깨닫지도 못하느니라. 여기저기서 몇몇 비전 열광자들의 단순한 추측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밝은 새벽별'을 바라보는 대신 심판의 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생과 하나님의 의와 양자의 영의 확실한 소유를 기뻐해야 할 때, 자신들의 죄 용서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께 그분의 성령을 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신약성경의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대됩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천재성에 완전히 이질적이며, 기독교인의 평화와 자유를 파괴하고, 모든 참되고 지성적인 기독교 예배와 봉사와 간증을 파괴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누리지 못하는 특권에 대해 마음이 가득 찬 찬양으로, 자신이 깨닫지 못한 축복을 손에 가득 담아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공언하는 교회의 범위와 범위를 막론하고 모든 주님의 백성의 진지한 관심을 이 중요한 주제에 촉구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경전을 연구하여 영혼을 평생 동안 어둠과 의심과 속박 속에 가두어 둘 만한 근거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간청합니다. 엄숙한 경고, 예리한 호소, 중대한 훈계가 있다는 것은 가장 사실이며, 우리는 그것을 인하여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필요하며 우리의 마음을 부지런히 거기에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가 모두 용서되었고,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고 영원한 영광의 상속자가 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아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로 그 어린아이들의 감미로운 특권이라는 것을 독자들이 분명히 이해하도록 하십시오. 이러한 것은 무한하고 주권적인 은혜를 통해 명백히 확립되고 보증된 축복입니다. 이 축복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을 환영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피가 그들을 합당하게 하며, 성령의 증거로 그들을 확신하게 합니다. .
영혼의 위대한 목자요 감독이신 그분께서 그분의 사랑하는 모든 백성, 곧 그분의 피로 사신 양떼의 어린양과 양들이 그분의 성령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거저 주시는 것들을 알도록 인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아는 사람들이 그것들을 더 완전하게 알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봉사에 대한 진정한 헌신의 삶에서 그것들의 귀중한 열매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높은 진리를 안다고 공언하는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고백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은 크게 두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운 장 17절에 제시된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있지 않습니다. “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 우리는 구원을 위해 할 일도 없고 줄 것도 없지만 구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그분의 일꾼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은 매우 큰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지하고 율법에 속박되어 있던 시대에 거짓된 원리와 거짓된 목적을 가지고 일하고 드렸다면, 우리는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부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영적인 축복을 누리십시오. 우리는 이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진리를 단순히 지적으로 인식하고 말로만 고백하는 일에 안주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반면에 마음과 양심은 결코 그 신성한 활동을 느끼지 못하며, 행위와 성품은 그 강력하고 거룩한 진리 아래 놓이게 됩니다. 영향.
우리는 모든 부드러움과 사랑으로 독자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려할 수 있도록 이러한 실용적인 제안을 감히 제공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양 떼 중 가장 연약한 어린 양에게 상처를 주거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낙담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이 우리는 독자들에게 우리가 어느 누구에게도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이 직접 임재하시는 것처럼 기록하고 교회의 귀에 우리가 경고하는 말을 전하고 있음을 확신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공동 위험이라고 깊이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생각하고, 우리의 수많은 실패와 결점과 불일치로 인해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더욱 진실하고 더욱 철저하게 헌신할 수 있도록 그분께 은혜를 구하라는 긴급한 부르심이 모든 면에서 있음을 믿습니다. 이 어둡고 악한 시대에 그분에 대한 우리의 간증은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신명기 17
우리는 성경을 장과 절로 나누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이 정한 것이며 종종 참조하기 매우 편리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종종 그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연결을 방해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16장의 마지막 구절이 앞의 내용보다 뒤의 내용과 훨씬 더 관련되어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관과 지도자를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요 너는 재판을 굽히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재판을 받지 말며 선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너는 공의를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리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이 말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줍니다. 우선 그들은 하나님의 정부를 특징짓는 공평한 정의와 완전한 진리를 제시합니다. 모든 사건은 그 자체의 장점과 사실에 근거하여 처리됩니다. 판결은 너무도 단순해서 문제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모든 불화는 완전히 종결되고, 어떤 불평이라도 일어나면 “친구여, 나는 네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아니하노라”고 말함으로써 그 불평자는 즉시 잠잠해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정부 안에서 언제 어디서나 유효하며, 그 정부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 끝까지 세워질 때를 우리로 사모하게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방금 인용한 구절에서 인간의 판단이 자신에게 맡겨진다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배웁니다. 잠시도 믿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지위와 부 때문에 사람을 “판단 할 수 있고”, “사람을 존경할” 수 있고, “선물을 받을 수” 있고, 그 사람을 중요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그것을 하지 말라고 했다는 사실에서 분명해진다. 우리는 이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도둑질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면, 사람의 본성이 도둑질을 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판단과 인간 정부는 가장 심하게 부패하기 쉽습니다. 재판관들과 총독들을 그대로 놔두고 하나님의 원칙에 직접 지배를 받지 않으면 더러운 이익을 위해 공의를 굽힐 수 있고, 악인이 부자이기 때문에 그에게 은혜를 베풀고, 의인이 가난하기 때문에 정죄할 수 있습니다. 돈, 영향력, 인기, 권력 등의 형태로 얻을 수 있는 이점 때문에 가장 명백한 사실에 노골적으로 반대되는 판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빌라도와 헤롯, 벨릭스와 베스도와 같은 사람들을 지적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방금 인용한 구절을 넘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 공직의 옷을 입고 정부의 왕좌에 앉거나 재판석에 앉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읽으면서 하사엘의 언어로 "당신의 종이 개이더냐 이 일을 하겠나이까"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이 이 세상에서 범해진 모든 죄와 모든 사악하고 가증스럽고 경멸할 만한 악의 씨앗이라는 사실을 잠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한 답할 수 없는 증거는 영감의 신성한 페이지에 나오는 법령과 계명, 금지 사항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자주 반복되는 질문에 대한 흔치 않은 훌륭한 답변을 얻습니다. "모세의 경제 체제에 규정된 많은 법률과 제도가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러한 것들이 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것들은 영감을 받을 수 있습니까?" ?" 예; 그것들은 영감을 받아 영감의 페이지에 나타나는데, 이는 우리가 신성한 완전한 거울에 반사되어 우리 자신을 구성하는 도덕적 자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생각,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말하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
이거 뭔가 아닌가? 예를 들어, 이 가장 심오하고 아름다운 신명기의 일부 구절에서 인간 본성은 능력이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인간의 수준 이하로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선하고 건전하지 않습니까? 짐승? 확실히 그렇습니다. 자신의 존엄성과 고상한 도덕성에 대한 잘못된 생각으로 우쭐대며 바리새인 같은 교만과 자기 만족에 빠져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 깊은 겸허함을 배우는 교훈을 배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제정은 얼마나 도덕적으로 사랑스럽고, 얼마나 순수하고, 얼마나 세련되고 고상한가! 그들은 판단을 왜곡해서는 안 되며, 사람에 상관없이 판단이 직선적이고 고른 경로로 흘러가도록 허용해야 했습니다.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은 금반지를 차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공정한 정의를 받아야 했습니다. 재판장의 판결은 편파나 편견으로 인해 왜곡되어서는 안 되며, 재판의 예복이 뇌물 수수로 더럽혀져서는 안 됩니다.
오! 왕이 의로 통치하고 방백들이 공의를 선포할 때, 이 억압받고 신음하는 땅이 영감받은 오경에 기록된 놀라운 율법에 의해 다스려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여 왕에게 주의 판단력을 주시고 왕의 아들에게 주의 의를 주소서.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주의 가난한 자를 공의로 판단하리로다." - 그때에는 다툼도 없고 뇌물도 없고 편파적인 재판도 하지 아니하리니 - "산[또는 그보다 높은 곳] 그는 공의로 백성과 작은 산들에게 평화를 베풀 것이며 백성 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 하며 멸할 것이라 그들은 해와 달이 지속될 동안에 대대로 당신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는 벤 풀 위에 내리는 비처럼 땅을 적시리라. 달이 있을 동안에는 그가 바다에서 바다 까지 , 강 에서 땅 끝까지 다스리리라 … 가난한 자와 궁핍 한 자의 영혼을 구원하며 … 그들의 피는 그의 목전에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시편 72편 )
마음은 이 모든 것이 잘 되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가득할 그 때를 고대하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께서 그의 큰 권세와 통치를 취하실 때; 하늘에 있는 교회가 그분의 영광의 광선을 땅에 반사할 때;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약속의 땅에 있는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쉴 것이며, 땅의 모든 나라는 다윗의 자손의 평화롭고 자비로운 통치 아래서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릴지니 머지않아 그의 보좌가 하늘에 있음 같이 견고하리라. 조금 있으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불변의 약속에 따라 모든 것이 좋아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독자들이여, 그때까지 우리는 이 밝고 복된 시대에 대한 끊임없는 진지함과 믿음의 기대 속에 살고, 이 불경건한 장면을 철저하게 나그네와 나그네로서 통과해야 하며, 이 땅에는 아무 자리도 없고 분깃도 없습니다. "오소서, 주 예수여!"
16장의 마지막 줄에서 이스라엘은 주변 국가들의 종교 관습에 가장 먼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에 대해 경고를 받습니다. “네가 만들고 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곁에는 어떤 나무로든지 아세라 목상을 심지 말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어떤 형상도 세우지 말지니라.” 그들은 주변 이방 나라들의 어둡고 가증한 우상 숭배의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피했습니다. 하나님의 제단은 거짓 신들을 숭배하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일들이 행해지는 숲과 그늘진 곳으로부터 뚜렷하고 틀림없이 분리되어야 했습니다.* , 어떤 식으로든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에게서 마음을 멀어지게 하십시오.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제단에 관해 말씀하실 때 성령께서 이방인의 제단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 단어를 제단에 적용하지 않으시고 비교적 새로운 단어, 즉 세계 고전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교 제단은 보몬(bomon) 이다 . ( 사도행전 17:23 .) 하나님의 제단은 이와 같이 이아스테리온 입니다 . 전자는 단 한 번만 발생합니다. 후자는 23번이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이교의 우상숭배의 더러운 손길로부터 보호되고 보존됩니다. 남자들은 이것이 왜 그래야 하는지 묻고 싶어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어떻게 하나님의 제단이 이름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보다 더 지혜로우시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비록 짧고 편리한 이방인의 말이 그분 앞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그것을 유일하시고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제단에 적용하기를 거부하셨습니다. Trench의 "신약의 동의어"를 참조하십시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올바른 외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형상과 숲이 폐지될 수도 있고, 민족이 신격의 단일성에 대한 교리를 공언할 수도 있지만, 그 동안 드려지는 예배에는 마음이 전혀 없고 진정한 헌신이 없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흠이 있거나 악한 것이 있는 소나 양을 네 하나님 여호와께 제물로 드리지 말라 이는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 됨이니라”고 읽습니다.
절대적으로 완전한 것만이 제단에 합당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 흠 있는 것을 바치는 것은 그분이 된 것에 대한 참된 감각이 전혀 없고 그분을 향한 진정한 마음이 전혀 없음을 증명하는 것일 뿐입니다. 불완전한 희생을 바치려는 것은 그분께는 무엇이든지 다 좋다고 말하는 끔찍한 신성모독과 다름없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영이 분개하여 호소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합시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내 제단에 드리며 이르기를 우리가 무엇으로 당신을 더럽혔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이르기를 주의 상은 멸시할 만한 것이니라 너희가 맹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 절름발이와 병자들아, 지금 그것을 네 총독에게 드려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너희로 말미암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중에 함부로 내 제단에 불을 붙이지 아니하는 자가 누구뇨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네 손에서 제사를 받지 아니하리라 해 돋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내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내 이름을 위하여 드리는 제물이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여호와의 상을 더럽혔다 하여 그것을 더럽혔느니라 그리고 그 열매, 곧 그의 음식까지도 하찮게 여길 것입니다. 너희도 말했다. 보라, 그것이 얼마나 피곤한가!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냄새를 맡고 찢긴 것과 저는 것과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이렇게 너희가 제물을 가져왔느니라. 이걸 네 손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자기 양떼 가운데 수컷이 있는데도 부정한 일로 여호와께 서원하고 희생을 드리는 사람을 속이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큰 왕이라 내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무서운 것이니라.”( 말 1:7-14 )
이 모든 것이 공언하는 교회를 위한 목소리가 아닌가? 이 대사의 작가와 독자에게는 목소리가 없습니까? 확실히 그렇습니다. 우리의 사적인 예배와 공적인 예배에는 마음, 진정한 헌신, 깊은 진지함, 거룩한 에너지, 목적의 진실성이 한심할 정도로 부족하지 않습니까? 저는 자와 병든 자와 흠이 있는 자와 흉악한 자를 드리는 제사에 응답할 것이 많지 아니하냐? 골방에서든 집회에서든 우리의 예배 시간에는 개탄할 만큼 냉정한 형식과 죽은 일상이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우리 주님의 식탁에서도 우리는 불임과 산만함과 방황에 대해 우리 자신을 판단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방황하는 마음과 변덕스러운 정신이 땅 끝에 있는 동안 우리 몸은 얼마나 자주 식탁에 앉아 있습니까! 우리의 입술은 우리의 전체 도덕적 존재의 진정한 표현이 아닌 말을 얼마나 자주 하는가! 우리는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뛰어넘어 노래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헌금을 주님의 창고에 넣을 수 있는 복된 기회를 얻게 되었을 때, 얼마나 무자비한 형식이겠습니까! 사랑과 열심, 마음을 다해 헌신하는 마음이 참으로 부족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신 것 같이”라는 사도적 규칙에 대한 언급이 얼마나 적습니까! 얼마나 가증스러운 인색함인가! 세상에 단 두 닢밖에 없는 가난한 과부의 온 마음은 얼마나 적은가! 적어도 자기 생활을 위해 적어도 한 닢은 간직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으면서도 기꺼이 두 닢을 모두 던지는, 즉 자기 전부를 던지는 그 가난한 과부의 온 마음은 얼마나 작은가! 우리 자신을 위해, 어쩌면 주중에 여분의 생활비를 지출할 수도 있지만, 주님의 사업, 그분의 가난한 자, 그분의 일반적인 사업에 대한 요구가 우리 앞에 제시될 때, 그 반응은 얼마나 빈약한가!
기독교 독자 여러분,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임재와 우리를 영원한 불에서 구원하신 은혜의 임재 안에서 예배와 헌신의 전체 주제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중하고 강력한 요구를 조용히 묵상해 봅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값으로 산 바 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최고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자신을 바치신 복되신 분에게 우리가 빚진 모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 그것을 표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누구이며 누구를 섬기고 있는지 더욱 분명하게 선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과 머리와 손과 발과 인간 전체가 성신의 능력과 성경의 직접적인 가르침에 따라 아낌없는 헌신으로 그분께 봉헌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그분이 사랑하는 모든 백성에게 그렇게 되기를 허락하십니다!
이제 매우 무겁고 실용적인 주제가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우리는 독자를 위해 구절 전체를 인용하는 관습을 가능한 한 고수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전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믿습니다. 게다가, 대다수의 독자들에게는 그 책을 제쳐두고 스스로 구절을 찾기 위해 성경을 펴는 수고를 덜는 것이 편리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어느 성읍에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의 언약을 어기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긴 남자나 여자가 너희 중에 발견되거든 그리고 내가 명령하지 아니한 해나 달이나 하늘의 별에게 절하고, 네게 알려지매 네가 그것을 듣고 부지런히 구하였 느니라 . 이스라엘에서 이런 가증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확실하다 . " — 온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일 — "그런 다음 너는 그 악한 일을 행한 남자나 여자, 곧 그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죽기까지 돌로 쳐죽여야 한다. 죽일 사람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있으면 죽일 것이요, 한 증인의 입으로 그를 죽이려면 증인이 먼저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 후에는 온 백성의 손에서 악을 제할지니라”(2-7절)
우리는 앞의 구절에 제시된 위대한 원칙을 이미 언급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즉, 어떤 경우에도 판결을 내리기 전에 유능한 증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나타나며, 실제로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있어서 불변의 법칙이므로 우리의 주의를 끌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이 안전하고 건전한 규칙이라고 확신할 수 있지만, 이를 무시하면 항상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우리는 두세 증인의 증언 없이 판단을 내리거나 행동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신뢰할 만하고 도덕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증인이라도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한 근거는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신뢰하는 분에 의해 확증되었기 때문에 그 일이 참되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지혜로우십니다. 한 증인은 철저하게 올바르고 진실하므로, 그는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거짓을 말하거나 거짓 증언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일 수 있지만 우리는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는 하나님의 법칙을 고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이 일이 더욱 부지런히 이루어졌더라면 좋았을 것을! 모든 규율의 경우, 그리고 개인의 성격이나 평판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총회가 결론에 도달하거나 판결에 따라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어떤 경우에도 적절한 증거를 주장해야 합니다. 이것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모두가 하나님을 기다리며 인내하고 확신을 갖고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그분은 필요한 것을 반드시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 모임에 도덕적 악이나 교리적 오류가 있지만 그 사실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알려진 경우입니다. 그 사람은 완벽하게 확신하고 그 사실을 철저히 확신합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더 많은 증거를 위해 하나님을 기다리십시오. 이것이 없이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거듭거듭 명확하게 제시된 신성한 원칙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한 증인이 자신의 증언이 실행되지 않기 때문에 분노하거나 모욕감을 느끼는가? 확실히 그렇지 않습니다. 참으로 그는 그런 일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한두 사람의 증거로 자신의 간증을 확증할 수 있을 때까지 증인으로 나서서는 안 됩니다. 회중이 단독 증인의 증언에 따라 행동하기를 거부한다고 해서 무관심하거나 안일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합니까? 아니,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신의 명령을 무시하고 날아가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위대한 실천적 원리는 징계의 경우나 주님의 백성의 모임과 관련된 문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보편적으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증거의 척도 없이 판단을 내리거나 결론을 내리도록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나오지 않으면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며, 사건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때에 필요한 증거를 제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고발자가 자신의 감각 중 하나의 증거에 근거하여 고발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거짓 고발을 당했던 경우를 알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자신의 감각 중 한두 가지에 대한 증거를 더 확보하는 데 애썼다면, 그는 비난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증거의 전체 주제는 독자의 관심을 끌고, 그의 입장이 어떠하든지 놔두십시오. 우리 모두는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인상을 받아들이고, 근거 없는 추측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마음이 편견에 사로잡혀 왜곡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가장 조심스럽게 보호되어야 합니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판단을 형성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더욱 차분하고 진지하며 냉정한 숙고가 필요합니다. 특히 사람에 대하여는 우리가 거짓된 인상이나 근거 없는 비난으로 친구나 형제나 이웃에게 심각한 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혀 근거 없는 비난의 수단이 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다른 사람의 성품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죄가 되는 일이므로, 그러한 일이 우리 앞에 올 때마다 우리는 가장 질투심을 갖고 경계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은 엄중히 책망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뒤에서 다른 사람을 비난할 때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자신의 진술을 증명하거나 철회하도록 주장해야 합니다. 이 계획이 채택된다면, 우리는 가장 무익할 뿐만 아니라 명백히 사악하고 용납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악한 말에서 구출될 것입니다.
증거라는 주제에서 벗어나기 전에, 영감받은 역사에는 신명기 17:6-7 에 주의를 기울인 것처럼 한 사람이 정죄받은 사례가 한 번 이상 있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 열왕기상 21장 에 나오는 나봇의 경우를 보십시오 . 그리고 사도행전 6장 과 7장 에 나오는 스데반의 경우 ;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땅을 밟았던 유일한 완전한 인간의 경우입니다. 아아!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불경건한 목적에 부합할 때 성경의 문자에 놀라울 정도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가장 극악무도한 불의와 충격적인 부도덕을 옹호하기 위해 성경의 신성한 말씀을 인용할 수 있습니다. 두 증인은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모독했다고 비난했으며, 그 신실한 이스라엘 사람은 불경건하고 잔인한 여인의 지시에 따라 고용된 두 거짓말쟁이의 증언으로 인해 그의 상속 재산과 생명을 박탈당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은 의심할 바 없이 신명기 17장을 자신들의 권위로 인용할 수 있었던 당시의 위대한 종교 지도자들이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행동한 거짓 증인들의 증언을 듣고 신성모독죄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인간이 무엇인지, 그리고 양심 없는 인간의 종교심이 무엇인지 그토록 슬프고 강력하게 예시하고 있지만, 우리 장의 서문에서 우리의 지침으로 제시된 도덕적 규칙은 전혀 손대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양심이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종교는 하늘 아래 가장 타락하고 사기를 저하시키며 완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끔찍한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이 가장 끔찍한 악을 가리는 망토로 성경의 문자를 사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자면, 그분의 말씀은 하늘의 순결함과 신성한 미덕과 거룩한 도덕성으로 우리 영혼의 시각 앞에 나타나며, 그 신성한 말씀에서 끌어내려는 원수의 모든 시도를 물리치게 됩니다. 참되지도 않고, 존경할 만하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고, 순수하지도 않고, 사랑스럽지도 않고, 평판이 좋은 것도 아닌 것을 호소합니다.
이제 독자들에게 이 장의 두 번째 문단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이 문단에서 우리는 자아 의지와 독립의 시대에 매우 필요한 도덕적 가치가 높은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만일 네 성문 안에서 재판할 일이 일어나서 피와 피, 변론과 변론, 체벌과 구질의 일이 네게 일어나거든 너는 일어나서 심판하는 곳으로 올라갈지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시리니 너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당시 재판장에게 가서 물으라 그들이 네게 판결할 것을 가르치리니 너는 그 판결대로 행할지니라 ,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 에서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바를 다 지켜 행하며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율법의 판결대로 행할 것이니라 , 너는 그들이 네게 지시하는 판결을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무시하고, 거기 서서 여호와 앞에서 섬기는 제사장의 말을 듣지 아니할 것이다. 네 하나님이나 재판관에게든지 그 사람은 죽을지니라 너는 이스라엘에게서 악을 제할지니라. 모든 백성이 듣고 두려워 하여 다시는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리라.” ( 8-13절)
여기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회중 전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신성한 마련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권위에 의해, 하나님이 정하신 중심,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정착되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의지와 주제넘음이 효과적으로 방지되었습니다. 모든 논쟁의 문제는 제사장이나 하나님께서 그 목적을 위해 임명하신 재판관이 표현하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최종적으로 해결되어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절대적으로 전적으로 신성한 권위의 문제였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자기 뜻대로 행동하거나 주제넘게 행동하는 것은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총회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각자는 자신의 주장을 신성한 법정에 제출하고 그 결정에 암묵적으로 굴복해야 했습니다. 상급 법원이 없었기 때문에 항소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제사장이나 판사는 하나님의 신탁처럼 말했고, 원고와 피고 모두 이의 없이 그 결정에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회중의 어느 성원도 자신의 사건을 이방인 법정에 가져가서 판결을 받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 독자들에게 매우 분명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모든 참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과는 전혀 낯설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에 대해 심판을 내리시기 위해 그들 가운데 계시는 여호와 자신에 대한 적극적인 모욕을 의미했을 것입니다. 확실히 그분은 충분하셨습니다. 그는 모든 논쟁의 내용, 장단점, 뿌리와 쟁점이 복잡하든 어렵든 다 알고 계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이 선택하신 곳으로 그들의 문제를 제기해야 했으며 다른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총회 성원 두 명이 재판을 받기 위해 무할례자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생각은 한 순간도 용납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회중을 위한 하느님의 마련에 결함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목소리가 우리에게 있나요? 그리스도인들은 질문과 논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그들은 심판을 받기 위해 세상에 나가야 합니까?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을 적절하게 해결하기 위한 마련이 하나님의 총회에 없습니까? 영감받은 사도가 고린도 모임과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그리고 지금 모든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감히 다른 사람과 문제로 송사하고 불의한 자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세상이 너희에게 판단을 받으면 너희는 무자하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줄을 알지 못하거든 하물며 이생의 일을 판단하는 일이 있거든 교회에서 가장 작은 자를 판단하게 하라 너희 중에 지혜 있는 자가 없느냐 형제 사이를 재판할 자가 없느냐 형제가 형제와 함께 송사하거니와 그런즉 이제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니라 너희가 서로 고소하므로 너희가 어찌하여 속임을 당하지 아니하느냐 너희가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겠느냐 속지 말라." ( 고전 6:1-9 )
그러므로 여기에는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신성한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교회의 지상 활동의 모든 단계를 위한 책 이라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사실이에요, 아아! 교회는 영감받은 사도가 위의 구절을 썼을 때와는 다릅니다. 교회의 실제적인 상황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초기에는 교회와 세상, “성도”와 “불신자”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내부"와 "외부" 사이. 그 당시에는 경계선이 넓고 뚜렷했으며 틀림이 없었습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사회의 모습을 본 사람은 누구나 이교, 유대교, 기독교, 이방인, 유대인, 하나님의 교회, 성전, 회당, 집회라는 세 가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신의. 이런 것들이 혼란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 모임은 옆에 있는 모든 모임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눈에 띄었습니다. 기독교는 그 원시 시대에 강력하고 분명하게 표명되었습니다. 그것은 국가적, 지방적, 지역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이고 실제적이며 살아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명목상, 국가적, 전문적 신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믿음, 마음속에 있는 살아 있는 능력이 삶으로 흘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교회와 세상이 너무 뒤섞여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교수들은 우리가 방금 인용한 구절의 진정한 힘과 적절한 적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성도들”이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법정에 간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마치 외국어처럼 보일 것입니다. 실제로 "성인"이라는 용어는 비웃음과 함께 사용되거나 미신적인 존경심으로 시성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언하는 교회에서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 말씀이 우리 영혼에 밝혀주는 장엄한 진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무엇인지, 세상이 무엇인지, 둘 사이의 올바른 관계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생각에 어떤 변화가 생겼습니까? 그분은 누가 "성도"이고 누가 "불신자"인지 모르십니까? "형제가 형제와 함께 송사하고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가 더 이상 "잘못"이 되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성경은 그 힘, 요점, 신성한 적용을 상실했습니까? 그것은 더 이상 우리의 안내자, 권위, 하나의 완전한 규칙, 틀림없는 표준이 아닙니까? 교회의 도덕적 상태에 나타난 현저한 변화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적용되는 모든 능력, 즉 “각처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능력이 박탈되었습니까? 우리 아버지의 가장 귀중한 계시가 어떤 특정한 면에서 죽은 편지, 쓸모없는 글, 오래 전의 시대에 관한 문서가 되었습니까? 우리의 변화된 상태가 하나님의 말씀의 도덕적 영광 중 단 하나라도 빼앗아 갔습니까?
독자 여러분, 이 질문들에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대답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주님 앞에서 정직하고 겸손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문제들을 헤아려 보시기를 진심으로 간청합시다. 우리는 귀하의 답변이 귀하의 실제 위치와 도덕적 상태에 대한 놀랍도록 정확한 지표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은 결코 그 힘을 잃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고 충분히 인정하지 않습니까? 고린도전서 의 원칙이 가능합니까 ? 6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구속력이 영원히 끊어지느니라 그것은 완전히 인정됩니다. 상황이 슬프게도 변했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 그러나 "성경은 깨질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1세기에 "잘못"이었던 것이 19세기에는 옳을 수 없습니다. 신성한 원칙을 수행하는 데 더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원칙을 포기하거나 낮은 수준에서 행동하는 데 결코 동의해서는 안 됩니다. 공언하는 교회 전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일단 인정한다면, 기독교인의 순종의 원칙 전체가 포기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형제가 형제와 함께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입니다.* 사실, 교회의 눈에 보이는 연합은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많은 재능을 잃었고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가 그 효능을 상실하거나 그분의 신권이 그 효능을 상실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도 더 이상 그 힘을 잃을 수 없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두 세 사람"이 있는 곳마다 그러한 연약함 속에서도 그들이 참으로 겸손하고 의존적이라면 영적인 능력이 발견될 것이라는 점을 우리가 명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형제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질문이나 탄원이나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지혜가 공급될 것을 기대할 수 있으므로 세상 법정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세상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면 미소를 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룩한 결단으로 성경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형제는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형제와 함께 소송을 제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뚜렷하고 강조됩니다. 가능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이시며 주님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료가 있습니다.
주님의 백성들은 이 주제를 고려하는데 그들의 마음을 진지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교회라는 참된 터 위에 모였음을 보게 하라. 그러면 교회 안의 상황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고 가장 큰 약점과 실패와 부족함을 인식하더라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들에게 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필요한 모든 교훈과 권위가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에 도움이나 조언, 판단을 구하러 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것은 확실히 모든 긴급 상황에 충분합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해결하실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그분을 갖고 있다면 타고난 영리함, 세상적인 지혜, 완고함, 뛰어난 학식, 예리한 총명함을 원합니까? 분명히 아니다; 실제로 그러한 모든 것들은 다윗에게 사울의 갑옷과 같다는 것이 증명될 뿐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원을 사용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기록한 곳”에서 형제들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재판할 제사장의 지혜를 반드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주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은 지역적으로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에 외부의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으며, 현명한 사람들이 와서 그들을 도와달라고 다른 곳에 편지를 보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의심할 바 없이, 만약 주님께서 그분의 사랑하는 종들을 보내신다면, 그 순간 그들의 동정심과 친교, 조언과 도움은 매우 높이 평가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독립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시요 주이신 그리스도께 절대적으로 완전하게 의존하도록 장려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를 위해 지혜와 은혜와 능력과 영적 은사의 자원이 비축되어 있으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되고 사랑스러운 머리 안에서 궁핍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육체가 지상에서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는 것을 결코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의 참된 기반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며, 그 기반을 차지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다른 것은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의 참된 터 위에 발을 디딘 순간, 우리의 모든 상태, 사물에 대한 우리의 견해, 우리 자신과 주변 환경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일어나는 변화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모든 것이 변한 것 같습니다. 성경은 새로운 책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봅니다. 우리가 수년 동안 관심이나 유익 없이 읽었던 성경의 일부는 이제 신성한 빛으로 빛나고 우리를 경이로움과 사랑과 찬양으로 가득 채웁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봅니다. 우리의 시야 전체가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공언하는 교회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어두운 분위기에서 탈출하여 이제 성경의 하늘 빛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사물을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새로운 전환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성한 열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제 성경을 지능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모든 생각과 목적과 계획의 중심이자 대상임을 압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귀한 말씀 안에 펼치시기를 기뻐하시는 놀라운 은혜와 영광의 영역으로 인도됩니다. .
독자들이 성령의 직접적이고 강력한 사역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철저히 이해하도록 인도되기를 바랍니다! 그가 성경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하시고, 성경의 가르침과 권위에 아낌없이 항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혈육과 의논하지 말고 어린 아이처럼 주님께 자신을 맡기고 영적인 총명과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에 일치하도록 인도함을 구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주목할만한 시각을 갖고 있는 우리 장의 마지막 구절을 살펴보고 그들이 왕을 세우려고 하는 순간을 예상해야 합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하며 이르기를 나도 내 주위에 있는 모든 나라와 같이 내 위에 왕을 세우리라 하겠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우라. 너는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네 위에 왕으로 세우지 말 것이요, 네 형제가 아닌 자를 네 위에 세우지 말지니라.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아니하고 말을 많이 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제부터는 이 길로 돌아가지 말지니 그 마음이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는 은과 금을 크게 늘리지도 않을 것이다.”
왕이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일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하고 지혜로운 군주들에 의해 행해진 바로 그 일들이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솔로몬 왕이 에돔 땅 홍해 가 엘롯 곁에 있는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지으매 히람이 그 배들에게 자기 종 곧 바다에 익숙한 사공들을 보내매” 솔로몬의 신하들이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사백이십 달란트를 가져다가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왔느니라." “그리고 히람은 금 육십 달란트를 왕에게 보냈습니다.” “일 년 동안 솔로몬이 수입한 금의 중수가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니 [거의 삼백 오십만] 그 외에 상인과 상인의 무역이 있었느니라. 향료 상인과 아라비아의 모든 왕과 그 나라의 방백들이니라' “왕이 은을 만들어 예루살렘에 돌 같이 되게 하고... 솔로몬 왕은 말들을 애굽에서 데려오게 하였으나... 솔로몬 왕은 많은 이방 여인을 사랑하였고... 왕후가 칠백 명과 왕녀들과 첩이 삼백 명이 있었고... 그의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였느니라." ( 왕상 10 , 11. )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인가! 그것은 인간의 가장 좋고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인간에게 얼마나 훌륭한 해설을 제공하는가! 여기에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뛰어난 지혜를 부여받았고, 유례없는 축복과 위엄, 영예와 특권으로 둘러싸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땅의 잔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이 세상이 공급할 수 있는 것에는 부족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전 헌납식에서 그가 드린 놀라운 기도를 통해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공식적으로나 그를 존경하는 가장 밝은 희망을 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는 그의 하나님의 율법이 그토록 분명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모든 세부 사항에 대해 가장 통탄스럽게도 무너뜨렸습니다. 그는 은과 금을 더하지 말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늘렸습니다. 그는 말을 늘리기 위해 이집트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그는 말을 찾으러 이집트로 갔다. 그는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천 명이나 아내를 두었으나 그들이 그의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그런 사람이야! 오! 그 사람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느니라.” “너희는 호흡이 코에 있는 사람을 끊으라 그 사람이 누구로 여겨질까?”
그러나 우리는 솔로몬이 보여준 슬프고 굴욕적인 실패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 진짜 비결은 무엇이었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독자에게 이 장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해야 합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자기 옆 에 두고 평생에 그것을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하며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이 명령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그와 그 자손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18-20절)
솔로몬이 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말씀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그의 역사가는 수행해야 할 매우 다른 임무를 맡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가 율법의 사본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합니다. 그리고 가장 확실하게, 그가 그 사본을 만들었다면, 그는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그것에 등을 돌리고, 하지 말라고 들은 바로 그 일을 행했습니다. 한 마디로, 솔로몬의 통치의 영광이 급속도로 뒤따른 모든 파멸과 파멸의 원인은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을 등한히 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그토록 엄숙하게 만들고, 독자의 진지한 관심을 이 책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주제에 대해 하나님의 교회 전체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필요성을 깊이 느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했거나 현재 존재하는 모든 실패, 모든 죄, 모든 오류, 모든 해악과 혼란, 이단, 종파 및 분열의 근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의 비참한 상황에 대한 유일하고 진정한 주권적 치료법은 모든 사람이 단순하지만 슬프게도 무시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 돌아가는 데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동일한 확신을 가지고 덧붙일 수 있습니다 . 각자 자신과 전체 신앙고백 단체가 신약성경의 명백하고 적극적인 가르침, 즉 우리의 복되신 주이자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에서 벗어나 있음을 보도록 하십시오. 우리의 공통된 죄로 인해 우리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 아래에서 우리 자신을 낮추고, 참된 자기 판단으로 그분께로 향합시다. 그러면 그분은 은혜롭게 우리를 회복시키고, 치유하고, 축복하시고, 가장 복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참으로 겸손한 모든 영혼 앞에는 순종의 길이 열려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자신의 저항할 수 없는 능력으로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의 마음과 양심에 말씀의 권위에 즉각적이고 무조건 항복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을 일깨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신의!
신명기 18
이 장의 첫 문단은 매우 흥미롭고 실용적인 진리의 노선을 제시합니다.
제사장 레위 사람과 레위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으되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그러므로 그들은 그 형제 중에 기업이 없느니라 이는 그가 그들에게 말한 대로 그들의 기업이니라 이는 소나 양으로 제사 드리는 자에게서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니 그 두 어깨와 그 두 마리를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또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첫 열매와 네 양의 첫 털을 그에게 줄지니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셨음이니라 그와 그 자손이 영원히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섬기게 하리라 또 레위인이 온 이스라엘 중 어느 성문에서나 그가 우거하던 곳에서 와서 그 마음의 뜻을 가지고 그 곳으로 오면 여호와께서 택하신 일이면 그도 여호와 앞에 서 있는 그의 모든 형제 레위인과 같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지니라 자기 기업을 팔아 얻은 것 외에 그들도 같은 먹을 것을 받을 것이니라.”(1-8절)
신명기의 모든 부분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제사장은 매우 뚜렷한 방식으로 레위인과 분류됩니다. 우리는 이 책의 특별한 특징으로서 독자의 관심을 끌었으며 지금은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단지 지나가는 말로 독자의 관심을 끄는 내용임을 상기시켜 줄 것입니다. 그로 하여금 우리 장의 시작 부분인 "레위 사람 제사장들"을 검토하고 그것을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서 아론의 아들 제사장들이 언급되는 방식과 비교해 보게 하라. 그리고 만일 그가 이러한 구별의 이유를 묻는다면, 우리는 신명기에서 하나님의 목적이 이스라엘 전체 회중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용량이 우리 앞에 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신명기의 장엄한 개념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방금 인용한 구절에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함께 연결되어 주님의 종으로 제시되어 전적으로 그분께 의존하고 그분의 제단과 봉사에 밀접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흥미로움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하나님의 교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매우 중요한 실제적 진리의 분야를 열어줍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모든 것이 건강할 때 하나님의 제단이 잘 섬기고, 그 결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잘 공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몫을 갖고 계시다면, 그분의 종들도 틀림없이 자신들의 몫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분이 무시당했다면 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함께 묶여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물을 가져와야 했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당신의 종들과 나누셨습니다. 레위인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강요하거나 요구할 수 없었으나 백성들은 그들의 예물을 하나님의 제단에 가져오는 특권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이 그에게 드린 백성의 헌신의 열매를 먹도록 허락하셨다.
이것이 옛날 주님의 종들에 대한 참되고 신성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은 온 회중이 하나님께 드리는 자원 제물로 생활해야 했습니다. 사실, 엘리의 아들들의 어둡고 악한 시대에 우리는 이 사랑스러운 도덕적 질서와는 슬프게도 다른 것을 발견합니다. “제사장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례는 누구든지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이빨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냄비나 솥에 찔러 넣는 것이더라” , 솥이나 냄비 등 고기 갈고리에서 가져온 것은 모두 제사장이 자기를 위해 가져갔습니다. 그들은 실로에서 거기로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와 같이 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기름을 태우기 전에" — 하나님의 특별한 몫 — "제사장의 종이 왔습니다. 제사드리는 사람에게 이르시되 제사장을 위하여 구운 고기를 주소서 그는 네 고기를 삶지 아니하고 생으로 드리리라 하였더니 누구든지 그에게 말하기를 당장에는 기름을 태우지 말라 하거든 그 후에는 그리하라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져가라 그리하면 그렇지 아니하니 지금 내게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강제로 빼앗으리라 하였 느니라 사람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싫어하였느니라." ( 삼상 2:13-17 .)
이 모든 일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었으며, 엘리의 집에 대한 하나님의 엄숙한 심판으로 끝났습니다. 그렇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단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끔찍한 죄악과 불경건을 범할 수 있다면 심판은 그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장에 제시된 사물의 정상적인 상태는 이 모든 무서운 죄악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기꺼이 바치는 제물로 그분 자신을 둘러싸실 것이며, 이 제물로 그분의 제단에서 봉사하는 종들을 먹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제단을 부지런히, 열렬히, 헌신적으로 섬겼을 때 레위 사람들의 제사장들은 풍부한 몫과 풍부한 공급을 얻었습니다. 반면에 여호와와 그분의 제단이 냉담하게 무시되거나 무익한 일상적이거나 무자비한 형식주의로 단지 시중을 들었을 때, 그에 상응하여 주님의 종들도 등한시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과 밀접하게 동일시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선한 왕 히스기야의 명창하던 시절, 모든 것이 맑고 마음이 행복하고 참되었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번제와 화목제물로 삼아 여호와의 장막 문에서 섬기며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번제물로 왕의 소유를 정하셨느니라 또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한 절기에 드리는 번제를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하라 또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에게 명하였더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분깃을 주어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으로 위로를 받게 하려 하신지라 명령이 내리매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첫 열매를 풍성히 가져왔느니라 꿀과 밭의 모든 소출과 그리고 그들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넉넉히 가져왔습니다 . 유다 성읍들에 거주하는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에게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하여 구별한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왔으며 그것을 쌓아 두었더라. 셋째 달에 그들이 더미 기초 쌓기를 시작하여 일곱째 달에 마쳤습니다. 히스기야와 방백들이 와서 무더기를 보고 여호와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축복하였더라 그러자 히스기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무더기에 관해 물었습니다. 사독의 집 대제사장 아사랴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백성이 여호와의 전에 예물을 가져오기 시작한 이래로 우리가 배부르게 먹고도 넉넉히 남았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시심이로다 ; 남은 것은 이 큰 창고뿐이니라.” ( 대하 31:2-10 )
이 모든 것은 참으로 참으로 상쾌한 일입니다! 참으로 격려가 되는 일입니다! 깊고 충만하며 은빛의 헌신의 물결이 하나님의 제단 주위로 흘러 그 품에 여호와의 종들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킬 충분한 공급량을 안고 그 옆에 “무더기”를 쌓았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마음이 그분의 부르심과 임명에 따라 그분의 제단과 성소 봉사에 자신을 바친 사람들의 마음에 감사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독자들은 “ 주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라는 귀중한 말씀을 특별히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에 히스기야의 권위,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모든 행실의 견고한 기초가 있었습니다. 사실, 국가의 가시적 통일성은 사라졌습니다. 그가 축복받은 일을 시작했을 때의 상황은 가장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은 다윗이나 여호수아 시대와 마찬가지로 히스기야 시대에도 참되고 실제적이며 직접적으로 적용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신명기 18:1-8이 그의 시대와 그의 양심에 적용되며 그와 백성이 능력에 따라 그에 따라 행동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 옳습니다 . 이스라엘의 국가적 통일이 무너졌기 때문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굶주려야 했습니까? 분명히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와 역사로 서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상황은 다양할 수 있으며 이스라엘인은 레위 의식의 모든 규례를 세부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위치에 놓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여호와의 봉사와 제단과 율법에 대한 그의 마음의 헌신이 온전히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를 통해 모든 것이 밝고 건전했을 때 주님에 대한 예배와 그분의 사업과 그분의 일꾼들이 축복을 받아 참석했음을 봅니다. 그러나 반면에 상황이 낮고, 마음이 냉랭하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이익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을 때에는 이 모든 위대한 것들을 무자비하게 무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느헤미야 13장을 보십시오 . 그 사랑스럽고 신실한 종은 며칠간 떠나 있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그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일들이 슬프게도 빗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 중에 가난한 레위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내가 또 깨달으니 레위 사람의 몫을 그들에게 주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레위 사람과 일하는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음이라.” 그 암울한 시대에는 첫 열매의 "무더기"가 없었으며, 먹을 것이 없을 때 사람들이 일하고 노래하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율법에 따른 것도 아니요, 그분의 사랑의 마음에 따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종들이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그분에 대한 경배와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주님의 종들에 대한 슬픈 치욕이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때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 때에 내가 관원들과 다투어 이르기를 어찌하여 하나님의 전이 버림받았느냐 하고 그들을 모아 제자리에 세우고 온 유다 사람이 곡식의 십일조를 가져왔느니라" 또 새 포도주와 기름을 곳간에 두었고 또 내가 곳간 맡은 관리인을 삼았으니 이는 그들이 충성된 자로 여겼음이니라." — 그들은 형제들의 신임을 받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 "그들의 직분은 그들의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백성의 헌신의 귀중한 열매를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는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충실한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의논할 수 있었고, 주님의 보물이 그분의 말씀에 따라 신실하게 관리되고 그분의 참되고 진실한 일꾼 들의 필요가 편견이나 편견 없이 완전히 충족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명령이었습니다. 느헤미야와 히스기야와 같은 모든 참 이스라엘 사람이 기꺼이 따르기를 좋아하는 명령이었습니다. 풍성한 축복의 물결이 여호와로부터 그분의 백성에게 흘러나오고 그분의 백성에게서 그분께 다시 돌아오며, 그 흐르는 조수로부터 그분의 종들은 그들의 모든 필요를 위한 충분한 공급을 끌어내야 했습니다. 레위인들이 자기들의 밭으로 돌아가도록 강요받는 것은 그분께 불명예를 돌리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집이 버림받았고 그분의 종들을 위한 양식이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이제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신명기 18장 1~8절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가 배울 점은 무엇입니까 ?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영감받은 사도가 그리스도인 사역을 지원하는 매우 중요한 주제, 즉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를 다루는 고린도전서 9장 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건의 법률 에 관해서 는 가능한 한 명확합니다. "누가 자기 비용으로 전쟁에 나가느냐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아니하는 자가 누구며 양 떼를 먹이고 그 양의 젖을 먹지 아니하는 자가 누구냐 내가 이것을 사람으로서 말하느뇨 ?" 율법에도 이와 같이 말하였느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시는 것이냐 아니면 온전히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냐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고, 곡식 떠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함께 갈 것이라 기록되었은즉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과대한 일이리로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너희에 대한 이 권세에 참여하면 우리가 그렇지 아니하냐? 여기서 은혜는 하늘의 광채로 빛나느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막는 자들아, 거룩한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 속한 것으로 살고,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참여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그러나” – 여기서도 은혜는 그 거룩한 존엄성을 주장합니다 – “나는 이것들 중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려고 이 말을 쓴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나의 영광을 헛되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으니라. 내가 복음을 전하더라도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부득이한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자원해서 이 일을 하면 나에게 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뜻에 어긋난다면 복음의 경륜이 나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러면 나의 보상은 무엇입니까? 진실로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세를 남용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고전 9:7-18 )
여기서 우리는 모든 면에서 이 흥미롭고 중요한 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영감받은 사도는 가능한 모든 결정과 명확성을 가지고 요점에 대한 하나님의 율법을 제시합니다. 착각할 일이 없습니다. “주께서는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옛적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백성이 드리는 예물로 생활한 것과 같이 이제는 참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의 은사를 받고 성령의 감화를 받아 복음을 전하며 그 영광스러운 사업에 끊임없이 부지런히 자신을 바치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현세적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설교하는 사람들에게 일정한 금액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에는 그런 개념이 없습니다. 노동자는 그의 주인을 의지해야 하며, 부양을 위해 오직 그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만일 그가 교회를 바라보거나 어떤 면으로든 사람을 바라보면 그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여호와 안에서, 여호와로부터 몫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들의 상속 재산이었습니다. 사실, 그분은 사람들이 그분의 종들을 통해 그분을 섬길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말씀하셨고, 주는 일을 축복하셨습니다. 주는 것은 그들의 높은 특권이자 의무였습니다. 만일 그들이 거절하거나 무시했다면, 그들의 밭과 포도원은 가뭄과 불모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 학개 1:5-11 )
그러나 레위 사람들의 제사장들은 여호와 만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는 데 실패하면 레위 사람들은 그들의 밭으로 날아가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십일조와 헌금을 위해 누구와도 소송을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호소는 그들에게 일을 맡기고 그들에게 할 일을 주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주님의 일꾼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오직 그분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환경의 해안에서 밀려나서 설교 사업에 전적으로 헌신하려고 시도하기 전에 그분께서 그들을 그 일에 적합하게 하시고 부르셨다는 것을 잘 확신해야 합니다. 그들은 사람과 모든 피조물의 흐름과 인간의 소유물로부터 눈을 완전히 떼고 살아 계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가장 엄숙한 문제에 있어서 잘못된 충동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초래되는 가장 비참한 결과를 보아 왔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지도 아니하고 일에 합당하지도 아니한 사람들이 자기 직업을 버리고 나와서 그들이 말한 대로 믿음으로 살고 그 일에 자신을 바치느니라. 모든 경우에 통탄할 만한 난파선이 발생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길의 엄밀한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을 때 너무 놀라서 실제로 정신적 균형을 잃고 한동안 이성을 잃었습니다. 일부는 평화를 잃었습니다. 일부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요컨대, 40년 동안 관찰한 결과,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을 포기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안전하고 좋은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우리의 깊고 철저한 확신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 자신에게 너무나 분명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름스 의회에서 루터와 같이 "내가 여기 있습니다. 달리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소서! 아멘"이라고만 말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일에 그를 붙드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그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임을 완전히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과 그와 그의 행로에 관한 그들의 생각에 관해서는, 그는 단순히 그들을 그의 주인에게 회부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는 그들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며 그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한 적도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그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 그들은 불평하거나 질문을 제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그를 떠나야 하며, 그가 서거나 넘어지는 것은 자기 주인에게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9장 에서 방금 인용된 멋진 구절을 보면 , 우리는 복된 사도가 의심할 바 없이 자신의 지원을 받을 권리를 확립한 후에 그것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것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손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고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수고하고 고생하며 일했습니다. "이 손은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필수품을 채워주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내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는 여행했고, 설교했고, 집집을 방문했고, 수고한 사도였고, 열성적인 전도자였으며, 부지런한 목사였으며, 모든 교회를 돌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지원할 자격이 없었나요? 확실히 그는 그랬다. 그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이 하나님의 교회의 기쁨이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주장을 결코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는 그것을 포기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수고하여 자신과 동료들을 부양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를 들어 에베소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자들을 돕고 주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보였노라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이니라."
이제 이 사랑하고 존경받는 그리스도의 종이 예루살렘에서 일리리곤까지 여러 곳을 여행하고 전도자, 목사, 교사로서 막대한 수고를 하면서 자신을 부양할 시간을 찾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의 손으로 하신 일로 말미암는다. 참으로 그는 높은 도덕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사례는 모든 형태와 형태의 고용주의에 대한 확고한 증언입니다. 보수가 좋은 목사들에 대한 이교도의 조롱적인 언급은 그에게 전혀 적용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확실히 삯을 받고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사하게도 그것을 줄 줄 아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빌립보의 사랑받는 모임은 그리스도 안에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필수품을 계속해서 공급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그들에게 참으로 좋은 일이었습니다!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헌신에 대한 감미로운 기록을 읽었고 그들의 희생의 향기로 새 힘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 하늘에 기록되어 있으며, 참으로 그것은 그리스도의 마음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복된 사도가 자신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쏟아 붓는지 들어보십시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노니 이제 너희가 나에 대한 배려가 넉넉하여 너희가 조심하였으나 기회가 부족하였느니라 내가 궁핍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 복되고 극기하는 종 — "나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는 법을 배웠노라 나는 비천할 줄도 알고 풍부할 줄도 아나니 어디서나 모든 일에 내가 교훈을 받았노니 배부르고 배고프고 궁핍한 데에도 능력을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처음에 나의 고난에 동참한 것은 잘한 일이니라. 복음에 관하여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일에 대하여 내게 말한 교회가 없고 오직 너희뿐이라 데살로니가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필요를 위하여 보내었으니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열매를 구함이라 그러나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풍족하도다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나의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 빌립보서 4:10-19 .)
그토록 존경받는 그리스도의 종의 생애가 끝나고 로마 감옥에서 고독하게 지내는 그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드문 특권입니다! 그들의 사역은 얼마나 적절하고, 얼마나 옳고, 얼마나 사랑스러웠습니까! 사도의 인정을 받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리고 그들의 봉사가 향기로운 냄새처럼 하나님의 보좌와 마음에까지 올라갔다는 확신은 얼마나 귀중합니까! 고린도인이 그의 사역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갈라디아인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보다 사도의 필요를 섬기는 빌립보인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사도는 고린도 모임에서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국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임에 속한 개인들은 실제로 그를 섬겼고 그들의 봉사는 영감의 페이지에 기록되어 위에서 기억되며 왕국에서 차차 풍성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나는 스데파누스와 포르투나투스와 아가이고가 오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부족한 것을 공급해 주고 나와 여러분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으니 그런 사람들을 인정해 주십시오.” ( 고전 16:17-18 .)
그러므로 우리 앞에 지나간 모든 일을 통해 우리는 율법 아래서나 복음 아래서나 계시된 뜻에 따르고 참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따른다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배웁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업에 열성적으로, 부지런히, 충실하게 자신을 바치는 사람은 그분의 백성으로부터 진심 어린 동정과 실제적인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그분의 종들을 통해 그분을 섬기는 것을 가장 깊은 기쁨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분 자신이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분은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에서 도움을 은혜롭게 받아들이셨고 그분의 가장 귀중한 사역의 열매를 거두셨습니다. 그 중에 일곱 귀신과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갔으니 그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를 섬기더라." ( 누가복음 8:2-3 .)
행복하고 특권을 누리는 여성들! 인간이 필요하고 굴욕을 당하는 시대에 영광의 주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성신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신성한 페이지에는 그들의 영광스러운 이름이 서 있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읽고 시간의 흐름을 따라 영원까지 전해지게 될 것입니다. 돈이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지 않는 것처럼, 돈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처럼, 방종에 자신의 재산을 낭비하지 않고, 영혼에 녹슬거나 적극적인 저주가 되기 위해 재산을 축적하지 않은 것은 그 여성들에게 얼마나 좋았습니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집회 안팎을 막론하고 일꾼의 자리를 맡은 모든 사람이 모든 인간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어떤 형태로든 모든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또는 형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영혼의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조만간 무너질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필요를 공급받기 위해 오직 그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만약 교회가 이를 무시한다면, 교회는 현세와 미래에서 심각한 패배자가 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를 향한 직접적인 봉사를 축소하지 않고 그들의 손의 노동으로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좋을 것입니다.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더 훌륭한 방법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제출될 수 있는 모든 제안의 진실성만큼 이것을 확신합니다. 이마에 땀을 흘리거나 두뇌에 땀을 흘리며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는 동시에 주님의 사업에 부지런히 자신을 바치는 참으로 재능 있는 그리스도의 종보다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더 고상한 것은 없습니다. 전도자로서, 목사로서, 교사로서. 이에 대한 도덕적 대립은 은사나 은혜나 영적인 삶 없이 단순한 직업이나 생활 수단으로 사역이라고 불리는 일에 들어가는 사람의 모습에서 우리에게 제시됩니다. 그러한 사람의 입장은 도덕적으로 위험하고 극도로 비참한 처지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는 주제의 범위 내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떠나서 우리 장을 계속 진행하기에 너무 감사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요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 한 사람도 너희 중에 용납되지 못할지니 점쟁이나 점술가나 마술사나 무당이나 마술사나 신접한 상담가나 마법사나 강령술사 등을 행하는 사람은 모두 주님께서 가증히 여기십니다 . ; 이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리니 네가 차지할 이 민족들은 시세를 관찰하는 자들과 점술가들의 말을 들었느니라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같은 일을 하도록 허락지 아니하셨느니라' (9-14절)
이제 앞의 인용문을 읽으면서 독자는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적용이 가능한지 묻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마법사, 마술사, 네크로맨서의 공연에 습관적으로 가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까?라고 대답합니다. 역술, 마술, 최면술, 투시 등에 참여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 그렇다면 우리가 방금 인용한 구절은 그러한 모든 것에 대해 매우 예리하고 엄숙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언급한 이 모든 것들이 마귀에게서 나온 것임을 가장 확실하게 믿습니다. 이것은 가혹하고 가혹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도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죽은 자의 영을 불러오는 끔찍한 일에 자신을 빌려주는 것은 단순히 자신을 악마의 손에 맡겨서 그의 거짓말에 속고 속이는 것임을 철저히 확신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완전한 계시를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이 식탁을 바꾸거나 영적으로 찬양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론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 귀한 말씀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세상을 떠난 친구나 다른 사람들의 영에게로 향합니다. 그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법적으로 그들을 내어버려 두어 죽은 자를 가장하고 악한 영들에게 눈멀게 하고 속이게 하실 것입니다. 온갖 거짓말을 합니까?
{*우리 독자 중 일부는 스피릿 랩과 테이블 뒤집기로 우리의 클래스 최면술에 반대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같은 관점에서 간주하고 의료 행위에서 에테르나 클로로포름과 같은 방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점을 독단적으로 주장하려고 시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완전히 무의식 상태(최면술, 컴파일러)에 두도록 허용하는 것을 엄숙한 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의 광란을 듣거나 그에 따라 인도된다는 생각에 관해서는, 우리는 그것을 절대적으로 죄악은 아닐지라도 절대적으로 터무니없는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는 이 주제를 완전히 다루려고 시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겐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죽은 영혼들과 상담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독자들에게 경고하는 것이 우리의 엄숙한 의무라고 느꼈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가장 위험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영혼이 이 세상에 돌아올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다루지 않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하나님께서는 적합하다고 판단하시면 그들이 오는 것을 허락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떠나자. 우리가 마음 앞에 항상 간직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신성한 계시가 완벽하게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죽은 영들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자는 나사로가 땅으로 돌아가서 그의 다섯 형제에게 말하면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여 구하노니 그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거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가 있고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만일 죽은 자 가운데서 그들에게 나아간 자가 있으면 회개 하겠나이다 이르시되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권함을 받았으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가 있었느니라." ( 누가복음 16:27-31 .)
여기서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철저한 해결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현재 상태와 미래의 운명에 관한 그 말씀의 분명하고 엄숙한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떠난 수천 명의 영혼이 돌아와서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든 설득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위로는 천국에서, 아래로는 지옥에서 보고 듣고 느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구원이나 영구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큰 흥분과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훌륭한 대화 자료를 제공하고, 신문을 널리 가득 채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장사와 이득, 어리석음과 허영, 쾌락 추구와 방종과 함께 여전히 계속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 그리스도와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에게 덧붙일 수 있습니다 – “만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저희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참된 신자는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성경에 갖고 있기 때문에 술자리나 마술이나 마술에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친숙한 영혼을 가진 자들, 엿보고 중얼거리는 마법사들; 백성이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율법과 증거에 대하여 만일 그들이 이 말대로 말하지 아니하면 그 속에 빛이 없기 때문이니라.”( 이사야 8:19-20 )
여기에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백성의 신성한 자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우리 장을 마무리하는 훌륭한 문단에서 회중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주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영접한 영, 마술사, 마법사, 마녀에게 적용할 필요가 없음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을 다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총회 날에 이르기를 나로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는 듣지 말며 이 큰 불을 다시 보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죽지 않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우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그가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다 말하리라 그가 내 이름으로 말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할 것인즉 내가 그에게 요구하리라 그러나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이면 그 선지자는 죽으리로다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을 우리가 어찌 알리요 이 말은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15-22절)
우리는 이 선지자가 누구인지, 즉 우리의 사랑스러운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아는 데 전혀 어려움을 겪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는 모세의 말을 그대로 적용합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모세가 진실로 말하였느니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가 너희에게 이르시는 것은 다 들을 것이니라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백성 중에서 멸망되리라." (20-23절)
그러한 선지자의 음성을 듣는 특권은 얼마나 귀중한가! 그것은 인간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는 천둥이나 화염이나 번개가 아니라 위로의 능력으로 떨어지는 사랑과 자비의 고요하고 작은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은 목마른 땅 위에 하늘의 부드러운 이슬처럼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축복받은 신명기를 연구할 때 우리 앞에 끊임없이 강력하게 다가오는 귀중한 계시는 거룩한 경전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음성은 그리스도의 음성이고, 그리스도의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다.
우리는 더 이상 원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신의 책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진리를 가지고 새로운 계시를 가지고 온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과 그가 전달한 내용을 성경의 표준에 따라 판단하고 그것을 완전히 거부해야 합니다.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거짓 선지자들은 큰 허식과 거창한 말과 경건한 태도를 가지고 옵니다. 게다가 그들은 무지한 사람들에게 부과하기 쉬운 일종의 위엄, 무게, 인상으로 자신을 둘러싸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탐구하는 능력을 견딜 수 없습니다. 성경의 몇 가지 간단한 구절이 그들에게서 그들의 모든 인상적인 환경을 제거하고 그들의 놀라운 계시를 뿌리째 뽑아버릴 것입니다. 참 선지자의 음성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음성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들은 사람은 낯선 사람의 음성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오직 예수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십시오 .
신명기 1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 민족을 멸절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신 후에 네가 그들을 얻어 그들의 성읍과 가옥에 거할 때에는 네 땅 가운데에서 세 성읍을 구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네게 나누어 길을 닦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모든 살인자 를 그리로 도피하게 하라.” (1-3절)
우리가 이 몇 줄에서 관찰하는 "선함과 엄격함"의 매우 놀라운 조합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확실히 견딜 수 없게 된 그들의 완결된 사악함 때문에 가나안 나라들의 “멸절”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불쌍한 살인자가 심한 고난을 당하는 날, 피의 보복자를 피해 생명을 구하기 위해 도망갈 때 그를 위해 마련된 마련에서 가장 감동적인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정부와 선하심은 둘 다 신성하게 완전하다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선함은 순전한 사악함과 공개적인 반역을 용납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닌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통치 하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은 선하시므로 계속해서 큰 죄를 지을 수 있다고 상상한다면, 조만간 그들의 비참한 실수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영감받은 사도는 “보라,”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선하심과 오래 참으시는 자비를 멸시하는 행악자들을 가장 확실하게 끊으실 것입니다. 그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니 그의 거룩하신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그리고 엄청난 친절. 수백 년 동안 하나님은 가나안 일곱 족속을 참으시고 마침내 그들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고 그 땅이 더 이상 그들을 용납지 못하였느니라. 그는 평야의 범죄한 도시들의 엄청난 사악함을 참으셨습니다. 만일 소돔에서 의인 열 명이라도 찾으셨다면 그들을 위하여 그 땅을 아끼셨으리라. 그러나 무서운 복수의 날이 이르렀고 그들은 “끊어졌”습니다.
{*"심각함"으로 번역된 단어는 문자 그대로 "절단"을 의미하는 아포토미아 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범죄한 그리스도교국도 그러할 것입니다. "너도 끊어지리라." 계산할 시간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오! 정말 계산할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떨리고, 눈은 훑어보고 펜은 영혼을 굴복시키는 말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우리 장의 서두에서 어떻게 신성한 “선하심”이 빛을 발하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살인자들이 가능한 한 도피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신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운 노고를 보십시오. 세 도시는 “ 네 땅 가운데” 있게 될 것이었다. 먼 구석이나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두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 너는 네 길을 예비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너는 네 땅의 경계를 … 세 부분으로 나누라 .” 학살자의 탈출을 촉진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께서는 “그 앞에 있는 소망을 붙잡으려고 피난처로 날아가는” 괴로움을 겪는 사람의 감정을 생각하셨습니다. 도피성은 “하나님의 의”가 마음이 상하고 무력한 죄인에게 가까이 다가온 것 같이 “ 일하지 아니하고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 가까워질 것이었습니다. 불경건한 자."
“ 네가 길을 예비하라” 라는 표현에는 특유의 감미로움이 있습니다 . 우리 자신의 언제나 은혜로우신 하나님,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과 얼마나 비슷합니까! 그러나 의로운 심판으로 가나안 나라들을 멸절하시고 살인자를 위해 은혜로운 마련을 하신 분은 바로 그 하나님이셨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수 있는 경우는 이러하니라 누구든지 전에는 미워하지 아니하던 부지중에 그 이웃을 죽였으니 이는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나무를 패러 숲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손으로 도끼를 가져와 나무를 찍으면 그 머리가 자루에서 빠져 그 이웃을 쳐서 죽게 하여 그 성읍 중 한 곳으로 도망하여 살게 하라. 살인자여, 그의 마음이 뜨거울지라도 길이 멀기 때문에 그를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 가장 감동적이고 절묘한 은혜! — “죽여라. 그러나 그가 본래 그를 미워하지 않았으므로 사형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세 성읍을 구별하라.” (4-7절.)
여기서 우리는 도피성을 제공받은 사람에 대해 가장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그가 이에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 도시는 그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했다면, 그는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를 생각하시고 하나님의 손이 그를 만드실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에서 그를 위한 피난처를 발견하셨다는 가장 완전한 확신을 느낄 것입니다. 살인자는 일단 도피성 근처에 들어오면 자유롭게 숨을 쉬며 조용하고 달콤한 휴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보복하는 칼이 그에게 닿을 수 없었고, 그의 머리털 하나도 거기에 닿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안전했습니다. 예, 완벽하게 안전합니다. 완벽하게 안전할 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확실합니다 . 그는 구원받기를 바랐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는 도시에 있었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가 들어가기 전에, 그는 그의 불쌍하고 겁에 질린 마음 깊은 곳에서 많은 투쟁, 많은 의심과 두려움, 그리고 고통스러운 훈련을 했을 것입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날아가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에게 심각하고 열중하는 문제였습니다. 그 문제는 주변의 모든 것을 가볍고 하찮게 보이게 만드는 문제였습니다. 날아다니는 슬레이어가 길가에 꽃을 모으기 위해 멈추는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생명이 위태로워요. 나는 목숨을 걸고 날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복수자가 와서 내가 꽃을 모으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어쩌겠습니까? 아니, 이 도시는 나의 100%의 재산입니다." 모든 것을 사로잡는 대상, 나에게 가장 작은 관심이나 매력은 없습니다. 그것이 지금 나의 유일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가 문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한 순간 그는 안전했고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의 감정으로? 그의 증거로? 경험으로? 아니; 그러나 단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의심할 바 없이 그에게는 엄청난 투쟁과 갈등 끝에 그에게 가장 귀중한 느낌, 증거,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결코 그의 확신의 근거나 성공의 기초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평화. 그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안전케 하였고 하나님 의 말씀 이 그를 굳건하게 하였 느니라 .
우리는 도피성 성벽 안에서 안전과 확실성의 문제에 관해 많은 주님의 사랑받는 백성들처럼 자신을 표현하는 살인자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확신하는 것이 추정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 그에게 “당신은 안전합니까?”라고 물었다면 "확신하는!" "내가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내가 살인자가 아니었느냐? 내가 이 도피성으로 도망한 것이 아니냐? 우리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를 위하여 맹세하지 아니하셨느냐? 그가 이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그 곳으로 도망가면 살 수 있겠지?'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그 일을 위해 끔찍하게 도망쳤습니다. 때때로 저는 복수자가 저를 그 무서운 손아귀에 붙잡아 놓은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자비로 길을 아주 평탄하게 하시고 내가 그 도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의심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기에 안전하고 확실하게 있습니다. 나는 이제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고, 이 복된 장소의 완벽한 안전함 속에서 위아래로 걸을 수 있으며, 나 같은 불쌍한 살인자에게 그토록 감미로운 피난처를 제공하신 그분의 크신 선하심에 대해 은혜로우신 언약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독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의 안전에 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는 구원받았으며 그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영이 도피성 성벽 안에 있는 살인자의 단순한 비유를 그의 마음에 적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 앞에 있는 소망을 붙잡으려고 피난처로 도망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몫이기 때문에 확실한 “강한 위로”를 그가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 히브리서 6:18 .)
이제 우리 장을 진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도피성에서 살인자의 안전 문제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본 것처럼 그것은 완벽하게 제공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땅의 순결함과 그분의 정부의 완전성은 정당하게 유지되어야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만지면 어느 누구도 안전할 수 없습니다. 이 위대한 원칙은 인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길의 역사의 모든 페이지에서 빛을 발합니다. 인간의 참된 축복과 하나님의 영광은 서로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둘 다 동일한 불멸의 기초, 즉 그리스도와 그분의 귀중한 사업 위에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혀 네 열조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땅을 다 네게 주실 것이며 네가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의 길로 행하기 위하여 이 세 성읍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삯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게 하라. 그러나 누구든지 그 이웃을 미워하여 숨어 숨어서 그를 쳐죽이고 그 성읍 중 한 곳으로 도망하면 그 성읍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데려다가 피를 보수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죽게 하라 네 눈이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고 이스라엘 중에서 무죄한 피를 흘린 죄를 제하여 버리라 너랑 잘 지내." (8-13절)
그러므로 살인자를 위한 은혜 이든지 , 살인자를 위한 심판이든지 ,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정부의 요구가 정당하게 유지되어야 했습니다. 부지중에 살인한 사람은 자비의 마련을 받았습니다. 유죄 살인자는 융통성 없는 정의의 엄중한 선고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의 엄숙한 현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어디에서나 우리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것이 더 충분히 인식된다면, 그것은 신성한 성품에 대한 일방적인 관점에서 우리를 효과적으로 구원할 것입니다. "네 눈이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누가 그런 말을 했나요? 여호와. 누가 썼나요? 성령 하나님. 무슨 뜻인가요? 악에 대한 엄숙한 심판. 사람들은 이 중대한 문제들을 어떻게 하찮게 여기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주님의 백성은 자신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는 일에 관해 어떻게 어리석은 추론을 용납하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부의 엄숙한 제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데 있어서 대담한 불신과 연합하여 잘못된 감상이 끊임없이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십시오. 이는 매우 심각한 고려 사항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확실한 심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의적인 살인자가 무지한 살인자를 위한 하나님의 마련을 감히 이용하려고 하면 공의의 손이 그를 붙잡아 무자비하게 죽였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정부는 이러했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다가오는 날에도 그러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지금 하나님은 세상에 오래 참음으로 자비를 베풀고 계십니다. 지금은 구원의 날이요, 은혜 받을 만한 때이다. 복수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오! 그 사람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처사에 대해 추론하는 대신, 우리를 영원한 지옥의 불길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귀중한 구주께로 피난처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도피성에 제시된 다른 사항에 대해서는 독자에게 "민수기 주석" 35장을 참조해야 합니다.}
독자에게 우리 장의 마지막 문단을 인용하기 전에 우리는 14절에 주의를 환기시켜야 합니다. 그 구절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돌보시고 직간접적으로 모든 일에 대한 그분의 가장 은혜로운 관심에 대한 매우 아름다운 증거가 있습니다. 그들을 염려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이웃의 옛적부터 네 기업의 땅으로 정한 네 이웃의 랜드마크를 옮기지 말지니라.”
분명한 의미와 일차적인 적용을 취하는 이 구절은 우리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제시하고 그분이 사랑하는 백성의 모든 상황에 얼마나 기이하게 개입하셨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감미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랜드마크는 간섭할 수 없었습니다. 각자의 몫은 옛날의 경계선에 따라 그대로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분께서는 각 지파와 각 가족에게 그들의 고유한 몫을 할당하셨고, 완벽하게 정확하게 표시하셨으며, 너무나 분명하게 표시해 두셨기 때문에 혼란도, 이해관계의 충돌도, 서로 간섭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 재산에 대한 소송이나 논쟁의 근거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분쟁의 가능한 모든 근거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각 사람의 몫을 표시하는 고대의 랜드마크가 서 있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대로, 저마다 자기 소유가 적은 것을 모두 아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아래서 소작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세입자는 은혜로우시고 전능하신 집주인의 눈이 그의 땅 위에 있고 그분의 손이 모든 침입자로부터 땅을 보호하신다는 것을 아는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화롭게 지내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정하신 몫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 장의 이 아름다운 절의 명백한 의미는 이렇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것은 깊은 영적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교회의 각 구성원을 위한 영적인 이정표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하늘 기업의 경계를 신적으로 정확하게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 이정표는 옛날에 우리 주이자 구주이신 예수님의 사도들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설정? 확실히 존재하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주목하고 계시며, 그들이 아무런 처벌 없이 제거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들을 만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답변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의 교회의 위치와 몫과 전망을 방해하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랜드마크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명기 주석"의 제1권과 이 시리즈의 다른 4권에서 이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이스라엘의 랜드마크 제거에 대응하는 하나님의 교회의 일을 행하지 않도록 가장 엄숙한 방법으로 경고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에서 누군가가 지파의 상속에 관한 어떤 새로운 마련을 제안하고, 어떤 새로운 원칙에 따라 각자의 재산을 조정하고, 새로운 경계선을 설정하기 위해 나아왔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대답했을 것입니까? 신실한 이스라엘 사람? 아주 간단한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신명기 19:14 의 언어로 대답했을 것입니다 .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새로운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옛날에 그들이 우리의 유산에 세워 놓은 신성하고 유서 깊은 랜드마크에 완전히 만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것을 지키고,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현대적 혁신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회중의 모든 참된 성원이 즉시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그리스도인은 진보와 발전을 구실로 하나님의 교회의 이정표를 제거하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의 귀중한 가르침 대신에, 소위 과학의 빛과 철학의 자원을 우리에게 제공하십시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 무엇을 추가할 수 있나요? “ 태초부터 있던 것”이 있을 때 우리는 인간의 진보나 발전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 " 모든 진리"를 소유한 사람들을 위해 과학이나 철학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 의심할 바 없이 우리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발전하기를 원하며 갈망합니다. 우리 일상의 역사에서 그리스도의 삶이 더욱 완전하고 명확하게 발전하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과학과 철학은 이런 면에서 우리를 도울 수 없습니다. 아니, 그것은 가장 심각한 방해가 될 뿐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인 독자 여러분, 그리스도께 가까이, 그분의 말씀에 가까이 머물도록 노력합시다. 이것이 이 어둡고 악한 시대에 우리의 유일한 안전책입니다. 그분을 떠나서는 우리는 아무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분 안에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 잔의 몫이시며 우리의 기업의 분깃이십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서 안전할 뿐만 아니라 그분과 분리되고 그분으로 만족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분처럼 영원히 그분과 함께 있게 될 그 밝은 날까지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장의 나머지 구절을 인용하는 것 외에는 조금 더 할 것입니다.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빛과 지식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건전한 진리를 제시합니다.
“사람의 모든 악에 대하여나 모든 죄에 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하리라” (버전 15.)
이 주제는 이미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너무 강력하게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의 주의를 거듭거듭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사도 바울의 성신께서 두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신다는 사실에서 그 중요성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경우에 "두세 증인"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한 명의 증인이 아무리 신뢰할 만하더라도 사건을 결정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명백한 사실을 좀 더 주의 깊게 평가하고 적절하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엄청난 양의 분쟁과 다툼이 종식될 것입니다. 우리는 공상적인 지혜로 어떤 문제라도 해결하려면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한 명의 증인이면 충분하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지혜로우시며, 그분의 틀림없는 말씀을 굳게 붙잡는 것이 우리의 가장 참된 지혜이자 가장 큰 도덕적 안전임을 기억합시다.
“만일 거짓 증인이 사람을 거슬러 일어나 그 잘못을 고발하면 그 두 사람 사이에 논쟁하는 두 사람이 여호와 앞 곧 그 당시의 제사장들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그 증인이 거짓 증인이 되어 그 형제에 대하여 거짓 증언하였으면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할지니 남은 자들은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너희 가운데서 이런 악한 일을 행하지 아니하리라. 손에는 발로, 발에는 발로." (16-21절)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짓 증언을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는 비록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할지라도 거짓 증언도 하나님을 덜 미워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확실히 우리가 서 있는 은혜에 더 온전히 들어갈수록 우리는 모든 형태와 형태의 거짓 증언과 중상과 악한 말을 더욱 더욱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선하신 주님, 그러한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소서!
Deuteronomy 8 - 13
C. H. Mackintosh.
Deuteronomy 8
"All the commandments which I command thee this day shall ye observe to do, that ye may live, and multiply, and go in and possess the land which the Lord sware to your fathers. And thou shalt remember all the way which the Lord thy God led thee these forty years in the wilderness, to humble thee, and to prove thee, to know what was in thine heart, whether thou wouldest keep his commandments or no." (Vers. 1, 2.)
It is, at once, refreshing, edifying and encouraging to look back over the whole course along which the faithful hand of our God has conducted us; to trace His wise and gracious dealings with us; to call to mind His many marvellous interpositions on our behalf, how He delivered us out of this strait and that difficulty; how, oft-times, when we were at our wits' end, He appeared for our help, and opened the way before us, rebuking our fears and filling our hearts with songs of praise and thanksgiving.
We must not, by any means, confound this delightful exercise with the miserable habit of looking back at our ways, our attainments, our progress, our service, what we have been able to do, even though we are ready to admit, in a general way, that it was only by the grace of God that we were enabled to do any little work for Him. All this only ministers to self complacency, which is destructive of all true spirituality of mind. Self-retrospection, if we may be allowed to use such a term, is quite as injurious in its moral effect as self-introspection. In short self occupation, in any of its multiplied phases, is most pernicious; it is, in so far as it is allowed to operate, the death-blow to fellowship. Anything that tends to bring self before the mind must be judged and refused, with stern decision; it brings in barrenness, darkness and feebleness. For a person to sit down to look back at his attainments or his doings, is about as wretched an occupation as any one could engage in. We may be sure it was not to any such thing as this that Moses exhorted the people when he charged them to "Remember all the way by which the Lord their God had led them."
We may here recur, for a moment, to the memorable words of the apostle in Philippians 3. "Brethren, I count not myself to have apprehended; but this one thing I do, forgetting those things which are behind, and reaching forth to those things which are before, I press toward the mark for the prize of the high calling of God in Christ Jesus."
Now, the question is, what were the "things" of which the blessed apostle speaks? Did he forget the precious dealings of God with his soul, throughout the whole of his wilderness journey? Impossible; indeed we have the very fullest and clearest evidence to the contrary. Hear his touching words before Agrippa: "Having therefore obtained help of God, I continue to this day, witnessing both to small and great." So also, in writing to his beloved son and fellow-labourer, Timothy, he reviews the past, and speaks of the persecutions and afflictions which he had endured: "But," he adds, "Out of them all the Lord delivered me." And again, "At my first answer no man stood with me, but all forsook me; I pray God that it may not be laid to their charge. Notwithstanding the Lord stood with me, and strengthened me; that by me the preaching might be fully known, and that all the Gentiles might hear; and I was delivered out of the mouth of the lion."
To what then does the apostle refer when he speaks of "forgetting the things which are behind"? We believe he refers to all those things which had no connection with Christ — things in which the heart might rest, and nature might glory — things which might act as weights and hindrances; all these were to be forgotten in the ardent pursuit of those grand and glorious realities which lay before him. We do not believe that Paul, or any other child of God or servant of Christ, could ever desire to forget a single scene or circumstance, in his whole earthly career, in any way illustrative of the goodness, the loving kindness, the tender mercy, the faithfulness of God. On the contrary, we believe it will ever be one of our very sweetest exercises to dwell upon the blessed memory of all our Father's ways with us while passing across the desert, home to our everlasting rest.
"There with what joy reviewing
Past conflicts, dangers, fears,
Thy hand our foes subduing,
And drying all our tears;
Our hearts with rapture burning,
The path we shall retrace.
Where now our souls are learning
The riches of thy grace."
But let us not be misunderstood. We do not, by any means, wish to give countenance to the habit of dwelling merely upon our own experience. This is often very poor work, and resolves itself into self occupation. We have to guard against this as one of the many things which tend to lower our spiritual tone and draw our hearts away from Christ. But we need never be afraid of the result of dwelling upon the record of the Lord's dealings and ways with us. This is a blessed habit, tending ever to lift us out of ourselves, and fill us with praise and thanksgiving.
Why, we may ask, were Israel charged to "remember all the way" by which the Lord their God had led them? Assuredly, to draw out their hearts in praise for the past, and to strengthen their confidence in God for the future. Thus it must ever be. "We'll praise Him for all that is past, and trust Him for all that's to come." May we do so more and more! May we just move on, day by day, praising and trusting, trusting and praising. These are the two things which redound to the glory of God, and to our peace and joy in Him. When the eye rests on the "Eben-ezers" which lie all along the way, the heart must give forth its sweet "Hallelujahs" to Him who has helped us hitherto, and will help us right on to the end. He has delivered, and He doth deliver, and He will deliver. Blessed chain! Its every link is divine deliverance.
Nor is it merely upon the signal mercies and gracious deliverances of our Father's hand that we are to dwell, with devout thankfulness, but also upon the "humblings" and the "provings" of His wise, faithful and holy love. All these things are full of richest blessing to our souls. They are not, as people sometimes call them, "mercies in disguise," but plain, palpable, unmistakable mercies for which we shall have to praise our God throughout the golden ages of that bright eternity which lies before us.
"Thou shalt remember all the way" — every stage of the journey, every scene of wilderness life, all the dealings of God, from first to last, with the special object thereof, "to humble thee, and to prove thee, to know what was in thine heart."
How wonderful to think of God's patient grace and painstaking love with His people in the wilderness! What precious instruction for us! With what intense interest and spiritual delight we can hang over the record of the divine dealings with Israel in all their desert wanderings! How much we can learn from the marvellous history! We, too, have to be humbled and proved, and made to know what is in our hearts. It is very profitable and morally wholesome. On our first setting out to follow the Lord, we know but little of the depths of evil and folly in our hearts. Indeed, we are superficial in everything. It is as we get on in our practical career that we begin to prove the reality of things; we find out the depths of evil in ourselves, the utter hollowness and worthlessness of all that is in the world, and the urgent need of the most complete dependence upon the grace of God, every moment. All this is very good; it makes us humble and self-distrusting; it delivers us from pride and self-sufficiency, and leads us to cling, in child-like simplicity, to the One who alone is able to keep us from falling. Thus as we grow in self-knowledge we get a deeper sense of grace, a more profound acquaintance with the wondrous love of the heart of God, His tenderness toward us, His marvellous patience in bearing with all our infirmities and failings, His rich mercy in having taken us up at all, His loving ministry to all our varied need, His numberless interpositions on our behalf, the exercises through which He has seen fit to lead us for our souls' deep and permanent profit.
The practical effect of all this is invaluable; it imparts depth, solidity and mellowness to the character; it cures us of all our crude notions, and vain theories; it delivers us from one-sidedness and wild extremes; it makes us tender, thoughtful, patient and considerate toward others; it corrects our harsh judgements and gives a gracious desire to put the best possible construction upon the actions of others, and a readiness to attribute the best motives in cases which may seem to us equivocal. These are precious fruits of wilderness experience which we may all earnestly covet.
"And he humbled thee, and suffered thee to hunger, and fed thee with manna, which thou knewest not, neither did thy fathers know, that he might make thee know that man doth not live by bread only,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s out of the mouth of the Lord doth man live." (Ver. 3.)
This passage derives special interest and importance from the fact that it is the first of our Lord's quotations from the book of Deuteronomy, in His conflict with the adversary in the wilderness. Let us ponder this deeply. It demands our earnest attention. Why did our Lord quote from Deuteronomy? Because that was the book which, above all others, specially applied to the condition of Israel, at the moment. Israel had utterly failed, and this weighty fact is assumed in the book of Deuteronomy, from beginning to end. But not withstanding the failure of the nation, the path of obedience lay open to every faithful Israelite. It was the privilege and duty of every one who loved God, to abide by His word, under all circumstances; and in all places.
Now, our blessed Lord was divinely true to the position of the Israel of God; Israel after the flesh had failed and forfeited everything; He was there, in the wilderness, as the true Israel of God, to meet the enemy by the simple authority of the word of God. "And Jesus, being full of the Holy Ghost, returned from Jordan, and was led by the Spirit into the wilderness, being forty days tempted of the devil. And in those days he did eat nothing; and when they were ended, he afterward hungered. And the devil said to him, If thou be the Son of God, command this stone that it be made bread. And Jesus answered him, saying, It is written, That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of God." (Luke 4.)
Here then is something for us to ponder. The perfect Man, the true Israel, in the wilderness, surrounded by the wild beasts, fasting for forty days, in the presence of the great adversary of God, of man, of Israel. There was not a single feature in the scene to speak for God. It was not with the second Adam as it was with the first; He was not surrounded with all the delights of Eden, but with all the dreariness and desolation of a desert, there in loneliness and hunger — but there for God!
Yes; blessed be His Name, and there for man; there to show man how to meet the enemy in all his varied temptations; there to show man how to live. We must not suppose, for a moment, that our adorable Lord met the adversary as God over all; true, He was God, but if it were only as such that He stood in the conflict, it could not afford any example for us. Besides, it would be needless to tell us that God was able to vanquish and put to flight a creature which His own hand had formed. But to see One who was, in every respect, a man, and in all the circumstances of humanity, sin excepted; to see Him there in weakness, in hunger, standing amid the consequences of man's fall, and to find Him triumphing completely over the terrible foe; it is this which is so full of comfort, consolation, strength and encouragement for us.
And how did He triumph? This is the grand and all-important question for us, a question demanding the most profound attention of every member of the church of God, a question the magnitude and importance of which it would be utterly impossible to overstate. How then did the Man Christ Jesus vanquish Satan in the wilderness? Simply by the word of God. He overcame not as the Almighty God, but as the humble, dependent, self-emptied, and obedient Man. We have before us the magnificent spectacle of a man, standing in the presence of the devil, and utterly confounding him with no other weapon whatsoever save the word of God. It was not by the display of divine power, for that could be no model for us; it was simply with the word of God in His heart and in His mouth, that the second Man confounded the terrible enemy of God and man.
And let us carefully note that our blessed Lord does not reason with Satan. He does not appeal to any facts connected with Himself — facts with which the enemy was well acquainted. He does not say, "I know I am the Son of God; the opened heavens, the descending Spirit, the Father's voice have all borne witness to the fact of my being the Son of God." No; this would not do; it would not and could not be an example for us. The one special point for us to seize and learn from is that our Great Exemplar, when meeting all the temptations of the enemy, used only the weapon which we have in our possession, namely, the simple, precious, written, word of God.
We say, "all the temptations," because in all the three instances our Lord's unvarying reply is, "It is written." He does not say, "I know" — "I think" — I feel" — "I believe" this, that or the other; He simply appeals to the written word of God — the book of Deuteronomy in particular, that very book which infidels have dared to insult, but which is pre-eminently the book for every obedient man, in the face of total, universal, hopeless wreck and ruin.
This is of unspeakable moment for us, beloved reader. It is as though our Lord Christ had said to the adversary, "Whether I am the Son of God or not, is not now the question, but how man is to live, and the answer to this question is only to be found in holy scripture; and it is to be found there as clear as a sunbeam, quite irrespective of all questions respecting me. Whoever I am, the scripture is the same, "Man doth not live by bread only,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s out of the mouth of the Lord."
Here we have the only true, the only safe, the only happy attitude for man, namely, hanging in earnest dependence upon "every word that proceeds out of the mouth of the Lord." Blessed attitude! we may well say; there is nothing like it in all this world. It brings the soul into direct, living, personal contact with the Lord Himself, by means of His word. It makes the word so absolutely essential to us, in everything; we cannot do without it. As the natural life is sustained by bread, so the spiritual life is sustained by the word of God. It is not merely going to the Bible to find doctrines there, or to have our opinions or views confirmed; it is very much more than this; it is going to the Bible for the staple commodity of life — the life of the new man; it is going there for food, for light, for guidance, for comfort, for authority, for strength, for all, in short, that the soul can possibly need, from first to last.
And let us specially note the force and value of the expression, "every word." How fully it shows that we cannot afford to dispense with a single word that has proceeded out of the mouth of the Lord. We want it all. We cannot tell the moment in which some exigency may present itself for which scripture has already provided. We may not; perhaps, have specially noticed the scripture before, but when the difficulty arises, if we are in a right condition of soul, the true posture of heart, the Spirit of God will furnish us with the needed scripture; and we shall see a force, beauty, depth and moral adaptation in the passage which we had never seen before. Scripture is a divine, and therefore exhaustless treasury in which God has made ample provision for all the need of His people, and for each believer in particular, right on to the end. Hence we should study it all, ponder it, dig deeply into it, and have it treasured up in our hearts, ready for use when the demand arises.
There is not a single crisis occurring in the entire history of the church of God, not a single difficulty in the entire path of any individual believer, from beginning to end, which has not been perfectly provided for in the Bible. We have all we want in that blessed volume; and hence we should be ever seeking to make ourselves more and more acquainted with what that volume contains so as to be "thoroughly furnished" for whatever may arise, whether it be a temptation of the devil, an allurement of the world, or a lust of the flesh; or, on the other hand, for equipment for that path of good works which God has afore prepared that we should walk in it.
And we should further give special attention to the expression, "Out of the mouth of the Lord." This is unspeakably precious. It brings the Lord so very near to us, and gives us such a sense of the reality of feeding upon His every word, yea, of hanging upon it as something absolutely essential and indispensable. It sets forth the blessed fact that our souls can no more exist without the word than our bodies could without food. In a word, we are taught by this passage that man's true position, his proper attitude, his only place of strength, safety, rest and blessing is to be found in habitual dependence upon the word of God.
This is the life of faith which we are called to live, — the life of dependence — the life of obedience — the life that Jesus lived perfectly. That blessed One would not move a step, utter a word, or do a single thing save by the authority of the word of God. No doubt He could have turned the stone into bread, but He had no command from God to do that; and inasmuch as He had no command, He had no motive for action. Hence Satan's temptations were perfectly powerless. He could do nothing with a Man who would only act on the authority of the word of God.
And we may also note, with very much interest and profit, that our blessed Lord does not quote scripture for the purpose of silencing the adversary; but simply as authority for His position and conduct. Here is where we are so apt to fail; we do not sufficiently use the precious word of God in this way; we quote it, at times, more for victory over the enemy than for power and authority for our own souls. Thus it loses its power in our hearts. We want to use the word as a hungry man uses bread, or as a mariner uses his chart and his compass; it is that on which we live and by which we move and act, and think and speak. Such it really is, and the more fully we prove it to be all this to us, the more we shall know of its infinite preciousness. Who is it that knows most of the real value of bread? Is it a chemist? No; but a hungry man. A chemist may analyse it and discuss its component parts, but a hungry man proves its worth. Who knows most of the real value of a chart; is it the teacher of navigation? No; but the mariner as he sails along an unknown and dangerous coast.
These are but feeble figures to illustrate what the word of God is to the true Christian. He cannot do without it. It is absolutely indispensable, in every relationship of life, and in every sphere of action. His hidden life is fed and sustained by it; his practical life is guided by it; in all the scenes and circumstances of his personal and domestic history, in the privacy of his closet, in the bosom of his family, in the management of his affairs, he is cast upon the word of God for guidance and counsel.
And it never fails those who simply cleave to it, and confide in it. We may trust scripture without a single shade of misgiving. Go to it when we will, we shall always find what we want. Are we in sorrow? Is the poor heart bereaved, crushed and desolate? What can soothe and comfort us like the balmy words which the Holy Spirit has penned for us? One sentence of holy scripture can do more, in the way of comfort and consolation, than all the letters of condolence that ever were penned by human hand. Are we discouraged, faint-hearted and cast down? The word of God meets us with its bright and soul-stirring assurances. Are we pressed by pinching poverty? The Holy Ghost brings home to our hearts some golden promise from the page of inspiration, recalling us to Him who is "The Possessor of heaven and earth," and who, in His infinite grace, has pledged Himself to "supply all our need according to his riches in glory, by Christ Jesus." Are we perplexed and harassed by the conflicting opinions of men, by the dogmas of conflicting schools of divinity, by religious and theological difficulties? A few sentences of holy scripture will pour in a flood of divine light upon the heart and conscience, and set us at perfect rest, answering every question, solving every difficulty, removing every doubt, chasing away every cloud, giving us to know the mind of God, putting an end to conflicting opinions by the one divinely competent authority.
What a boon, therefore, is holy scripture! What a precious treasure we possess in the word of God! How we should bless His holy Name for having given it to us! Yes; and bless Him, too, for everything that tends to make us more fully acquainted with the depth, fullness and power of those words of our chapter, "Man shall not live by bread only,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s out of the mouth of the Lord doth man live."
Truly precious are these words to the heart of the believer! And hardly less so are those that follow, in which the beloved and revered lawgiver refers with touching sweetness to Jehovah's tender care throughout the whole of Israel's desert wanderings. "Thy raiment," he says, "waxed not old upon thee, neither did thy foot swell, these forty years."
What marvellous grace shines out in these words! Only think, reader, of Jehovah looking after His people, in such a manner, to see that their garments should not wax old or their foot swell! He not only fed them, but clothed them and cared for them in every way. He even stooped to look after their feet, that the sand of the desert might not injure them! Thus, for forty years, did He watch over them, with all the exquisite tenderness of a father's heart. What will not love undertake to do for its object? Jehovah had set His love upon His people, and this one blessed fact secured everything for them, had they only understood it. There was not a single thing within the range of Israel's necessities, from Egypt to Canaan, which was not secured to them and included in the fact that Jehovah had undertaken to do for them. With infinite love and almighty power on their side, what could be lacking?
But then, as we know, love clothes itself in various forms. It has something more to do than to provide food and raiment for its objects. It has not only to take account of their physical but also of their moral and spiritual wants. Of this the lawgiver does not fail to remind the people. "Thou shalt also consider," he says, "in thine heart" — the only true and effective way to consider — "that, as a man chastens his son, so the Lord thy God chastens thee."
Now, we do not like chastening; it is not joyous, but grievous. It is all very well for a son to receive food and raiment from a father's hand, and to have all his comforts provided by a father's thoughtful love; but he does not like to see him taking down the rod. And yet that dreaded rod may be the very best thing for the son; it may do for him what no material benefits or earthly blessings could effect; it may correct some bad habit, or deliver him from some wrong tendency, or save him from some evil influence, and thus prove a great moral and spiritual blessing for which he shall have to be for ever thankful. The grand point for the son is to see a father's love and care in the discipline and chastening, just as distinctly as in the various material benefits which strew his path from day to day.
Here is precisely where we so signally fail, in reference to the disciplinary dealings of our Father. We rejoice in His benefits and blessings; we are filled with praise and thankfulness as we receive, day by day, from His liberal hand, the rich supply of all our need; we delight to dwell upon His marvellous interposition on our behalf, in times of pressure and difficulty; it is a most precious exercise to look back over the path by which His good hand has led us, and mark those "Eben-ezers" which tell of gracious help supplied all along the road.
All this is very good, and very right, and very precious; but then there is great danger of our resting in the mercies, the blessings and the benefits which flow, in such rich profusion, from our Father's loving heart and liberal hand. We are apt to rest in these things, and say with the psalmist, "In my prosperity I said, I shall never be moved. Lord, by thy favour thou hast made my mountain to stand strong." True it is, "by thy favour," but yet we are prone to be occupied with our mountain, and our prosperity; we allow these things to come in between our hearts and the Lord, and thus they become a snare to us. Hence the need of chastening. Our Father, in His faithful love and care is watching over us; He sees the danger and He sends trial, in one shape or another. Perhaps a telegram comes announcing the death of a beloved child, or the crash of a bank involving the loss of our earthly all. Or, it may be, we are laid on a bed of pain and sickness, or called to watch by the sick bed of a beloved relative.
In a word, we are called to wade through deep waters which seem to our poor feeble coward hearts absolutely overwhelming. The enemy suggests the question, "Is this love?" Faith replies, without hesitation and without reserve, "Yes!" it is all love, perfect love; the death of the child, the loss of the property, the long, heavy, painful illness, all the sorrow, all the pressure, all the exercise, the deep waters and dark shadows — all, all is love — perfect love and unerring wisdom. I feel assured of it, even now; I do not wait to know it by-and-by, when I shall look back on the path from amid the full light of the glory; I know it now, and delight to own it to the praise of the infinite grace which has taken me up from the depth of my ruin, and charged itself with all that concerns me, and which deigns to occupy itself with my very failures, follies and sins, in order to deliver me from them, to make me a partaker of divine holiness, and conform me to the image of that blessed One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Christian reader, this is the way to answer Satan, and to hush the dark reasonings which may spring up in our hearts. We must always justify God. We must look at all His disciplinary dealings in the light of His love. "Thou, shalt also consider in thine heart, that, as a man chastens his son, so the Lord thy God chastens thee." Most surely we should not like to be without the blessed pledge and proof of sonship. "My son, despise not thou the chastening of the Lord, nor faint when thou art rebuked of him; for whom the Lord loves he chastens, and scourges every son whom he receives. If ye endure chastening, God deals with you as with sons; for what son is he whom the father chastens not?" But if ye be without chastisement, whereof all are partakers, then are ye bastards, and not sons. Furthermore, we have had fathers of our flesh, which corrected us, and we gave them reverence; shall we not much rather be in subjection to the Father of spirits, and live? For they verily for a few days chastened us after their own pleasure; but he for our profit, that we might be partakers of his holiness. Now no chastening for the present seems to be joyous, but grievous; nevertheless, afterward it yields the peaceable fruit of righteousness to them which are exercised thereby. Wherefore lift up the hands which hang down, and the feeble knees; and make straight paths for your feet, lest that which is lame be turned out of the way; but let it rather be healed." Heb. 12:5-13.
It is, at once, interesting and profitable to mark the way in which Moses presses upon the congregation the varied motives of obedience arising from the past, the present and the future. Everything is brought to bear upon them to quicken and deepen their sense of Jehovah's claims upon them. They were to "remember" the past; they were to "consider" the present; and they were to anticipate the future; and all this was to act on their hearts, and lead them forth in holy obedience to that blessed and gracious One who had done, who was doing, and who would do such great things for them.
The thoughtful reader can hardly fail to observe in this constant presentation of moral motives a marked feature of this lovely book of Deuteronomy, and a striking proof that it is no mere attempt at a repetition of what we have in Exodus; but, on the contrary, that our book has a province, a range, a scope and design entirely its own. To speak of mere repetition is absurd; to speak of contradiction is impious.
"Therefore thou shalt keep the commandments of the Lord thy God, to walk in his ways, and to fear him." The word "therefore" had a retrospective and prospective force. It was designed to lead the heart back over the past dealings of Jehovah, and forward into the future. They were to think of the marvellous history of those forty years in the desert, the teaching, the humbling, the proving, the watchful care, the gracious ministry, the full supply of all their need, the manna from heaven, the stream from the smitten rock, the care of their garments and of their very feet, the wholesome discipline for their moral good. What powerful moral motives were here for Israel's obedience!.
But this was not all, they were to look forward into the future; they were to anticipate the bright prospect which lay before them; they were to find in the future, as well as in the past and the present, the solid basis of Jehovah's claims upon their reverent and whole-hearted obedience.
"For the Lord thy God brings thee into a good land, a land of brooks of water, of fountains and depths that spring out of valleys and hills; a land of wheat, and barley, and vines, and fig-trees, and pomegranates, a land of oil olive, and honey; a land wherein thou shalt eat bread without scarceness, thou shalt not lack anything in it; a land whose stones are iron, and out of whose hills thou mayest dig brass."
How fair was the prospect! How bright the vision! How marked the contrast to the Egypt behind them and the wilderness through which they had passed! The Lord's land lay before them in all its beauty and verdure, its vine-clad hills and honeyed plains, its gushing fountains and flowing streams. How refreshing the thought of the vine, the fig-tree, the pomegranate and the olive! How different from the leeks, onions and garlic of Egypt! Yes, all so different! It was the Lord's own land: this was enough. It produced and contained all they could possibly want. Above its surface, rich profusion; below, untold wealth, exhaustless treasure.
What a prospect! How the faithful Israelite would long to enter upon it! — long to exchange the sand of the desert for that bright inheritance! True, the desert had its deep and blessed experiences, its holy lessons, its precious memories. There they had known Jehovah in a way they could not know Him even in Canaan; all this was quite true, and we can fully understand it; but still the wilderness was not Canaan, and every true Israelite would long to set his foot on the land of promise, and truly we may say that Moses presents the land, in the passage just quoted, in a way eminently calculated to attract the heart. "A land," he says, "wherein thou shalt eat bread without scarceness, thou shalt not lack anything in it." What more could be said? Here was the grand fact, in reference to that good land into which the hand of covenant love was about to introduce them. All their wants would be divinely met. Hunger and thirst should never be known there. Health and plenty, joy and gladness, peace and blessing were to be the assured portion of the Israel of God, in that fair inheritance upon which they were about to enter. Every enemy was to be subdued; every obstacle swept away; "the pleasant land," was to pour forth its treasures for their use; watered continually by heaven's rain, and warmed by its sunlight, it was to bring forth, in rich abundance, all that the heart could desire.
What a land! what an inheritance! What a home! Of course, we are looking at it now from a divine standpoint; looking at it according to what it was in the mind of God, and what it shall, most assuredly, be to Israel, during that bright millennial age which lies before them. We should have but a very poor idea indeed of the Lord's land, were we to think of it merely as possessed by Israel in the past, even in the very brightest days of its history, as it appeared amid the splendours of Solomon's reign. We must look onward to "the times of the restitution of all things," in order to have anything like a true idea of what the land of Canaan will yet be to the Israel of God.
Now Moses speaks of the land according to the divine idea of it. He presents it as given by God, and not as possessed by Israel. This makes all the difference. According to his charming description, there was neither enemy nor evil occurrent: nothing but fruitfulness and blessing from end to end. That is what it would have been, that is what it should have been, and that is what it shall be, by-and-by, to the seed of Abraham, in pursuance of the covenant made with their fathers — the new, the everlasting covenant, founded on the sovereign grace of God, and ratified by the blood of the cross. No power of earth or hell can hinder the purpose or the promise of God. "Has he said, and shall he not do it?" God will make good to the letter every word, spite of all the enemy's opposition, and the lamentable failure of His people. Though Abraham's seed have utterly failed under law and under government, yet Abraham's God will give grace and glory, for His gifts and calling are without repentance.
Moses fully understood all this. He knew how it would turn out with those who stood before him, and with their children after them, for many generations; and he looked forward into that bright future in which a covenant God would display, in the view of all created intelligences, the triumphs of His grace in His dealings with the seed of Abraham His friend.
Meanwhile, however, the faithful servant of Jehovah, true to the object before his mind, in all those marvellous discourses in the opening of our book, proceeds to unfold to the congregation the truth as to their mode of acting in the good land on which they were about to plant their foot. As he had spoken of the past and of the present, so would he make use of the future; he would turn all to account in his holy effort to urge upon the people their obvious, bounden duty to that blessed One who had so graciously and tenderly cared for them all their journey through, and who was about to bring them in and plant them in the mountain of His inheritance. Let us hearken to His touching and powerful exhortations.
"When thou hast eaten and art full, then thou shalt bless the Lord thy God for the good land which he has given thee." How simple! How lovely! How morally suitable! Filled with the fruit of Jehovah's goodness, they were to bless and praise His holy Name. He delights to surround Himself with hearts filled to overflowing with the sweet sense of His goodness, and pouring forth songs of praise and thanksgiving. He inhabits the praises of His people. He says, "Whoso offers praise glorifies me." The feeblest note of praise from a grateful heart ascends as fragrant incense to the throne and to the heart of God.
Let us remember this, beloved reader. It is as true for us, most surely, as it was for Israel, that praise is comely. Our grand primary business is to praise the Lord. Our every breath should be a hallelujah. It is to this blessed and most sacred exercise the Holy Ghost exhorts us, in manifold places. "By him therefore let us offer the sacrifice of praise to God continually, that is the fruit of our lips, giving thanks to his name." We should ever remember that nothing so gratifies the heart and glorifies the Name of our God as a thankful worshipping spirit on the part of His people. It is well to do good and communicate. God is well pleased with such sacrifices. It is our high privilege, while we have opportunity, to do good to all men, and especially to them who are of the household of faith. We are called to be channels of blessing between the loving heart of our Father and every form of human need that comes before us in our daily path. All this is most blessedly true; but we must never forget that the very highest place is assigned to praise. It is this which shall employ our ransomed powers, throughout the golden ages of eternity, when the sacrifices of active benevolence shall no longer be needed.
But the faithful lawgiver knew but too well the sad proneness of the human heart to forget all this, to lose sight of the gracious Giver, and rest in His gifts. Hence he addresses the following admonitory words to the congregation — wholesome words, truly, for them and for us. May we bend our ears and our hearts to them, in holy reverence and teachableness of spirit!
"Beware that thou forget not the Lord thy God, in not keeping his commandments, and his judgements, and his statutes, which I command thee this day. Lest when thou hast eaten and art full, and hast built goodly houses, and dwelt therein; and when thy herds and thy flocks multiply, and thy silver and thy gold is multiplied, and all that thou hast is multiplied; then thine heart be lifted up, and thou forget the Lord thy God, which brought thee forth out of the land of Egypt, from the house of bondage, who led thee through that great and terrible wilderness, wherein were fiery serpents, and scorpions, and drought; where there was no water; who brought thee forth water out of the rock of flint, who fed thee in the wilderness with manna, which thy fathers knew not, that he might humble thee, and that he might prove thee, to do thee good at thy latter end: and thou say in thine heart, My power, and the might of mine hand has gotten me this wealth. But thou shalt remember the Lord thy God; for it is he that gives thee power to get wealth, that he may establish his covenant, which he sware to thy fathers, as it is this day. And it shall be, if thou do at all forget the Lord thy God, and walk after other gods, and serve them, and worship them, I testify against you this day, that ye shall utterly perish. As the nations which the Lord destroys before your face, so shall ye perish, because ye would not be obedient to the voice of the Lord your God." (Vers. 11-20.)
Here is something for us to ponder deeply. It has, most assuredly, a voice for us, as it had for Israel. We may perhaps feel disposed to marvel at the frequent reiteration of the note of warning and admonition, the constant appeals to the heart and conscience of the people as to their bounden duty to obey, in all things, the word of God; the recurrence again and again to those grand soul-stirring facts connected with their deliverance out of Egypt, and their journey through the wilderness.
But wherefore should we marvel? In the first place, do we not deeply feel and fully admit our own urgent need of warning, admonition and exhortation? Do we not need line upon line, precept upon precept, and that continually? Are we not prone to forget the Lord our God, to rest in His gifts instead of Himself? Alas! alas! we cannot deny it. We rest in the stream, instead of getting up to the Fountain. We turn the very mercies, blessings and benefits which strew our path, in rich profusion, into an occasion of self-complacency and gratulation, instead of finding in them the blessed ground of continual praise and thanksgiving.
And then, as to those great facts of which Moses so continually reminds the people, could they ever lose their moral weight, power or preciousness? Surely not. Israel might forget and fail to appreciate those facts, but the facts remained the same. The terrible plagues of Egypt, the night of the passover, their deliverance from the land of darkness, bondage and degradation, their marvellous passage through the Red Sea, the descent of that mysterious food from heaven, morning by morning, the refreshing stream gushing forth from the flinty rock: how could such facts as these ever lose their power over a heart possessing a spark of genuine love to God? And why should we wonder to find Moses, again and again, appealing to them and using them as a most powerful lever wherewith to move the hearts of the people? Moses felt the mighty moral influence of these things himself, and he would fain lead others to feel it also. To him they were precious beyond expression, and he longed to make his brethren feel their preciousness as well as himself. It was his one object to set before them, in every possible way the powerful claims of Jehovah upon their hearty and unreserved obedience.
This, reader, will account for what might, to an unspiritual, unintelligent, cursory reader, seem the too frequent recurrence to the scenes of the past, in those wonderful discourses of Moses. We are reminded, as we read them, of the lovely words of Peter, in his second epistle: "Wherefore I will not be negligent to put you always in remembrance of these things, though ye know them, and be established in the present truth. Yea, I think it meet, as long as I am in this tabernacle, to stir you up by putting you in remembrance; knowing that shortly I must put off this my tabernacle, even as our Lord Jesus Christ has showed me. Moreover I will endeavour that ye may be able after my decease to have these things always in remembrance." (2 Peter 1:12-15.)
How striking the unity of spirit and purpose in these two beloved and venerable servants of God! Both the one and the other felt the tendency of the poor human heart to forget the things of God, of heaven and of eternity; and they felt the supreme importance and infinite value of the things of which they spoke. Hence their earnest desire to keep them continually before the hearts and abidingly in the remembrance of the Lord's beloved people. Unbelieving, restless nature might say to Moses or to Peter, "Have you nothing new to tell us? Why are you perpetually dwelling on the same old themes? We know all you have got to say; we have heard it again and again. Why not strike out into some new field of thought? Would it not be well to try and keep abreast of the science of the day? If we keep perpetually moping over those antiquated themes, we shall be left stranded on the bank while the stream of civilization rushes on. Pray give us something new."
Thus might the poor unbelieving mind, the worldly heart reason; but faith knows the answer to all such miserable suggestions. We can well believe that both Moses and Peter would have made short work with all such reasonings. And so should we. We know whence they emanate, whither they tend, and what they are worth; and we should have, if not on our lips, at least deep down in our hearts a ready answer — an answer perfectly satisfactory to us, however contemptible it may seem to the men of this world. Could a true Israelite ever tire of hearing of what the Lord had done for him, in Egypt, in the Red Sea, and in the wilderness? Never! Such themes would be ever fresh, ever welcome to his heart. And just so with the Christian; can he ever tire of the cross and all the grand and glorious realities that cluster round it? Can he ever tire of Christ, His peerless glories and unsearchable riches — His Person, His work, His offices? Never! No, never, throughout the bright ages of eternity. Does he crave anything new? Can science improve upon Christ? Can human learning add ought to the great mystery of godliness which has for its foundation God manifest in the flesh, and for its topstone a Man glorified in heaven? Can we ever get beyond this? No, reader, we could not if we would, and we would not if we could.
And even were we, for a moment, to take a lower range, and look at the works of God in creation; do we ever tire of the sun? He is not new; he has been pouring his beams upon this world for well-nigh six thousand years, and yet those beams are as fresh and as welcome today as they were when first created. Do we ever tire of the sea? It is not new; its tide has been ebbing and flowing for nearly six thousand years, but its waves are as fresh and as welcome on our shores as ever. True, the sun is often too dazzling to man's feeble vision, and the sea often swallows up, in a moment, man's boasted works; but yet the sun and the sea never lose their power, their freshness, their charm. Do we ever tire of the dew-drops that fall in refreshing virtue upon our gardens and fields? Do we ever tire of the perfume that emanates from our hedgerows? Do we ever tire of the notes of the nightingale and the thrush?
And what are all these when compared with the glories which cluster round the Person and the cross of Christ? What are they when put in contrast with the grand realities of that eternity which is before us?
Reader, let us beware how we listen to such suggestions, whether they come from without or spring from the depths of our own evil hearts, lest we be found, like Israel after the flesh, loathing the heavenly manna and despising the pleasant land; or like Demas who forsook the blessed apostle, having loved this present age; or like those of whom we read in the sixth of John, who, offended by our Lord's close and pointed teaching, "went back, and walked no more with him." May the Lord keep our hearts true to Himself, and fresh and fervent in His blessed cause, till He come!
Deuteronomy 9
"Hear, O Israel; thou art to pass over Jordan this day, to go in to possess nations greater and mightier than thyself, cities great and fenced up to heaven; a people great and tall, the children of the Anakims, whom thou knowest, and of whom thou hast heard say, Who can stand before the children of Anak!" (Vers. 1, 2.)
This chapter opens with the same grand Deuteronomic sentence, "Hear, O Israel." This, we may say, is the key note of this most blessed book, and especially of those opening discourses which have been engaging our attention. But the chapter which now lies open before us presents subjects of immense weight and importance. In the first place, the lawgiver sets before the congregation, in terms of deep solemnity, that which lay before them, in their entrance upon the land. He does not hide from them the fact that there were serious difficulties and formidable enemies to be encountered. This he does, we need hardly say, not to discourage their hearts, but that they might be forewarned, forearmed, and prepared. What that preparation was we shall see presently; but the faithful servant of God felt the rightness, yea, the urgent need of putting the true state of the case before his brethren.
There are two ways of looking at difficulties; we may look at them from a human stand-point, or from a divine one; we may look at them in a spirit of unbelief, or we may look at them in the calmness and quietness of confidence in the living God. We have an instance of the former, in the report of the unbelieving spies, in Numbers 13; We have an instance of the latter, in the opening of our present chapter.
It is not the province nor the path of faith to deny that there are difficulties to be encountered by the people of God; it would be the height of folly to do so, inasmuch as there are difficulties, and it would be but fool-hardiness, fanaticism, or fleshly enthusiasm to deny it. It is always well for people to know what they are about, and not to rush blindly into a path for which they are not prepared. An unbelieving sluggard may say, "There is a lion in the way;" a blind enthusiast may say, "There is no such thing;" the true man of faith will say, "Though there were a thousand lions in the way, God can soon dispose of them”.
But, as a great practical principle of general application, it is very important for all the Lord's people to consider deeply and calmly what they are about, ere they enter upon any particular path of service or line of action. If this were more attended to, we should not witness so many moral and spiritual wrecks around us. What mean those most solemn, searching and testing words addressed by our blessed Lord to the multitudes that thronged around Him, in Luke 14? "He turned and said to them, If any man come to me, and hate not his father, and mother, his wife, and children, and brethren and sisters, yea, and his own life also, he cannot be my disciple. And whosoever doth not bear his cross, and come after me, cannot be my disciple. For which of you, intending to build a tower, sits not down first, and counts the cost, whether he have sufficient to finish it? Lest haply, after he has laid the foundation, and is not able to finish it, all that behold it begin to mock him, saying, This man began to build, and was not able to finish" (Vers. 26-30.)
These are solemn and seasonable words for the heart. How many unfinished buildings meet our view, as we look forth over the wide field of Christian profession, giving sad occasion to the beholders for mockery! How many set out upon a path of discipleship, under some sudden impulse, or under the pressure of mere human influence, without a proper understanding or a due consideration of all that is involved; and then when difficulties arise, when trials come, when the path is found to be narrow, rough, lonely, unpopular, they give it up, thus proving that they had never really counted the cost, never taken the path in communion with God, never understood what they were doing.
Now, such cases are very sorrowful; they bring great reproach on the cause of Christ, give occasion to the adversary to blaspheme, and greatly dishearten those who care for the glory of God and the good of souls. Better far not to take the ground at all than, having taken it, to abandon it in dark unbelief and worldly-mindedness.
Hence, therefore, we can perceive the wisdom and faithfulness of the opening words of our chapter. Moses tells the people plainly what was before them; not, surely, to discourage them, but to preserve them from self-confidence which is sure to give way in the moment of trial; and to cast them upon the living God who never fails a trusting heart.
“Understand therefore this day, that the Lord thy God is he which goes over before thee; as a consuming fire he shall destroy them, and he shall bring them down before thy face: so shalt thou drive them out, and destroy them quickly, as the Lord has said to thee."
Here, then, is the divine answer to all difficulties, be they ever so formidable. What were mighty nations, great cities, fenced walls, in the presence of Jehovah? Simply as chaff before the whirlwind. "If God be for us, who can be against us?" The very things which scare and stumble the coward heart afford an occasion for the display of God's power, and the magnificent triumphs of faith. Faith says, "Grant me but this, that God is before me and with me, and I can go anywhere." Thus the only thing in all this world that really glorifies God is the faith that can trust Him and use Him and praise Him; and inasmuch as faith is the only thing that glorifies God, so is it the only thing that gives man his proper place, even the place of complete dependence upon God, and this ensures victory and inspires praise — unceasing praise.
But we must never forget that there is moral danger in the very moment of victory — danger arising out of what we are in ourselves. There is the danger of self-gratulation — a terrible snare to us poor mortals. In the hour of conflict, we feel our weakness, our nothingness, our need. This is good and morally safe. It is well to be brought down to the very bottom of self and all that pertains to it, for there we find God, in all the fullness and blessedness of what He is, and this is sure and certain victory and consequent praise.
But our treacherous and deceitful hearts are prone to forget whence the strength and victory come. Hence the moral force, value and seasonableness of the following admonitory words addressed by the faithful minister of God to the hearts and consciences of his brethren, "Speak not thou in thine heart" — here is where the mischief always begins — "after that the Lord has cast them out from before thee, saying, For my righteousness the Lord has brought me in to possess this land; but for the wickedness of those nations the Lord doth drive them out from before thee."
Alas! what materials there are in us! What ignorance of our own hearts! What a shallow sense of the real character of our ways! How terrible to think that we are capable of saying in our hearts such words as, "For my righteousness!" Yes, reader we are verily capable of such egregious folly; for as Israel was capable of it so are we, inasmuch as we are made of the very same material; and that they were capable of it is evident from the fact of their being warned against it; for, most assuredly, the Spirit of God does not warn against phantom dangers or imaginary temptations. We are verily capable of turning the actings of God on our behalf into an occasion of self-complacency; instead of seeing in those gracious actings a ground for heartfelt praise to God, we use them as a ground for self exaltation.
Hence, therefore, we would do well to ponder the words of faithful admonition addressed by Moses to the hearts and consciences of the people; they furnish a very wholesome antidote for the self-righteousness so natural to us as well as to Israel. "Not for thy righteousness, or for the uprightness of thine heart, dost thou go to possess their land; but for the wickedness of those nations the Lord thy God doth drive them out from before thee, and that he may perform the word which the Lord sware to thy fathers, Abraham, Isaac, and Jacob. Understand therefore, that the Lord gives thee not this good land to possess it for thy righteousness; for thou art a stiff-necked people. Remember, and forget not, how thou provokedst the Lord thy God to wrath in the wilderness; from the day that thou didst depart out of the land of Egypt, until ye came to this place, ye have been rebellious against the Lord." (Vers. 5-7.)
This paragraph sets forth two great principles which, if fully laid hold of, must put the heart into a right moral attitude. In the first place, the people were reminded that their possession of the land of Canaan was simply in pursuance of God's promise to their fathers. This was placing the matter on the most solid basis — a basis which nothing could ever disturb.
As to the seven nations who were to be dispossessed, it was on the ground of their wickedness that God, in the exercise of His righteous government, was about to drive them out. Every landlord has a perfect right to eject bad tenants; and the nations of Canaan had not only failed to pay their rent, as we say, but they had injured and defiled the property to such an extent that God could no longer endure them; and therefore He was going to drive them out, irrespective altogether of the incoming tenants. Whoever was going to get possession of the property, these dreadful tenants must be evicted. The iniquity of the Amorites had reached its highest point, and nothing remained but that judgement should take its course. Men might argue and reason as to the moral fitness and consistency of a benevolent Being unroofing the houses of thousands of families and putting the occupants to the sword; but we may depend upon it the government of God will make very short work with all such arguments. God, blessed for ever be His holy Name, knows how to manage His own affairs, and that too without asking man's opinion. He had borne with the wickedness of the seven nations to such a degree that it had become absolutely insufferable; the very land itself could not bear it. Any further exercise of forbearance would have been a sanction of the most terrible abominations; and this of course was a moral impossibility. The glory of God absolutely demanded the expulsion of the Canaanites.
Yes; and we may add, the glory of God demanded the introduction of the seed of Abraham into possession of the property to hold, as tenants for ever under the Lord God Almighty, the most High God, Possessor of heaven and earth. Thus the matter stood for Israel, had they but seen it. Their possession of the land of promise and the maintenance of the divine glory were so bound up together that one could not be touched without touching the other. God had promised to give the land of Canaan to the seed of Abraham, as an everlasting possession. Had He not a right to do so? Will infidels question God's right to do as He will with His own? Will they refuse to the Creator and Governor of the universe a right which they claim for themselves? The land was Jehovah's, and He gave it to Abraham His friend for ever; and although this was true, yet were not the Canaanites disturbed in their tenure of the property until their wickedness had become positively unbearable.
Thus we see that in the matter both of the outgoing and incoming tenants, the glory of God was involved. That glory demanded that the Canaanites should be expelled because of their ways; and that glory demanded that Israel should be put in possession because of the promise to Abraham, Isaac and Jacob.
But, in the second place, Israel had no ground for self-complacency, as Moses most plainly and faithfully instructs them. He rehearses in their ears, in the most touching and impressive manner, all the leading scenes of their history from Horeb to Kadesh-barnea; he refers to the golden calf, to the broken tables of the covenant, to Taberah and Massah, and Kibroth-hattaavah; and sums all up, at verse 24, with these pungent humbling words, "Ye have been rebellious against the Lord from the day that I knew you."
This was plain dealing with heart and conscience. The solemn review of their whole career was eminently calculated to correct all false notions about themselves; every scene and circumstance in their entire history, if viewed from a proper standpoint, only brought to light the humbling fact of what they were, and how near they had been, again and again, to utter destruction. With what stunning force must the following words have fallen upon their ears! "And the Lord said to me, Arise, get thee down quickly from hence, for thy people which thou hast brought forth out of Egypt have corrupted themselves; they are quickly turned aside out of the way which I commanded them; they have made them a molten image. Furthermore, the Lord spake to me, saying, I have seen this people, and behold, it is a stiff-necked people; let me alone, that I may destroy them, and blot out their name from under heaven; and I will make of thee a nation mightier and greater than they." (Vers. 12-14.)
How withering was all this to their natural vanity, pride and self-righteousness! How should their hearts have been moved to their very deepest depths by those tremendous words, "Let me alone, that I may destroy them!" How solemn to reflect upon the fact which these words revealed — their appalling nearness to national ruin and destruction! How ignorant they had been of all that passed between Jehovah and Moses, on the top of mount Horeb! They had been on the very brink of an awful precipice. Another moment might have dashed them over. The intercession of Moses had saved them, the very man whom they had accused of taking too much upon him. Alas! how they had mistaken and misjudged him! How utterly astray they had been in all their thoughts! Why the very man whom they had accused of self-seeking and desiring to make himself altogether a prince over them, had actually refused a divinely given opportunity of becoming the head of a greater and mightier nation than they! Yes, and this same man had earnestly requested that if they were not to be forgiven and brought into the land, his name might be blotted out of the book.
How wonderful was all this! What a turning of the tables upon them! How exceedingly small they must have felt, in view of all these wonderful facts! Surely as they reviewed all these things, they might well see the utter folly of the words, "For my righteousness the Lord has brought me in to possess this land." How could the makers of a molten image use such language! Ought they not rather to see and feel and own themselves to be no better than the nations that were about to be driven out from before them? For what had made them to differ? The sovereign mercy and electing love of their covenant God. And to what did they owe their deliverance out of Egypt, their sustenance in the wilderness, and their entrance into the land? Simply to the eternal stability of the covenant made with their fathers, "a covenant ordered in all things and sure," a covenant ratified and established by the blood of the Lamb, in virtue of which all Israel shall yet be saved and blessed in their own land.
But we must now quote for the reader the splendid paragraph with which our chapter closes — a paragraph eminently fitted to open Israel's eyes to the utter folly of all their thoughts respecting Moses, their thoughts respecting themselves, and their thoughts respecting that blessed One who had so marvellously borne with all their dark unbelief and daring rebellion.
"Thus I fell down before the Lord forty days and forty nights, as I fell down at the first; because the Lord had said he would destroy you. I prayed therefore to the Lord, and said, O Lord God, destroy not thy people and thine inheritance which thou hast redeemed through thy greatness, which thou hast brought forth out of Egypt with a mighty hand. Remember thy servants, Abraham, Isaac, and Jacob; look not to the stubbornness of this people, nor to their uncleanness, nor to their sin : lest the land whence thou broughtest us out say, Because the Lord was not able to bring them into the land which he promised them, and because he hated them, he has brought them out to slay them in the wilderness. Yet they are Thy people, and thine inheritance, which thou broughtest out by thy mighty power, and by thy stretched out arm."
What marvellous words are these to be addressed by a human being to the living God! What powerful pleadings for Israel! What self-renunciation! Moses refuses the offered dignity of being the founder of a greater and mightier nation than Israel. He only desires that Jehovah should be glorified, and Israel pardoned, blessed and brought into the promised land. He could not endure the thought of any reproach being brought upon that glorious Name so dear to his heart; neither could he bear to witness Israel's destruction. These were the two things he dreaded; and as to his own exaltation, it was just the thing about which he cared nothing at all. This beloved and honoured servant cared only for the glory of God and the salvation of His people; and as to himself, his hopes, his interests, his all, he could rest, with perfect composure, in the assurance that his individual blessing and the divine glory were bound together by a link which could never be snapped.
And oh! how grateful must all this have been to the heart of God! How refreshing to His spirit were those earnest, loving pleadings of His servant! How much more in harmony with His mind than the intercession of Elias against Israel, hundreds of years afterwards! How they remind us of the blessed ministry of our Great High Priest who ever lives to make intercession for His people, and whose active intervention on our behalf never ceases for a single moment!
And then how very touching and beautiful to mark the way in which Moses insists upon the fact that the people were Jehovah's inheritance, and that He had brought them up out of Egypt. The Lord had said, "Thy people which thou hast brought forth out of Egypt." But Moses says, "They are Thy people, and thine inheritance, which Thou broughtest out." This is perfectly exquisite. Indeed this whole scene is full of profound interest.
Deuteronomy 10
"At that time the Lord said to me, Hew thee two tables of stone like to the first, and come up to me into the mount, and make thee an ark of wood: and I will write on the tables the words that were in the first tables which thou brokest, and thou shalt put them in the ark. And I made an ark of shittim wood, and hewed two tables of stone like to the first, and went up into the mount, having the two tables in mine hand. And he wrote on the tables, according to the first writing, the ten commandments, which the Lord spake to you in the mount out of the midst of the fire, in the day of the assembly: and the Lord gave them to me. And I turned myself and came down from the mount, and put the tables in the ark which I had made? and there they be, as the Lord commanded me." (Vers. 1-5.)
The beloved and revered servant of God seemed never to weary of rehearsing in the ears of the people, the interesting, momentous and significant sentences of the past. To him they were ever fresh, ever precious. His heart delighted in them. They could never lose their charm in his eyes; he found in them an exhaustless treasury for his own heart, and a mighty moral lever wherewith to move the heart of Israel.
We are constantly reminded, in these powerful and deeply affecting addresses, of the inspired apostle's words to his beloved Philippians, "To write the same things to you, to me is not grievous, but for you it is safe." The poor restless, fickle, vagrant heart might long for some new theme; but the faithful apostle found his deep and unfailing delight in unfolding and dwelling upon those precious subjects which clustered, in rich luxuriance, around the Person and the cross of his adorable Lord and Saviour Jesus Christ. He had found in Christ all he needed, for time and eternity. The glory of His Person had completely eclipsed all the glories of earth and of nature. He could say, "What things were gain to me, those I counted loss for Christ. Yea, doubtless, and I count all things but loss, for the excellency of the knowledge of Christ Jesus my Lord; for whom I have suffered the loss of all things, and do count them but dung, that I may win Christ." (Phil. 3:7-8.)
This is the language of a true Christian, of one who had found a perfectly absorbing and commanding object in Christ. What could the world offer to such an one? What could it do for him? Did he want its riches, its honours, its distinctions, its pleasures? He counted them all as dung. How was this? Because he had found Christ. He had seen an object in Him which so riveted his heart that to win Him, and know more of Him, and be found in Him was the one ruling desire of his soul. If any one had talked to Paul about something new, what would have been his answer? If any one had suggested to him the thought of getting on in the world or of seeking to make money, what would have been his reply? Simply this, "I have found my ALL in Christ; I want no more. I have found in Him 'unsearchable riches' — 'durable riches and righteousness.' In Him are hid all the treasures of wisdom and knowledge. What do I want of this world's riches, its wisdom or its learning? These things all pass away like the vapours of the morning; and even while they last, are wholly inadequate to satisfy the desires and aspirations of an immortal spirit. Christ is an eternal object, heaven's centre, the delight of the heart of God; He shall satisfy me throughout the countless ages of that bright eternity which is before me; and surely if He can satisfy me for ever, He can satisfy me now. Shall I turn to the wretched rubbish of this world, its pursuits, its pleasures, its amusements, its theatres, its concerts, its riches or its honours to supplement my portion in Christ? God forbid! All such things would be simply an intolerable nuisance to me. Christ is my all, and in all, now and for ever!"
Such, we may well believe, would have been the distinctly pronounced reply of the blessed apostle; such was the distinct reply of his whole life; and such, beloved Christian reader, should be ours also. How truly deplorable, how deeply humbling to find a Christian turning to the world for enjoyment, recreation or pastime! It simply proves that he has not found a satisfying portion in Christ. We may set it down as a fixed principle that the heart which is filled with Christ has no room for ought beside. It is not a question of the right or the wrong of things; the heart does not want them, would not have them; it has found its present and everlasting portion and rest in that blessed One that fills the heart of God, and will fill the vast universe with the beams of His glory, throughout the everlasting ages.
We have been led into the foregoing line of thought in connection with the interesting fact of Moses' unwearied rehearsal of all the grand events in Israel's marvellous history from Egypt to the borders of the promised land. To him they furnished a perpetual feast; and he not only found his own deep personal delight in dwelling upon them, but he also felt the immense importance of unfolding them before the whole congregation. To him, most surely, it was not grievous, but for them it was safe. How delightful for him, and how good and needful for them, to dwell upon the facts connected with the two sets of tables — the first set smashed to atoms, at the foot of the mountain and the second set enclosed in the ark.
What human language could possibly unfold the deep significance and moral weight of such facts as these? Those broken tables! How impressive! How pregnant with wholesome instruction for the people. How powerfully suggestive! Will any one presume to say that we have here a mere barren repetition of the facts recorded in Exodus? Certainly no one who reverently believes in the divine inspiration of the Pentateuch.
No, reader, the tenth of Deuteronomy fills a niche and does a work entirely its own. In it the lawgiver holds up to the hearts of the people past scenes and circumstances in such a way as to rivet them upon the very tablets of the soul. He allows them to hear the conversation between Jehovah and himself; he tells them what took place during those mysterious forty days upon that cloud-capped mountain. He lets them hear Jehovah's reference to the broken tables — the apt and forcible expression of the utter worthlessness of man's covenant. For why were those tables broken? Because they had shamefully failed. Those shattered fragments told the humiliating tale of their hopeless ruin on the ground of the law. All was gone. Such was the obvious meaning of the fact. It was striking, impressive, unmistakable. Like a broken pillar over a grave which tells, at a glance, that the prop and stay of the family lies mouldering beneath. There is no need of any inscription, for no human language could speak with such eloquence to the heart as that most expressive emblem. So the broken tables were calculated to convey to the heart of Israel the tremendous fact that, so far as their covenant was concerned, they were utterly ruined, hopelessly undone; they were complete bankrupts on the score of righteousness.
But then, that second set of tables, what of them? Thank God, they told a different tale altogether. They were not broken. God took care of them. "I turned myself and came down from the mount, and put the tables in the ark which I had made; and there they be, as the Lord commanded me."
Blessed fact! "There they be." Yes, covered up in that ark which spoke of Christ, that blessed One who magnified the law and made it honourable, who established every jot and tittle of it, to the glory of God and the everlasting blessing of His people. Thus, while the broken fragments of the first tables told the sad and humbling tale of Israel's utter failure and ruin, the second tables, shut up intact in the ark set forth the glorious truth that Christ is the end of the law for righteousness to every one that believes, to the Jew first, and also to the Gentile.
We do not, of course, mean to say that Israel understood the deep meaning and far-reaching application of those wonderful facts which Moses rehearsed in their ears. As a nation, they certainly did not then, though, through the sovereign mercy of God, they will, by-and-by. Individuals may, and doubtless did enter into somewhat of their significance. This is not now the question. It is for us to see and make our own of the precious truth set forth in those two sets of tables, namely, the failure of everything in the hands of man, and the eternal stability of God's covenant of grace, ratified by the blood of Christ, and to be displayed in all its glorious results, in the kingdom, by-and-by, when the Son of David shall reign from sea to sea, and from the river to the ends of the earth; when the seed of Abraham shall possess, according to the divine gift, the land of promise; and when all the nations of the earth shall rejoice under the beneficent reign of the Prince of peace.
Bright and glorious prospect for the now desolate land of Israel, and this groaning earth of ours! The King of righteousness and peace will then have it all His own way. All evil will be put down with a powerful hand. There will be no weakness in that government. No rebel tongue will be permitted to prate, in accents of insolent sedition, against the decrees and enactments thereof. No rude and senseless demagogue will be allowed to disturb the peace of the people, or to insult the majesty of the throne. Every abuse will be put down, every disturbing element will be neutralised, every stumbling-block will be removed, and every root of bitterness eradicated. The poor and the needy shall be well looked after; yea, all shall be divinely attended to; toil, sorrow, poverty and desolation shall be unknown; the wilderness and the solitary place shall be glad, and the desert shall rejoice and blossom as the rose. "Behold a king shall reign in righteousness, and princes shall rule in judgement. And a man shall be as an hiding-place from the wind, and a covert from the tempest; as rivers of water in a dry place as the shadow of a great rock in a weary land."
Reader, what glorious scenes are yet to be enacted in this poor sin-stricken, Satan-enslaved, sorrowful world of ours! How refreshing to think of them! What a relief to the heart amid all the mental misery, the moral degradation, and physical wretchedness exhibited around us, on every side! Thank God, the day is rapidly approaching when the prince of this world shall be hurled from his throne and consigned to the bottomless pit, and the Prince of heaven, the glorious Emmanuel shall stretch forth His blessed sceptre over the wide universe of God, and heaven and earth shall bask in the sunlight of His royal countenance. Well may we cry out, O Lord, hasten the time!
"And the children of Israel took their journey from Beeroth of the children of Jaakan to Mosera; there Aaron died, and there he was buried; and Eleazar his son ministered in the priest's office in his stead. From thence they journeyed to Gudgodah; and from Gudgodah to Jotbath, a land of rivers of waters. At that time the Lord separated the tribe of Levi, to bear the ark of the covenant, to stand before the Lord to minister to him, and to bless in his name, to this day. Wherefore Levi has no part nor inheritance with his brethren; the Lord is his inheritance, according as the Lord thy God promised him."
The reader must not allow his mind to be disturbed by any question of historical sequence in the foregoing passage. It is simply a parenthesis in which the lawgiver groups together, in a very striking and forcible manner, circumstances culled, with holy skill, from the history of the people, illustrative, at once, of the government and grace of God. The death of Aaron exhibits the former; the election and elevation of Levi, presents the latter. Both are placed together not with a view to chronology, but for the grand moral end which was ever present to the mind of the lawgiver — an end which lies far away beyond the range of infidel reason, but which commends itself to the heart and understanding of the devout student of scripture.
How utterly contemptible are the quibbles of the infidel when looked at in the brilliant light of divine inspiration! How miserable the condition of a mind which can occupy itself with chronological hair splittings in order, if possible, to find a flaw in the divine Volume, instead of grasping the real aim and object of the inspired writer!
But why does Moses bring in, in this parenthetical and apparently abrupt manner, those two special events in Israel's history? Simply to move the heart of the people toward the one grand point of obedience. To this end he culls and groups according to the wisdom given to him. Do we expect to find in this divinely taught servant of God the petty preciseness of a mere copyist? Infidels may affect to do so; but true Christians know better. A mere scribe could copy events in their chronological order; a true prophet will bring those events to bear, in a moral way, upon the heart and conscience. Thus, while the poor deluded infidel is groping amid the shadows of his own creation, the pious student delights himself in the moral glories of that peerless Volume which stands like a rock, against which the waves of infidel thought dash themselves with contemptible impotency.
We do not attempt to dwell upon the circumstances referred to in the above parenthesis; they have been gone into elsewhere, and therefore we only feel it needful, in this place, to point out to the reader what we may venture to call the Deuteronomic bearing of the facts — the use which the lawgiver makes of them to strengthen the foundation of his final appeal to the heart and conscience of the people, to give pungency and power to his exhortation, as he urged upon them the absolute necessity of unqualified obedience to the statutes and judgements of their covenant God. Such was his reason for referring to the solemn fact of the death of Aaron. They were to remember that, notwithstanding Aaron's high position as the high priest of Israel, yet he was stripped of his robes and deprived of his life for disobedience to the word of Jehovah. How important, then, that they should take heed to themselves! The government of God was not to be trifled with, and the very fact of Aaron's elevation only rendered it all the more needful that his sin should be dealt with, in order that others might fear.
And then they were to remember the Lord's dealings with Levi in which grace shines with such marvellous lustre. The fierce, cruel, self-willed Levi was taken up from the depths of his moral ruin and brought nigh to God, "to bear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to stand before the Lord, to minister to him, and to bless in his name.
But why should this account of Levi be coupled with the death of Aaron? Simply to set forth the blessed consequences of obedience. If the death of Aaron displayed the awful result of disobedience, the elevation of Levi illustrates the precious fruit of obedience. Hear what the prophet Malachi says on this point. "And ye shall know that I have sent this commandment to you, that my covenant might be with Levi, says the Lord of hosts. My covenant was with him of life and peace; and I gave them to him for the fear wherewith he feared me, and was afraid before my name. The law of truth was in his mouth, and iniquity was not found in his lips; he walked with me in peace and equity, and did turn many away from iniquity." Mal. 2:4-6.
This is a very remarkable passage, and throws much light upon the subject now before us. It tells us distinctly that Jehovah gave His covenant of life and peace to Levi "for the fear wherewith he feared" Him on the terrible occasion of the golden calf which Aaron (himself a Levite of the very highest order) made. Why was Aaron judged? Because of his rebellion at the waters of Meribah. (Num. 20:24.) Why was Levi blessed? Because of his reverent obedience at the foot of mount Horeb. (Ex. 32.) Why are both grouped together in Deuteronomy 10? In order to impress upon the heart and conscience of the congregation the urgent necessity of implicit obedience to the commandments of their covenant God. How perfect is scripture in all its parts! How beautifully it hangs together! And how plain it is to the devout reader that the lovely book of Deuteronomy has its own divine niche to fill, its own distinctive work to do, its own appointed sphere, scope and object! How manifest it is that the fifth division of the Pentateuch is neither a contradiction nor a repetition, but a divine application of its divinely inspired predecessors! And, finally, we cannot help adding — how convincing the evidence that infidel writers know neither what they say nor whereof they affirm, when they dare to insult the Oracles of God — yea, that they greatly err, not knowing the scriptures nor the power of God!*
{*We have, in human writings, numerous examples of the same thing that infidels object to in Deuteronomy 10:6-9. Suppose a man is anxious to call the attention of the English nation to some great principle of political economy, or some matter of national importance; he does not hesitate to select facts however widely separated on the page of history, and group them together in order to illustrate his subject. Do infidels object to this? No; not when found in the writings of men. It is only when it occurs in scripture, because they hate the word of God, and cannot bear the idea that He should give to His creatures a book-revelation of His mind. Blessed be His Name, He has given it notwithstanding, and we have it in all its infinite preciousness, and divine authority, for the comfort of our hearts, and the guidance of our path, amid all the darkness and confusion of this scene through which we are passing home to glory.}
At verse 10 of our chapter, Moses returns to the subject of his discourse. "And I stayed in the mount, according to the first time, forty days and forty nights; and the Lord hearkened to me at that time also, and the Lord would not destroy thee. And the Lord said to me, Arise, take thy journey before the people, that they may go in and possess the land which I sware to their fathers to give to them."
Jehovah would accomplish His promise to the fathers, spite of every hindrance. He would put Israel in full possession of the land concerning which He had sworn to Abraham, Isaac and Jacob, to give it to their seed for an everlasting inheritance.
"And now, Israel, what doth the Lord thy God require of thee, but to fear the Lord thy God, to walk in all His ways, and to love him, and to ser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To keep the commandments of the Lord, and his statutes, which I command thee this day, for thy good." It was all for their real good, their deep, full blessing to walk in the way of the divine commandments. The path of whole-hearted obedience is the only path of true happiness; and blessed be God, this path can always be trodden by those who love the Lord.
This is an unspeakable comfort, at all times. God has given us His precious word, the perfect revelation of His mind; and He has given as what Israel had not, even His Holy Spirit to dwell in our hearts whereby we can understand and appreciate His word. Hence our obligations are vastly higher than were Israel's. We are bound to a life of obedience by every argument that could be brought to bear on the heart and understanding.
And surely it is for our good to be obedient. There is indeed "great reward" in keeping the commandments of our loving Father. Every thought of Him and of His gracious ways, every reference to His marvellous dealings with us — His loving ministry, His tender care, His thoughtful love — all should bind our hearts in affectionate devotion to Him, and quicken our steps in treading the path of loving obedience to Him. Wherever we turn our eyes we are met by the most powerful evidences of His claim upon our heart's affections and upon all the energies of our ransomed being. And, blessed be His Name, the more fully we are enabled by His grace to respond to His most precious claims, the brighter and happier our path must he. There is nothing in all this world more deeply blessed than the path and portion of an obedient soul. "Great peace have they that love thy law, and nothing shall offend them." The lowly disciple, who finds his meat and his drink in doing the will of his beloved Lord and Master, possesses a peace which the world can neither give nor take away. True, he may be misunderstood and misinterpreted; he may be dubbed narrow and bigoted, and such-like; but none of these things move him. One approving smile from his Lord is more than ample recompense for all the reproach that men can heap upon him. He knows how to estimate at their proper worth the thoughts of men; they are to him as the chaff which the wind drives away. The deep utterance of his heart, as he moves steadily along the sacred path of obedience, is
"Let me my feebleness recline
On that eternal love of Thine,
And human thoughts forget;
Child-like attend what Thou wilt say
Go forth and serve Thee while 'tis day,
Nor leave Thy sweet retreat."
In the closing verses of our chapter, the lawgiver seems to rise higher and higher in his presentation of moral motives for obedience, and to come closer and closer to the hearts of the people. "Behold," he says, "the heaven and the heaven of heavens is the Lord's thy God, the earth also, with all that therein is. Only the Lord had a delight in thy fathers to love them, and he chose their seed after them, even you above all people, as it is this day." What a marvellous privilege to be chosen and loved by the Possessor of heaven and earth! What an honour to be called to serve and obey Him! Surely nothing in all this world could be higher or better. To be identified and associated with the Most High God, to have His Name called upon them, to be His peculiar people, His special possession, the people of His choice, to be set apart from all the nations of the earth to be the servants of Jehovah and His witnesses. What, we may ask, could exceed this, except it be that to which the church of God, and the individual believer are called?
Assuredly, our privileges are higher, inasmuch as we know God in a higher, deeper, nearer, more intimate manner than the nation of Israel ever did. We know Him as the God and Father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as our God and Father. We have the Holy Ghost dwelling in us, shedding abroad the love of God in our hearts, and leading us to cry, Abba, Father. All this is far beyond anything that God's earthly people ever knew or could know; and, inasmuch as our privileges are higher, His claims upon our hearty and unreserved obedience are also higher. Every appeal to the heart of Israel should come home, with augmented force to our hearts, beloved Christian reader; every exhortation addressed to them should speak, far more powerfully to us. We occupy the very highest ground on which any creature could stand. Neither the seed of Abraham on earth, nor the angels of God in heaven could say what we can say, or know what we know. We are linked and eternally associated with the risen and glorified Son of God. We can adopt as our own the wondrous language of 1 John 4.17, and say, "As he is so are we in this world." What can exceed this, as to privilege and dignity? Surely nothing save to be, in body, soul and spirit, conformed to His adorable image, as we shall be, ere long, through the abounding grace of God.
Well then let us ever bear in mind — yea, let us have it deep, deep, down in our hearts, that according to our privileges are our obligations. Let us not refuse the wholesome word "obligation" as though it had a legal ring about it. Far from it; it would be utterly impossible to conceive anything further removed from all thought of legality than the obligations which flow out of the Christian's position. It is a very serious mistake to be continually raising the cry of "Legal! Legal!" whenever the holy responsibilities of our position are pressed upon us. We believe that every truly pious Christian will delight in all the appeals and exhortations which the Holy Ghost addresses to us as to our obligations, seeing they are all grounded upon privileges conferred upon us by the sovereign grace of God, through the precious blood of Christ, and made good to us by the mighty ministry of the Holy Ghost.
But let us hearken still further to the stirring appeals of Moses. They are truly profitable for us, with all our higher light, knowledge and privilege.
"Circumcise therefore the foreskin of your heart and be no more stiff-necked. For the Lord your God is God of gods, and Lord of lords, a great God, a mighty, and a terrible, which regards not persons, nor takes reward. He doth execute the judgement of the fatherless and widow, and loves the stranger, in giving him food and raiment."
Here Moses speaks not merely of God's doings and dealings and ways, but of Himself, of what He is. He is high over all, the great, the mighty and the terrible. But He has a heart for the widow and the fatherless — those helpless objects deprived of all earthly and natural props, the poor bereaved and broken-hearted widow, and the desolate orphan. God thinks of, and cares for such, in a very special way; they have a claim upon His loving heart and mighty hand. "A Father of the fatherless, and a Judge of the widow is God in his holy habitation." "She that is a widow indeed and desolate trusts in God, and continues in supplications and prayers night and day." "Leave thy fatherless children, I will preserve them alive; and let thy widows trust in me."
What a rich provision is here for widows and orphans! How wondrous God's care of such! How many widows are much better off than when they had their husbands! How many orphans are better cared and provided for than when they had their parents! God looks after them! This is enough. Thousands of husbands and thousands of parents are worse by far than none; but God never fails those who are cast upon Him. He is ever true to His own Name, whatever relationship He takes. Let all widows and orphans remember this for their comfort and encouragement.
And then the poor stranger! He is not forgotten. "He loves the stranger, in giving him food and raiment." How precious is this! Our God cares for all those who are bereft of earthly props, human hopes, and creature confidences. All such have a special claim upon Him to which He will, most surely, respond according to all the love of His heart. The widow, the fatherless and the stranger are the special objects of His tender care, and as such have but to look to Him, and draw upon His exhaustless resources in all their varied need.
But then He must be known in order to be trusted. "They that know thy name will put their trust in thee; for thou, Lord, hast not forsaken them that seek thee." Those who do not know God would vastly prefer an insurance policy or a government annuity to His promise. But the true believer finds in that promise the unfailing stay of his heart, because he knows, and trusts, and loves the Promiser. He delights in the thought of being absolutely shut up to God, wholly dependent upon Him. He would not, for worlds, be in any other position. The very thing which would almost drive an unbeliever out of his senses is to the Christian — the man of faith, the very deepest joy of his heart. The language of such an one will ever be, "My soul, wait thou only upon God; for my expectation is from him. He only is my rock." Blessed position! Precious portion! May the reader know it as a divine reality, a living power, in his heart, by the mighty ministry of the Holy Ghost! Then will he be able to sit loose to earthly things. He will be able to tell the world that he is independent of it, having found all he wants, for time and eternity, in the living God and His Christ.
"Thou, O Christ, art all I want;
More than all in Thee I find."
But let us specially note the provision which God makes for the stranger. It is very simple — "food and raiment." This is enough for a true stranger, as the blessed apostle says to his son Timothy, "We brought nothing into this world, and it is certain we can carry nothing out. And having food and raiment, let us be therewith content."
Christian reader, let as ponder this. What a cure for restless ambition is here! What an antidote against covetousness! What a blessed deliverance from the feverish excitement of commercial life, the grasping spirit of the age in which our lot is cast! If we were only content with the divinely appointed provision for the stranger, what a different tale we should have to tell! How calm and even would be the current of our daily life! How simple our habits and tastes! How unworldly our spirit and style! What moral elevation above the self-indulgence and luxury so prevalent amongst professing Christians! We should simply eat and drink to the glory of God, and to keep the body in proper working order. To go beyond this, either in eating or drinking, is to indulge in "fleshly lusts which war against the soul."
Alas! alas! how much of this there is, specially in reference to drink! It is perfectly appalling to think of the consumption of intoxicating drink amongst professing Christians. It is our thorough conviction that the devil has succeeded in ruining the testimony of hundreds, and in causing them to make shipwreck of faith and a good conscience, by the use of stimulants. Thousands ruin their fortunes, ruin their families, ruin their health, ruin their souls through the senseless, vile and cursed desire for stimulants.
We are not going to preach a crusade against stimulants or narcotics. The wrong is not in the things themselves but in our inordinate and sinful use of them. It not infrequently happens that persons who fall under the horrible dominion of drink seek to lay the blame on their medical adviser; but surely no proper medical man would ever advise his patient to indulge in the use of stimulants. He may prescribe the use of "a little wine, for the stomach's sake and frequent infirmities," and he has the very highest authority for so doing; but why should this lead any one to become a drunkard? Each one is responsible to walk in the fear of God in reference to both eating and drinking. If a doctor prescribes a little nourishing food for his patient, is he to be blamed if that patient becomes a glutton? Surely not; the evil is not in the doctor's prescription, or in the stimulant, or in the nourishment, but in the wretched lust of the heart.
Here, we are persuaded, lies the root of the evil; and the remedy is found in that precious grace of God which while it brings salvation to all men, teaches those who are saved "to live soberly, righteously and godly in this present world." And be it remembered that "to live soberly" means a great deal more than temperance in eating and drinking; it means this most surely, but it takes in also the whole range of inward self-government — the government of the thoughts, the government of the temper, the government of the tongue. The grace that saves us not only tells us how to live, but teaches how to do it, and if we follow its teachings we shall be well content with God's provision for the stranger.
It is, at once, interesting and edifying to notice the way in which Moses sets the divine example before the people as their model. Jehovah "loves the stranger, in giving him food and raiment. Love ye therefore the stranger; for ye were strangers in the land of Egypt." This is very touching. They were not only to keep before their eyes the divine model, but also to remember their own past history and experience, in order that their hearts might be drawn out in sympathy and compassion toward the poor homeless stranger. It was the bounden duty and high privilege of the Israel of God to place themselves in the circumstances and enter into the feelings of others. They were to be the moral representatives of that blessed One whose people they were, and whose Name was called upon them. They were to imitate Him in meeting the wants and gladdening the hearts of the fatherless, the widow, and the stranger. And if God's earthly people were called to this lovely course of action, how much more are we who are "blessed with all spiritual blessings in the heavenlies in Christ Jesus." May we abide more in His presence, and drink more into His Spirit, that so we may more faithfully reflect His moral glories upon all with whom we come in contact!
The closing lines of our chapter give us a very fine summing up of the practical teaching which has been engaging our attention. "Thou shalt fear the Lord thy God; him shalt thou serve, and to him shalt thou cleave, and swear by his name. He is thy praise, and he is thy God, that has done for thee these great and terrible things, which thine eyes have seen. Thy fathers went down into Egypt with threescore and ten persons; and now the Lord has made thee as the stars of heaven for multitude." Vers. 20-22.
How thoroughly bracing is all this to the moral being! This binding of the heart to the Lord Himself by means of all that He is and all His wondrous actings and gracious ways, is unspeakably precious. It is, we may truly say, the secret spring of all true devotedness. God grant that the writer and the reader may abidingly realise its motive power!
Deuteronomy 11
"Therefore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and keep his charge, and his statutes, and his judgements, and his commandments, alway. And know ye this day; for I speak not with your children which have not known, and which have not seen the chastisements of the Lord your God, his greatness, his mighty hand, and his stretched out arm, and his miracles and his acts, which he did in the midst of Egypt to Pharaoh the king of Egypt, and to all his land; and what he did to the army of Egypt, to their horses, and to their chariots; how he made the water of the Red Sea to overflow them as they pursued after you, and how the Lord has destroyed them to this day; and what he did to you in the wilderness, until ye came to this place; and what he did to Dathan and Abiram, the sons of Eliab, the son of Reuben; how the earth opened her mouth, and swallowed them up, and their households, and their tents, and all the substance that was in their possession, in the midst of all Israel; but your eyes have seen all the great acts of the Lord which he did."
Moses felt it to be of the very highest importance that all the mighty acts of Jehovah should be kept prominently before the hearts of the people, and deeply engraved on the tablets of their memory. The poor human mind is vagrant, and the heart volatile; and, notwithstanding all that Israel had seen of the solemn judgements of God upon Egypt and upon Pharaoh, they were in danger of forgetting them, and losing the impression which they were designed and eminently fitted to make upon them.
It may be we feel disposed to wonder how Israel could ever forget the impressive scenes of their history in Egypt from first to last — the descent of their fathers thither as a mere handful, their steady growth and progress, as a people, spite of formidable difficulties and hindrances, so that from the insignificant few they had become, by the good hand of their God upon them, as the stars of heaven for multitude.
And then those ten plagues upon the land of Egypt! How full of awful solemnity! How pre-eminently calculated to impress the heart with a sense of the mighty power of God, the utter impotency and insignificance of man, in all his boasted wisdom, strength and glory, and the egregious folly of his attempting to set himself up against the Almighty God! What was all the power of Pharaoh and of Egypt in the presence of the Lord God of Israel! In one hour all was plunged into hopeless ruin and destruction. All the chariots of Egypt, all the pomp and glory, the valour and might of that ancient and far-famed nation — all was overwhelmed in the depths of the sea.
And why? Because they had presumed to meddle with the Israel of God; they had dared to set themselves in opposition to the eternal purpose and counsel of the Most High. They sought to crush those on whom He had set His love. He had sworn to bless the seed of Abraham, and no power of earth or hell could possibly annul His oath. Pharaoh, in his pride and hardness of heart, attempted to countervail the divine actings, but he only meddled to his own destruction. His land was shaken to its very centre, and himself and his mighty army overthrown in the Red Sea, a solemn example to all who should ever attempt to stand in the way of Jehovah's purpose to bless the seed of Abraham His friend.
Nor was it merely what Jehovah had done to Egypt and to Pharaoh that the people were called to remember, but also what He had done amongst themselves. How soul-subduing the judgement upon Dathan and Abiram and their households! How awful the thought of the earth opening her mouth and swallowing them up! And for what? For their rebellion against the divine appointment. In the history given in Numbers, Korah, the Levite, is the prominent character; but here he is omitted, and the two Reubenites are named — two members of the congregation, because Moses is seeking to act on the whole body of the people by setting before them the terrible consequence of self-will in two of their number — two ordinary members, as we should say, and not merely a privileged Levite.
In a word, then, whether the attention was called to the divine actings without or within, abroad or at home, it was all for the purpose of impressing their hearts and minds with a deep sense of the moral importance of obedience. This was the one grand aim of all the rehearsals, all the comment, all the exhortations of the faithful servant of God who was so soon to be removed from their midst. For this he ranges over their history for centuries, culling, grouping, commenting, taking up this fact and omitting that, as guided by the Spirit of God. The journey down to Egypt, the sojourn there, the heavy judgements upon the self-willed Pharaoh, the exodus, the passage through the sea, the scenes in the wilderness, and specially, the awful fate of the two rebellious Reubenites — all is brought to bear, with marvellous force and clearness, upon the conscience of the people, in order to strengthen the basis of Jehovah's claim upon their unqualified obedience to His holy commandments.
"Therefore shall ye keep all the commandments which I command you this day, that ye may be strong, and go in and possess the land, whither ye go to possess it; and that ye may prolong your days in the land, which the Lord sware to your fathers to give to them and to their seed, a land that flows with milk and honey."
Let the reader note the beautiful moral link between those two clauses, "Keep all the commandments" — "That ye may be strong." There is great strength gained by unreserved obedience to the word of God. It will not do to pick and choose. We are prone to this, prone to take up certain commandments and precepts which suit ourselves; but this is really self-will. What right have we to select such and such precepts from the word, and neglect others! None whatever. To do so is, in principle, simply self-will and rebellion. What business has a servant to decide as to which of his master's commands he will obey? Surely none whatever; each commandment stands clothed with the masters authority, and therefore claims the servant's attention; and, we may add, the more implicitly the servant obeys, the more he bends his respectful attention to every one of his master's commands, be it ever so trivial, the more does he strengthen himself in his position and grow in his master's confidence and esteem. Every master loves and values an obedient, faithful, devoted servant. We all know what a comfort it is to have a servant whom we can trust, one who finds his delight in carrying out our every wish, and who does not require perpetual looking after, but knows his duty and attends to it.
Now, ought we not to seek to refresh the heart of our blessed Master, by a loving obedience to all His commandments? Only think, reader, what a privilege it is to be allowed to give joy to the heart of that blessed One who loved us and gave Himself for us. It is something wonderful that poor creatures such as we can in any way refresh the heart of Jesus; yet so it is, blessed be His Name! He delights in our keeping His commandments; and assuredly the thought of this should stir our whole moral being, and lead us to study His word, in order to find out, more and more, what His commandments are — so that we may do them.
We are forcibly reminded, by those words of Moses which we have just quoted, of the apostle's prayer for "the saints and faithful brethren in Christ at Colosse." "For this cause we also, since the day we heard it, do not cease to pray for you, and to desire that ye might be filled with the knowledge of his will, in all wisdom and spiritual understanding; that ye might walk worthy of the Lord to all pleasing, being fruitful in every good work, and increasing in the knowledge of God; strengthened with all might, according to his glorious power, to all patience and long-suffering with joyfulness; giving thanks to the Father, which has made us meet to be partakers of the inheritance of the saints in light; who has delivered us from the power of darkness, and has translated us into the kingdom of the Son of his love; in whom we have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the forgiveness of sins." (Col. 1:9-14.)
Making allowance for the difference between the earthly and the heavenly — between Israel and the church, there is a striking similarity between the words of the law-giver and the words of the apostle. Both together are eminently fitted to set forth the beauty and preciousness of a willing-hearted loving obedience. It is precious to the Father, precious to Christ, precious to the Holy Ghost; and this surely ought to be enough to create and strengthen in our hearts the desire to be filled with the knowledge of His will, that so we might walk worthy of Him to all pleasing, being fruitful in every good work, and increasing in the knowledge of God. It should lead us to a more diligent study of the word of God, so that we might be ever finding out more and more of our Lord's mind and will, learning what is well-pleasing to Him, and looking to Him for grace to do it. Thus should our hearts be kept near to Him, and we should find an ever-deepening interest in searching the scriptures not merely to grow in the knowledge of truth, but in the knowledge of God, the knowledge of Christ — the deep, personal, experimental knowledge of all that it treasured up in that blessed One who is the fulness of the Godhead bodily. Oh! may the Spirit of God, by His most precious and powerful ministry, awaken in us a more intense desire to know and to do the will of our blessed Lord and Saviour Jesus Christ, that thus we may refresh His loving heart and be well-pleasing to Him in all things!
We must now turn, for a moment, to the lovely picture of the promised land which Moses holds up before the eyes of the people. "For the land whither thou goest in to possess it, is not as the land of Egypt, from whence ye came out, where thou sowedst thy seed, and wateredst it with thy foot, as a garden of herbs: but the land, whither ye go to possess it, is a land of hills and valleys, and drinks water of the rain of heaven; a land which the Lord thy God cares for; the eyes of the Lord thy God are always upon it, from the beginning of the year even to the end of the year." (Vers. 10-12.)
What a vivid contrast between Egypt and Canaan! Egypt had no rain from heaven. It was all human effort there. Not so in the Lord's land; the human foot could do nothing there, nor was there any need, for the blessed rain from heaven dropped upon it; Jehovah Himself cared for it and watered it with the early and latter rain. The land of Egypt was dependent upon its own resources; the land of Canaan was wholly dependent upon God — upon what came down from heaven. "My river is mine own," was the language of Egypt. "The river of God" was the hope of Canaan. The habit in Egypt was to water with the foot; the habit in Canaan was to look up to heaven.
We have in the sixty-fifth Psalm a lovely statement of the condition of things in the Lord's land, as viewed by the eye of faith. "Thou visitest the earth, and waterest it; thou greatly enrichest it with the river of God which is full of water; thou preparest them corn, when thou hast so provided for it. Thou waterest the ridges thereof abundantly; thou settlest the furrows thereof; thou makest it soft with showers; thou blessest the springing thereof. Thou crownest the year with thy goodness; and thy paths drop fatness. They drop upon the pastures of the wilderness; and the little hills rejoice on every side. The pastures are clothed with flocks; the valleys also are covered over with corn; they shout for joy, they also sing." (Vers. 9-13.)
How perfectly beautiful! Only think of God watering the ridges, and settling the furrows! Think of His stooping down to do the work of a husbandman for His people! Yes, and delighting to do it! It was the joy of His heart to pour His sunbeams and His refreshing showers upon the "hills and valleys" of His beloved people. It was refreshing to His spirit, as it was to the praise of His Name to see the vine, the fig-tree and the olive flourishing, the valleys covered with the golden grain, and the rich pastures covered with flocks of sheep.
Thus it should ever have been, and thus it would have been, had Israel only walked in simple obedience to the holy law of God. "It shall come to pass, if ye shall hearken diligently to my commandments which I command you this day, to love the Lord your God, and to serve him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that I will give you the rain of your land in his due season, the first rain and the latter rain, that thou mayest gather in thy corn, and thy wine, and thine oil. And I will send grass in thy fields for thy cattle, that thou mayest eat and be full." (Vers. 13-15)
Thus the matter stood between the God of Israel, and the Israel of God. Nothing could be simpler, nothing more blessed. It was Israel's high and holy privilege to love and serve Jehovah; it was Jehovah's prerogative to bless and prosper Israel. Happiness and fruitfulness were to be the sure accompaniments of obedience. The people and their land were wholly dependent upon God; all their supplies were to come down from heaven, and hence so long as they walked in loving obedience the copious showers dropped upon their fields and vineyards; the heavens dropped down the dew, and the earth responded in fruitfulness and blessing.
But, on the other hand, when Israel forgot the Lord, and forsook His precious commandments, the heaven became brass and the earth iron; barrenness, desolation, famine and misery were the melancholy accompaniments of disobedience. How could it be otherwise? "If ye be willing and obedient, ye shall eat the good of the land; but if ye refuse and rebel, ye shall be devoured with the sword; for the mouth of the Lord hath spoken it."
Now, in all this there is deep practical instruction for the church of God. Although we are not under law, we are called to obedience, and as we are enabled through grace to yield a loving hearty obedience, we are blessed in our own spiritual state, our souls are watered, refreshed and strengthened, and we bring forth the fruits of righteousness which are by Jesus Christ to the glory and praise of God.
The reader may refer with much profit, in connection with this great practical subject, to the opening of John 15 — a most precious scripture, and one demanding the earnest attention of every true-hearted child of God. "I am the true vine, and my Father is the husbandman. Every branch in me that bears not fruit he takes away; and every branch that bears fruit, he purges it, that it may bring forth more fruit. Now ye are clean through the word which I have spoken to you. Abide in me, and I in you. As the branch cannot bear fruit of itself, except it abide in the vine; no more can ye, except ye abide in me. I am the vine, ye are the branches; he that abides in me, and I in him, the same brings forth much fruit; for without [or apart from] me ye can do nothing. If a man abide not in me, he is cast forth as a branch, and is withered; and men gather them, and cast them into the fire, and they are burned. If ye abide in me, and my words abide in you, ye shall ask what ye will, and it shall be done to you. Herein is my Father glorified, that ye bear much fruit; so shall ye be my disciples. As the Father has loved me, so have I loved you; continue ye in my love. If ye keep my commandments, ye shall abide in my love, even as I have kept my Father's commandments, and abide in his love." (Vers. 1-10.)
This weighty passage of scripture has suffered immensely through theological controversy and religious strife. It is as plain as it is practical, and only needs to be taken as it stands, in its own divine simplicity. If we seek to import into it what does not belong to it, we mar its integrity and miss its true application. In it we have Christ, the true vine, taking the place of Israel who had become to Jehovah the degenerate plant of a strange vine. The scene of the parable is obviously earth and not heaven; we do not think of a vine and a husbandman (georgos) in heaven. Besides, our Lord says, "I am the true vine." The figure is very distinct. It is not the Head and the members, but a tree and its branches. Moreover, the subject of the parable is as distinct as the parable itself; it is not eternal life, but fruit-bearing. If this were borne in mind, it would greatly help to an understanding of this much misunderstood passage of scripture.
In a word then, we learn from the figure of the vine and its branches that the true secret of fruit-bearing is to abide in Christ, and the way to abide in Christ is to keep His precious commandments. "If ye keep my commandments, ye shall abide in my love; even as I have kept my Father's commandments and abide in his love." This makes it all so simple. The way to bear fruit in season is to abide in the love of Christ, and this abiding is proved by our treasuring up His commandments in our hearts and a loving obedience to every one of them. It is not running hither and thither in the mere energy of nature; it is not the excitement of mere fleshly zeal displaying itself in spasmodic efforts after devotedness. No; it is something quite different from all this; it is the calm and holy obedience of the heart — a loving obedience to our own beloved Lord which refreshes His heart and glorifies His Name.
"How blest are they who still abide
Close sheltered by Thy watchful side;
Who life and strength from Thee receive,
And with Thee move and in Thee live."
Reader, may we apply our hearts diligently to this great subject of fruit-bearing. May we better understand what it is. We are apt to make great mistakes about it. It is to be feared that much — very much of what passes for fruit would not be accredited in the divine presence. God cannot own anything as fruit which is not the direct result of abiding in Christ. We may earn a great name among our fellows for zeal, energy and devotedness; we may be abundant in labours, in every department of the work; we may acquit ourselves as great travellers, great preachers, earnest workers in the vineyard, great philanthropists and moral reformers; we may spend a princely fortune in promoting all the great objects of Christian benevolence, and all the while not produce a single cluster of fruit acceptable to the Father's heart.
And, on the other hand, it may be our lot to pass the time of our sojourn here in obscurity and retirement from human gaze; we may be little accounted of by the world and the professing church; we may seem to leave but little mark on the sands of time; but if only we abide in Christ, abide in His love, treasure up His precious words in our hearts, and yield ourselves up to a holy and loving obedience to His commandments, then shall our fruit be in season, and our Father will be glorified, and we shall grow in the experimental knowledge of our Lord and Saviour Jesus Christ.
We shall now look for a moment at the remainder of our chapter in which Moses, in words of intense earnestness, presses upon the congregation the urgent need of watchfulness and diligence in reference to all the statutes and judgments of the Lord their God. The beloved and faithful servant of God, and true lover of the people was unwearied in his efforts to brace them up to that whole-hearted obedience which he knew to be, at once, the spring of their happiness and their fruitfulness; and just as our blessed Lord warns His disciples by setting before them the solemn judgement of the unfruitful branch, so does Moses warn the people as to the sure and terrible consequences of disobedience.
"Take heed to yourselves, that your heart be not deceived, and ye turn aside, and serve other gods, and worship them." Sad progress downward! The heart deceived. This is the beginning of all declension. "And ye turn aside." The feet are sure to follow the heart. Hence the deep need of keeping the heart with all diligence; it is the citadel of the whole moral being, and so long as it is kept for the Lord, the enemy can gain no advantage; but when once it is surrendered, all is really gone; there is the turning aside; the secret departure of the heart is proved by the practical ways; "other gods" are served and worshipped. The descent down along the inclined plane is terribly rapid.
"And then" — mark the sure and solemn consequences — "the Lord's wrath be kindled against you, and he shut up the heaven, that there be no rain, and that the land yield not her fruit; and ye perish quickly from off the good land which the Lord gives you." What barrenness and desolation there must be when heaven is shut up! No refreshing showers coming down, no dewdrops falling, no communication between the heaven and the earth. Alas! how often had Israel tasted the awful reality of this! "He turns rivers into a wilderness, and the water-springs into dry ground; a fruitful land into barrenness, for the wickedness of them that dwell therein."
And may we not see in the barren land and the desolate wilderness an apt and striking illustration of a soul out of communion through disobedience to the precious commandments of Christ? Such an one has no refreshing communications with heaven — no showers coming down — no unfoldings of the preciousness of Christ to the heart — no sweet ministrations of an ungrieved Spirit to the soul; the Bible seems a sealed book; all is dark, dreary and desolate. Oh! there cannot be anything more miserable in all this world than a soul in this condition. May the writer and the reader never experience it! May we bend our ears to the fervent exhortations addressed by Moses to the congregation of Israel! They are most seasonable, most healthful, most needful in this day of cold indifferentism and positive wilfulness. They set before us the divine antidote against the special evils to which the church of God is exposed at this very hour — an hour critical and solemn beyond all human conception.
"Therefore shall ye lay up these my words in your heart and in your soul, and bind them for a sign upon your hand, that they may be as frontlets between your eyes. And ye shall teach them your children, speaking of them when thou sittest in thine house, and when thou walkest by the way, when thou liest down, and when thou risest up; and thou shalt write them upon the door-posts of thine house, and upon thy gates, that your days may be multiplied, and the days of your children, in the land which the Lord sware to your fathers to give them, as the days of heaven upon the earth."
Blessed days! And oh! how ardently the large, loving heart of Moses longed that the people might enjoy many such days! And how simple the condition! Truly nothing could be simpler, nothing more precious. It was not a heavy yoke laid upon them, but the sweet privilege of treasuring up the precious commandments of the Lord their God, in their hearts, and breathing the very atmosphere of His holy word. All was to hinge upon this. All the blessings of the land of Canaan — that goodly, highly favoured land,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a land on which Jehovah's eyes ever rested in loving interest and tender care — all its precious fruits, all its rare privileges were to be theirs in perpetuity, on the one simple condition of loving obedience to the word of their covenant God.
"For if ye shall diligently keep all these commandments which I command you, to do them, to love the Lord your God, to walk in all his ways, and to cleave to him; then will the Lord drive out all these nations from before you, and ye shall possess greater nations and mightier than yourselves." In a word, sure and certain victory was before them, a most complete overthrow of all enemies and obstacles, a triumphal march into the promised inheritance — all secured to them on the blessed ground of affectionate and reverential obedience to the most precious statutes and judgments that had ever been addressed to the human heart — statutes and judgements every one of which was but the very voice of their most gracious Deliverer.
"Every place whereon the soles of your feet shall tread shall be yours; from the wilderness and Lebanon, from the river, the river Euphrates, even to the uttermost sea, shall your coast be. There shall no man be able to stand before you; for the Lord your God shall lay the fear of you and the dread of you upon all the land that ye shall tread upon, as he has said to you."
Here was the divine side of the question. The whole land, in its length, breadth and fulness, lay before them; they had but to take possession of it, as the free gift of God; it was for them simply to plant the foot, in artless appropriating faith, upon that fair inheritance which sovereign grace had bestowed upon them. All this we see made good in the Book of Joshua, as we read in Joshua 11. "So Joshua took the whole land, according to all that the Lord said to Moses; and Joshua gave it for an inheritance to Israel, according to their divisions by their tribes. And the land rested from war." (Ver. 23.)*
{*No doubt it was in faith that Joshua took — and could take nothing less than — the whole land. But as to actual possession, Joshua 13:1 shows there was "yet much land to be possessed."}
But alas! there was the human side of the question as well as the divine. Canaan as promised by Jehovah and made good by the faith of Joshua, was one thing; and Canaan as possessed by Israel, was quite another. Hence the vast difference between Joshua and Judges. In Joshua we see the infallible faithfulness of God to His promise; in Judges, we see Israel's miserable failure from the very outset. God pledged His immutable word that not a man should be able to stand before them; and the sword of Joshua — type of the great Captain of our salvation — made good this pledge in its every jot and tittle. But the Book of Judges records the melancholy fact that Israel failed to drive out the enemy — failed to take possession of the divine grant in all its royal magnificence.
What then? Is the promise of God made of none effect? Nay, verily, but the utter failure of man is made apparent. At "Gilgal" the banner of victory floated over the twelve tribes, with their invincible captain at their head. At "Bochim" the weepers had to mourn over Israel's lamentable defeat.
Have we any difficulty in understanding the difference? None whatever; we see the two things running all through the divine Volume. Man fails to rise to the height of the divine revelation — fails to take possession of what grace bestows. This is as true in the history of the church as it was in the history of Israel. In the New Testament, as well as in the Old, we have Judges as well as Joshua.
Yes, reader, and in the history of each individual member of the church we see the same thing. Where is the Christian, beneath the canopy of heaven, that lives up to the height of his spiritual privileges? Where is the child of God who has not to mourn over his humiliating failure in grasping and making good practically the high and holy privileges of his calling of God? But does this make the truth of God of none effect? No; blessed for ever be His Holy Name! His word holds good in all its divine integrity and eternal stability. Just as in Israel's case, the land of promise lay before them in all its fair proportions and divinely given attractions; and not only so, but they could count on the faithfulness and almighty power of God to bring them in and put them in full possession; so with us, we are blessed with all spiritual blessings in the heavenlies in Christ; there is absolutely no limit to the privileges connected with our standing, and as to our actual enjoyment it is only a question of faith taking possession of all that God's sovereign grace has made ours in Christ.
We must never forget that it is the privilege of the Christian to live at the very height of the divine revelation. There is no excuse for a shallow experience or a low walk. We have no right whatever to say that we cannot realise the fulness of our portion in Christ, that the standard is too high, the privileges are too vast, that we cannot expect to enjoy such marvellous blessings and dignities in our present imperfect state.
All this is downright unbelief, and should be so treated by every true Christian. The question is, Has the grace of God bestowed the privileges upon us? Has the death of Christ made good our title to them? And has the Holy Ghost declared them to be the proper portion of the very feeblest member of the body of Christ? If so — and scripture declares it is so — why should we not enjoy them? There is no hindrance on the divine side. It is the desire of the heart of God that we should enter into the fulness of our portion in Christ. Hear the earnest breathing of the inspired apostle, on behalf of the saints at Ephesus, and of all saints. "Wherefore I also, after I heard of your faith in the Lord Jesus, and love to all the saints, cease not to give thanks for you, making mention of you in my prayers; that the God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Father of glory, may give to you the spirit of wisdom and revelation in the knowledge of him; the eyes of your understanding being enlightened; that ye may know what is the hope of his calling, and what the riches of the glory of his inheritance in the saints, and what the exceeding greatness of his power to us-ward who believe, according to the working of his mighty power, which he wrought in Christ, when he raised him from the dead, and set him at his own right hand in the heavenlies, far above all principality, and power, and might, and dominion, and every name that is named, not only in this world, but also in that which is to come; and has put all things under his feet, and gave him to be the head over all things to the church, which is his body, the fulness of him that fills all in all" (Eph. 1:15-23.)
From this marvellous prayer we may learn how earnestly the Spirit of God desires that we should apprehend and enjoy the glorious privileges of the true Christian position. He would ever, by His precious and powerful ministry, keep our hearts up to the mark; but alas! like Israel, we grieve Him by our sinful unbelief, and rob our own souls of incalculable blessing.
But, all praise to the God of all grace, the Father of glory,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He will yet make good every jot and tittle of His most precious truth, both as to His earthly and heavenly people. Israel shall yet enjoy to the full all the blessings secured to them by the everlasting covenant; and the church shall yet enter upon the perfect fruition of all that which eternal love and divine counsels have laid up for her in Christ; and not only so, but the blessed Comforter is able and willing to lead the individual believer into the present enjoyment of the hope of God's glorious calling, and the practical power of that hope, in detaching the heart from present things and separating it to God in true holiness and living devotedness.
May our hearts, beloved Christian reader, long more ardently after the full realisation of all this, that thus we may live more as those who are finding their portion and their rest in a risen and glorified Christ! God, in His infinite goodness, grant it, for Jesus Christ's Name and glory's sake!
The remaining verses of our chapter close the first division of the Book of Deuteronomy which, as the reader will notice, consists of a series of discourses addressed by Moses to the congregation of Israel — memorable discourses, most surely, in whatever way we view them. The closing sentences are, we need hardly say, in perfect keeping with the whole, and breathe the same deep-toned earnestness in reference to the subject of obedience — a subject which, as we have seen, formed the special burden on the heart of the beloved speaker in his affecting farewell addresses to the people.
"Behold, I set before you this day s blessing and a curse" — How pointed and solemn is this! — "A blessing, if ye obey the commandments of the Lord your God, which I command you this day; and a curse, if ye will not obey the commandments of the Lord your God, but turn aside out of the way which I command you this day, to go after other gods, which ye have not known.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e Lord thy God has brought thee in to the land whither thou goest to possess it, that thou shalt put the blessing upon mount Gerazim, and the curse upon mount Ebal. Are they not on the other side Jordan, by the way where the sun goes down, in the land of the Canaanites, which dwell in the champaign over against Gilgal, beside the plains of Moreh? For ye shall pass over Jordan, to go in to possess the land which the Lord your God gives you, and ye shall possess it, and dwell therein. AND YE SHALL OBSERVE TO DO ALL THE STATUTES AND JUDGMENTS WHICH I SET BEFORE YOU THIS DAY." (Vers. 26-32.)
Here we have the summing up of the whole matter. The blessing is linked on to obedience; the curse, to disobedience. Mount Gerazim stands over against mount Ebal — fruitfulness and barrenness. We shall see, when we come to Deuteronomy 27, that mount Gerazim and its blessings are entirely passed over. The curses of mount Ebal fall, with awful distinctness, on Israel's ear, while terrible silence reigns on mount Gerazim. "As many as are of the works of the law are under the curse." The blessing of Abraham can only come on those who are on the ground of faith. But more of this, by-and-by.
Deuteronomy 12
We now enter upon a new section of our marvellous book. The discourses contained in the first eleven chapters having established the all-important principle of obedience, we now come to the practical application of the principle to the habits and ways of the people when settled in possession of the land. "These are the statutes and judgements which ye shall observe to do in the land which the Lord God of thy fathers gives thee to possess it, all the days that ye live upon the earth"
It is of the utmost moral importance that the heart and conscience should be brought into their true attitude in reference to divine authority, irrespective altogether of any question as to details. These will find their due place when once the heart is taught to bow down, in complete and absolute submission, to the supreme authority of the word of God.
Now, as we have seen in our studies on the first eleven chapters, the law-giver labours, most earnestly and faithfully, to lead the heart of Israel into this all-essential condition. He felt, to speak after the manner of men, it was of no use entering upon practical details until the grand foundation principle of all morality was fully established in the very deepest depths of the soul. The principle is this — let us Christians apply our hearts to it — It is man's bounden duty to bow implicitly to the authority of the word of God. It matters not, in the smallest degree, what that word may enjoin, or whether we can see the reason of this, that or the other institution. The one grand, all-important and conclusive point is this, Has God spoken? If He has, that is quite enough. There is no room, no need for any further question.
Until this point is fully established, or rather until the heart is brought directly under its full moral force, we are not in a condition to enter upon details. If self-will be allowed to operate, if blind reason be permitted to speak, the heart will send up its endless questionings; as each divine institution is laid before us, some fresh difficulty will present itself as a stumbling-block in the path of simple obedience.
"What!" it may be said, "Are we not to use our reason? If not, to what end was it given?" To this we have a twofold reply. In the first place, our reason is not as it was when God gave it. We have to remember that sin has come in; man is a fallen creature, his reason, his judgement, his understanding, his whole moral being is a complete wreck; and moreover, it was the neglect of the word of God that caused all this wreck and ruin.
And, then, in the second place, we must bear in mind that if reason were in a sound condition, it would prove its soundness by bowing to the word of God. But it is not sound; it is blind and utterly perverted; it is not to be trusted for a moment, in things spiritual, divine or heavenly.
If this simple fact were thoroughly understood, it would settle a thousand questions and remove a thousand difficulties. It is reason that makes all the infidels. The devil whispers into man's ear, "You are endowed with reason; why not use it? It was given to be used, used in everything; you ought not to give your assent to anything which your reason cannot grasp. It is your chartered right, as a man, to submit everything to the test of your reason; it is only for a fool or an idiot to receive, in blind credulity, all that is set before him."
What is our answer to such wily and dangerous suggestions? A very simple and conclusive one, namely this. The word of God is above and beyond reason altogether; it is as far above reason as God is above the creature, or heaven above earth. Hence, when God speaks, all reasonings must be cast down. If it be merely man's word, man's opinion, man's judgement, then verily reason may exert its powers; or rather, to speak more correctly, we must judge what is said by the only perfect standard, the word of God. But if reason be set to work on the word of God, the soul must inevitably be plunged in the thick darkness of infidelity from which the descent to the awful blackness of atheism is but too easy.
In a word, then, we have to remember, yea, to cherish in the very deepest depths of our moral being, that the only safe ground for the soul is divinely wrought faith in the paramount authority, divine majesty, and all-sufficiency of the word of God. This was the ground which Moses occupied in dealing with the heart and conscience of Israel. His one grand object was to lead the people into the attitude of profound, unqualified subjection to divine authority. Without this all was useless. If every statute, every judgement, every precept, every institution were to be submitted to the action of human reason, then farewell to divine authority, farewell to scripture, farewell to certainty, farewell to peace. But, on the other hand, when the soul is led by God's Spirit into the delightful attitude of absolute and unquestioning submission to the authority of God's word, then every one of His judgements, every one of His commandments, every sentence of His blessed Book is received as coming direct from Himself; and the most simple ordinance or institution, stands invested with all the importance which His authority is fitted to impart. We may not be able to understand the full meaning or exact bearing of each statute and judgement; that is not the question; it is sufficient for us to know that it comes from God; He has spoken; this is conclusive. Till this great principle is grasped, or rather till it takes full possession of the soul, nothing is done; but when it is fully understood and submitted to, the solid foundation is laid of all true morality.
The foregoing line of thought will enable the reader to seize the connection between the chapter which now lies open before us, and the preceding section of this book; and not only will it do this, but we trust it will also help him to understand the special place and bearing of the opening verses of chapter 12.
"Ye shall utterly destroy all the places wherein the nations which ye shall possess served their gods, upon the high mountains, and upon the hills, and under every green tree. And ye shall overthrow their altars, and break their pillars, and burn their groves with fire; and ye shall hew down the graven images of their gods, and destroy the names of them out of that place." (Vers. 2, 3)
The land was Jehovah's; they were to hold as tenants under Him, and therefore their very first duty on entering upon possession, was to demolish every trace of the old idolatry. This was absolutely indispensable. It might, according to human reason, seem to be very intolerant to act in this way towards other people's religion. We reply, without any hesitation, Yes, it was intolerant, for how could the one only true and living God be otherwise than intolerant of all false gods and false worships. To suppose, for moment, that He could permit the worship of idols in His land, would be to suppose that He could deny Himself, which were simply blasphemy.
Let us not be misunderstood. It is not that God does not bear with the world, in His long-suffering mercy. It seems hardly needful to state this, with the history of well-nigh six thousand years of divine forbearance before our eyes. Blessed for ever be His holy Name, He has borne with the world most marvellously, from the days of Noah, and He still bears with it, though stained with the guilt of crucifying His beloved Son.
All this is vain, but it leaves wholly untouched the great principle laid down in our chapter. Israel had to learn that they were about to take possession of the Lord's land, and that, as His tenants, their first and indispensable duty was to obliterate every trace of idolatry. To them there was to be but "the one God." His Name was called upon them. They were His people, and He could not permit them to have fellowship with demons. "Thou shalt worship the Lord thy God; and him only shalt thou serve."
This might, in the judgement of the uncircumcised nations around, seem very intolerant, very narrow, very bigoted. They indeed might boast of their freedom, and glory in the broad platform of their worship which admitted "gods many and lords many." It might, according to their thinking, argue greater breadth of mind to let every one think for himself in matters of religion, and choose his own object of worship, and his own mode of worshipping also. Or, still further, it might give evidence of a more advanced condition of civilisation, greater polish and refinement to erect, as in Rome, a pantheon in which all the gods of Heathendom might find a place. "What did it matter about the form of a man's religion, or the object of his worship, provided he himself were sincere? All would be sure to come right in the end; the great point for all was to attend to material progress, to help on national prosperity as the surest means of securing individual interests. Of course, it is all right for every man to have some religion, but as to the form of that religion it is immaterial. The great question is what you are yourself, not what your religion is."
All this, we can well conceive, would admirably suit the carnal mind, and be very popular amongst the uncircumcised nations. But as for Israel, they had to remember that one commanding sentence, "The Lord thy God is one God." And again, "Thou shalt have none other gods before me;" This was to be their religion; the platform of their worship was to be as wide and as narrow as the one true and living God, their Creator and Redeemer. That, assuredly, was broad enough for every true worshipper, every member of the circumcised assembly, all whose high and holy privilege it was to belong to the Israel of God. They were not to concern themselves with the opinions or observations of the uncircumcised nations around. What were they worth? Not the weight of a feather. What could they know about the claims of the God of Israel upon His circumcised people? Just nothing. Were they competent to decide as to the proper breadth of Israel's platform? Clearly not; they were wholly ignorant of the subject. Hence their thoughts, reasonings, arguments and objections were perfectly worthless, not to be listened to for a moment. It was Israel's one simple, bounden duty to bow down to the supreme and absolute authority of the word of God; and that word insisted upon the complete abolition of every trace of idolatry from that goodly land which they were privileged to hold as tenants under Him.
But not only was it incumbent upon Israel to abolish all the places in which the heathen had worshipped their gods; this they were solemnly bound to do, most surely; but there was more than this. The heart might readily conceive the thought of doing away with idolatry, in the various places, and setting up the altar of the true God instead. This might seem to be the right course to adopt. But God thought differently. "Ye shall not do so to the Lord your God. But to the place which the Lord your God shall choose out of all your tribes, to put his name there, even to his habitation shall ye seek, and thither thou shalt come; and thither ye shall bring your burnt offerings, and your sacrifices, and your tithes, and heave offerings of your hand, and your vows, and your freewill offerings, and the firstlings of your herds and of your flocks; and there ye shall eat before the Lord your God; and ye shall rejoice in all that ye put your hand to, ye and your households, wherein the Lord thy God has blessed thee."
Here a great cardinal truth is unfolded to the congregation of Israel. They were to have one place of worship — a place chosen of God and not of man. His habitation — the place of His presence was to be Israel's grand centre; thither they were to come with their sacrifices and their offerings, and there they were to offer their worship, and find their common joy.
Does this seem exclusive? Of course it was exclusive; how else could it be? If God was pleased to select a spot in which He would take up His abode in the midst of His redeemed people, surely they were, of necessity, shut up to that spot as their place of worship. This was divine exclusiveness, and every pious soul would delight in it. Every true lover of Jehovah would say, with all his heart, "Lord, I have loved the habitation of thy house, and the place where thine honour dwells." And, again, "How amiable are thy tabernacles, O Lord of hosts! My soul longs; yea, even faints for the courts of the Lord; my heart and my flesh cries out for the living God..… Blessed are they that dwell in thy house; they will be still praising thee … A day in Thy courts is better than a thousand. I had rather be a doorkeeper in the house of my God, than to dwell in the tents of wickedness." (Psalms 26:84.)
Here was the one grand and all-important point. It was the dwelling-place of Jehovah which was dear to the heart of every true Israelite. Restless self-will might desire to run hither and thither; the poor vagrant heart might long for some change; but, for the heart that loved God, any change from the place of His presence, the place where He had recorded His blessed Name, could only be a change for the worse. The truly devout worshipper could find satisfaction and delight, blessing and rest only in the place of the divine presence; and this, on the double ground, the authority of His precious word, and the powerful attractions of His presence. Such an one could never think of going anywhere else. Whither could he go? There was but one altar, one habitation, one God, that was the place for every right-minded, every true-hearted Israelite. To think of any other place of worship would, in his judgement, be not only a departure from the word of Jehovah, but from His holy habitation.
This great principle is largely insisted upon throughout the whole of our chapter. Moses reminds the people that from the moment they entered Jehovah's land, there was to be an end to all the irregularity and self-will that had characterised them in the plains of Moab or in the wilderness. "Ye shall not do after all the things that we do here this day, every man whatsoever is right in his own eyes. For ye are not as yet come to the rest, and to the inheritance, which the Lord your God gives you. But when ye go over Jordan, and dwell in the land which the Lord your God gives you to inherit, and when he gives you rest from all your enemies round about, so that ye dwell in safety; then there shall be a place which the Lord your God shall choose, to cause his name to dwell there; thither shall ye bring all that I command you … Take heed to thyself that thou offer not thy burnt-offerings in every place that thou seest; but in the place which the Lord shall choose in one of thy tribes, there thou shalt offer thy burnt offerings, and there thou shalt do all that I command thee." (Vers. 4-14.)
Thus, not only in the object, but also in the place and mode of Israel's worship, they were absolutely shut up to the commandment of Jehovah. Self pleasing, self-choosing, self-will was to have an end, in reference to the worship of God, the moment they crossed the river of death, and, as a redeemed people planted their foot on their divinely given inheritance. Once there, in the enjoyment of Jehovah's land, and the rest which the land afforded, obedience to His word was to be their reasonable, their intelligent service. Things might be allowed to pass in the wilderness which could not be tolerated in Canaan. The higher the range of privilege, the higher the responsibility and the standard of action.
Now, it may be that our broad thinkers, and those who contend for freedom of will and freedom of action, for the right of private judgement in matters of religion, for liberality of mind and catholicity of spirit, will be ready to pronounce all this, which has been engaging our attention, extremely narrow, and wholly unsuited to our enlightened age, and to men of intelligence and education.
What is our answer to all who adopt this form of speech? A very simple and conclusive one; it is this, Has not God a right to prescribe the mode in which His people should worship Him? Had He not a perfect right to fix the place where He would meet His people Israel? Surely we must either deny His existence, or admit His absolute and unquestionable right to set forth His will as to how, when and where His people should approach Him. Will any one, however educated and enlightened, deny this? Is it a proof of high culture, refinement, breadth of mind or catholicity of spirit, to deny God His rights.
If then God has a right to command, is it narrowness or bigotry for His people to obey? This is just the point. It is, in our judgement, as simple as anything can be. We are thoroughly convinced that the only true breadth of mind, largeness of heart and catholicity of spirit, is to obey the commandments of God. Hence, when Israel were commanded to go to one place and there offer their sacrifices, it most assuredly was neither bigotry nor narrowness on their part to go thither, and to refuse, with holy decision, to go anywhere else. Uncircumcised Gentiles might go where they pleased; the Israel of God were to go only to the place of His appointment.
And oh! what an unspeakable privilege for all who loved God and loved one another to assemble themselves at the place where He recorded His Name! And what touching grace shines in the fact of His desiring to gather His people round Himself, from time to time! Did that fact infringe their personal rights and domestic privileges? Nay, it enhanced them immensely. God, in His infinite goodness, took care of this. It was His delight to minister to the joy and blessing of His people, privately, socially and publicly. Hence we read, "When the Lord thy God shall enlarge thy border, as he has promised thee, and thou shalt say, I will eat flesh, because thy soul longs to eat flesh, thou mayest eat flesh, whatsoever thy soul lusts after. If the place which the Lord thy God has chosen to put his name there be too far from thee, then thou shalt kill of thy herd and of thy flock, which the Lord has given thee, as I have commanded thee, and thou shalt eat in thy gates whatsoever thy soul lusts after, even as the roebuck and the hart is eaten, so thou shalt eat them; the unclean and the clean shall eat of them alike."
Here we have, most surely, a broad margin afforded by the goodness and tender mercy of God, for the fullest range of personal and family enjoyment. The only restriction was in reference to the blood. "Only be sure that thou eat not the blood; for the blood is the life; and thou mayest not eat the life with the flesh, Thou shalt not eat it; thou shalt pour it upon the earth as water. Thou shalt not eat it; that it may go well with thee, and with thy children after thee, when thou shalt do that which is right in the sight of the Lord."
This was a great cardinal principle under the law, to which reference has been made in our "Notes on Leviticus." How far Israel understood it is not the question; they were to obey that it might go well with them, and with their children after them. They were to own, in this matter, the sovereign rights of God.
Having made this exception, in reference to personal and family habits, the law-giver returns to the all-important subject of their public worship. "Only thy holy things which thou hast, and thy vows, thou shalt take, and go to the place which the Lord shall choose; and thou shalt offer thy burnt offerings, the flesh and the blood, upon the altar of the Lord thy God; and the blood of thy sacrifices shall be poured out upon the altar of the Lord thy God, and thou shalt eat the flesh." (Vers. 26, 27.)
If reason, or self-will were permitted to speak, it might say, "Why must we all go to this one place? Can we not have an altar at home? Or, at least, an altar in each principal town, or in the centre of each tribe?" The conclusive answer is, "God has commanded otherwise; this is enough for every true Israelite. Even though we may not be able, by reason of our ignorance, to see the why or the wherefore, simple obedience is our obvious and bounden duty. It may be, moreover, that, as we cheerfully tread the path of obedience, light will break in upon our souls as to the reason, and we shall find abundant blessing in doing that which is well-pleasing to the Lord our God."
Yes; reader, this is the proper method of answering all the reasonings and questionings of the carnal mind which is not subject to the law of God, neither indeed can be. Light is sure to break in upon our souls, as we tread, with a lowly mind, the sacred path of obedience; and, not only so, but untold blessing will flow into the heart in that conscious nearness to God which is only known to those who lovingly keep His most precious commandments. Are we called upon to explain to carnal objectors and infidels our reasons for doing this or that? Most certainly not; that is no part of our business; it would be time and labour lost, inasmuch as objectors and reasoners are wholly incapable of understanding or appreciating our reasons.
For example, in the matter now under our consideration, could a carnal mind, an unbeliever, a mere child of nature, understand why Israel's twelve tribes were commanded to worship at one altar — to gather in one place — to cluster round one centre? Not in the smallest degree. The grand moral reason of such a lovely institution lies far away beyond his ken.
But to the spiritual mind all is as plain as it is beautiful. Jehovah would gather His beloved people around Himself, from time to time, that they might rejoice together before Him and that He might have His own peculiar joy in them.
Was not this something most precious? Assuredly it was to all who really loved the Lord.
No doubt, if the heart were cold and careless toward God, it would matter little about the place of worship; all places would be alike. But we may set it down as a fixed principle that every loyal loving heart from Dan to Beersheba would rejoice to flock to the place where Jehovah had recorded His Name, and where He had appointed to meet His people. "I was glad when they said to me, Let us go to the house of the Lord. Our feet shall stand within thy gates, O Jerusalem [God's centre for Israel]. Jerusalem is builded as a city that is compact together; whither the tribes go up, the tribes of the Lord, to the testimony of Israel, to give thanks to the name of the Lord. For there — and nowhere else — "are set thrones of judgement, the thrones of the house of David. Pray for the peace of Jerusalem; they shall prosper that love thee. Peace be within thy walls, and prosperity within thy palaces. For my brethren and companions' sakes, I will now say, Peace be within thee. Because of the house of the Lord our God I will seek thy good." (Ps. 122.)
Here we have the lovely breathings of a heart that loved the habitation of the God of Israel — His blessed centre — the gathering-place of Israel's twelve tribes — that hallowed spot which was associated in the mind of every true Israelite with all that was bright and joyous in connection with the worship of Jehovah and the communion of His people.
We shall have occasion to refer to this most delightful theme again, when we come to study Deuteronomy 16, and shall draw this section to a close by quoting for the reader the last paragraph of the chapter before us.
"When the Lord thy God shall cut off the nations from before thee, whither thou goest to possess them, and thou succeedest them, and dwellest in their land; take heed to thyself, that thou be not snared by following them, after that they be destroyed from before thee; and that thou inquire not after their gods, saying, How did these nations serve their gods? even so will I do likewise. Thou shalt not do so to the Lord thy God; for every abomination to the Lord, which he hates, have they done to their gods; for even their sons and their daughters they have burnt in the fire to their gods. What thing soever I command you, observe to do it; thou shalt not add thereto, nor diminish from it." (Vers. 29-32.)
The precious word of God was to form a sacred enclosure round about His people, within which they might enjoy His presence, and delight themselves in the abundance of His mercy and loving-kindness; and wherein, they were to be entirely apart from all that was offensive to Him whose presence was to be, at once, their glory, their joy and their grand moral safeguard from every snare and every abomination.
Alas! alas! they did not abide within that enclosure; they speedily broke down the walls thereof, and wandered away from the holy commandment of God. They did the very things they were told not to do, and they have had to reap the terrible consequences. But more of this and of their future by-and-by.
Deuteronomy 13
This chapter abounds in most weighty principles. It consists of three distinct sections, each one of which claims our deep attention. We must not attempt to weaken the admonitory force of such a scripture, or turn aside its keen edge, by saying that it does not apply to Christians; that it is wholly Jewish in its scope and application. No doubt, primarily, it was addressed to Israel; this is so obvious as not to admit of a question. But let us not forget that it was "written for our learning;" and not only so, but the more closely we study it, the more we shall see that its teaching is of universal importance.
"If there arise among you a prophet, or a dreamer of dreams, and gives thee a sign or a wonder, and the sign or the wonder come to pass, whereof he spake to thee, saying, Let us go after other gods, which thou hast not known, and let us serve them: thou shalt not hearken to the words of that prophet, or that dreamer of dreams; for the Lord your God proves you, to know whether ye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Ye shall walk after the Lord your God, and fear him, and keep his commandments, and obey his voice, and ye shall serve him, and cleave to him. And that prophet or that dreamer of dreams, shall be put to death; because he has spoken to turn you away from the Lord your God, which brought you out of the land of Egypt, and redeemed you out of the house of bondage, to thrust thee out of the way which the Lord thy God commanded thee to walk in. So shalt thou put the evil away from the midst of thee." (Vv. 1-5)
Here we have divine provision made for all cases of false teaching, and false religious influence. We all know how easily the poor human heart is led astray by anything in the shape of a sign or a wonder, and especially when such things stand connected with religion. This is not confined to the nation of Israel; we see it everywhere and at all times. Anything supernatural, anything involving an infringement of what are called the ordinary laws of nature is almost sure to act powerfully on the human mind. A prophet rising up, in the midst of the people, and confirming his teaching by miracles, signs and wonders, would be almost sure to get a hearing, and obtain an influence.
In this way, Satan has worked in all ages, and he will work yet more powerfully, at the end of this present age, in order to deceive and lead to their everlasting destruction those who will not hearken to the precious truth of the gospel. "The mystery of iniquity," which has been working in the professing church for eighteen centuries, will be headed up, in the person of "that Wicked whom the Lord shall consume with the spirit of his mouth, and shall destroy with the brightness of his coming; even him, whose coming is after the working of Satan, with all power and signs and lying wonders, and with all deceivableness of unrighteousness in them that perish; because they received not the love of the truth, that they might be saved. And for this cause God shall send them strong delusion, that they should believe a lie; that they all might be damned who believed not the truth, but had pleasure in unrighteousness." (2 Thess. 2:8-12.)
So also, in the twenty-fourth chapter of Matthew, our Lord warns His disciples against the same kind of influence. "Then if any man shall say to you, Lo here is Christ, or there; believe it not. For there shall arise false Christs, and false prophets, and shall show great signs and wonders; insomuch that, if it were possible, they shall deceive the very elect. Behold, I have told you before." (Vers. 23-25.)
Again, in Revelation 13, we read of the second beast, coming up out of the earth, the great false prophet, the antichrist, doing great wonders, "so that he makes fire come down from heaven on the earth in the sight of men, and deceives them that dwell on the earth by means of those miracles which he had power to do in the sight of the beast; saying to them that dwell on the earth that they should make an image to the beast, which had the wound by a sword, and did live." (Vers. 13, 14.)
Now, each of the above three passages of holy scripture refers to scenes which shall be enacted after the church has been taken away out of this world; but on this we do not dwell, inasmuch as our object in quoting them for the reader is to let him see how far the devil can go in the way of signs and wonders, to lead people away from the truth; and also to set before him the one divine and therefore perfect safeguard against all the delusive power of the enemy.
The human heart has no ability whatever to resist the influence of "great signs and wonders" put forth in favour of the most deadly error. There is but the one thing which can fortify the soul, and enable it to resist the devil and all his deadly delusions, and that is the word of God. To have the precious truth of God treasured up in the heart is the divine secret of preservation from all error, even though backed up by the most astounding miracles.
Hence, in the first of the above quotations we see that the reason why people will be deceived by the signs and lying wonders of "that wicked" one is "because they received not the love of the truth, that they might be saved." It is the love of the truth that preserves from error, be it ever so persuasive, ever so fascinating, ever so strongly supported by the powerful evidence of "great signs and wonders." It is not cleverness, intellectual power, mental grasp, extensive learning; all these things are perfectly powerless in the presence of Satan's wiles and machinations. The most gigantic human intellect must fall an easy prey to the wiles of the serpent.
But, blessed be God, the craft, the subtlety, the signs and lying wonders, all the resources of Satan, all the machinery of hell are perfectly powerless with a heart that is governed by the love of the truth. A little child who knows and believes and loves the truth is blessedly shielded, sheltered and divinely preserved from the blinding and deceiving power of the wicked one. If ten thousand false prophets were to arise and perform the most extraordinary miracles that were ever presented to the human gaze, in order to prove that the Bible is not the inspired word of God, or that our Lord Jesus Christ is not God over all blessed for ever, or in order to set aside the glorious truth that the blood of Jesus Christ, God's Son, cleanses from all sin, or any other precious truth revealed in holy scripture, it could have no effect whatever on the very simplest babe in Christ whose heart is governed by the word of God. Yea, if an angel from heaven were to come down and preach anything contrary to what we are taught in the word of God, we have a divine warrant to pronounce him anathema, without any discussion or argument whatever.
This is an unspeakable mercy. It puts the simple hearted, unlettered child of God into the most blessed position — a position, not only of moral security, but of sweetest repose. We are not called upon to analyse the false doctrine, or to weigh the evidence advanced in favour of it; we reject, with stern decision, both the one and the other, simply because we have the certainty of the truth and the love of it in our hearts. "Thou shalt not hearken to the words of that prophet, or that dreamer of dreams;" — although the sign or the wonder had come to pass — "for the Lord your God proves you to know whether ye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Here, beloved reader, was the all-important point for Israel; and it is the same for us. Then, now, and always, the true moral security is in having the heart fortified with the love of the truth, which is only another way of expressing the love of God. The faithful Israelite who loved Jehovah, with all his heart and with all his soul, would have a ready and conclusive answer for all the false prophets and dreamers who might arise — a thoroughly effectual method of dealing with them. "Thou shalt not hearken." If the enemy does not get the ear, he is not likely to reach the heart. The sheep follow the Shepherd; "for they know his voice. And a stranger" — even though showing signs and wonders — "will they not follow, but will flee from him." Why? Is it because they are able to discuss and argue and analyse? No, thanks and praise to God! but because "they know not the voice of strangers." The simple fact of not knowing the voice is a sufficient reason for not following the speaker.
All this is full of comfort and consolation for the beloved lambs and sheep of the flock of Christ. They can hear the voice of their loving, faithful shepherd; they can gather round Him, and find in His presence true rest and perfect safety. He makes them to lie down in green pastures, and leads them by the still waters of His love. This is enough. They may be very weak, yea, perfect weakness in themselves; but this is no hindrance to their rest and blessing; quite the contrary, it only casts them more upon His almighty power. We need never be afraid of weakness, it is fancied strength we have to dread, vain confidence in our own wisdom, our own intelligence, our scriptural knowledge, our spiritual attainments; these are the things we have to fear; but as for our weakness, the more deeply we feel it the better, for our Shepherd's strength is made perfect in weakness, and His precious grace is amply sufficient for all the need of His beloved and blood bought flock as a whole, and for each member, in particular. Only let us keep near to Him in the abiding sense of our own perfect helplessness and nothingness; let us treasure up His precious word in our hearts, let us feed upon it, as the very sustenance of our souls, day by day, the staple article of our lives, the living bread for the strengthening of the inward man. Thus shall we be safe from every strange voice, every false prophet, every snare of the devil, every influence which might tend to draw us away from the path of obedience, and the practical confession of the Name of Christ.
We must now quote for the reader the second paragraph of our chapter, in which the Lord's people are warned against another snare of the devil. Oh! how many and varied are his snares and wiles! How manifold are the dangers of the people of God! But, blessed be His holy Name, there is full provision in His word for all.
"If thy brother, the son of thy mother," nearer, dearer and more tender than the son of the father — "or thy son, or thy daughter, or the wife of thy bosom, or thy friend which is as thine own soul, entice thee secretly, saying, Let us go and serve other gods, which thou hast not known, thou, nor thy fathers, namely, of the gods of the people which are round about you, nigh to thee, or far off from thee, from the one end of the earth even to the other end of the earth; thou shalt not consent to him, nor hearken to him; neither shall thine eye pity him, neither shalt thou spare, neither shalt thou conceal him; but thou shalt surely kill him; thine hand shall be first upon him to put him to death, and afterwards the hand of all the people. And thou shalt stone him with stones that he die; because he has sought to thrust thee away from the Lord thy God, which brought thee out of the land of Egypt from the house of bondage. And all Israel shall hear, and fear, and shall do no more any such wickedness as this is among you" (Vv. 6-11.)
Here, then, we have something quite different from the false prophet or the dreamer of dreams. Thousands might be proof against the influence of these, and yet fall before the ensnaring and seductive power of natural affection. It is very hard to resist the action of this latter. It demands deep-toned devotedness, great singleness of eye, firm purpose of heart, to deal faithfully with those who live deep down in our hearts' tender affections. The trial to some of withstanding and rejecting a prophet or a dreamer with whom there was no personal relationship, no tender link of fond affection, would be as nothing compared with having to treat with stern and severe decision the wife of the bosom, the beloved brother or sister, the devoted and tenderly loved friend.
But where the claims of God, of Christ, of truth are at stake, there must be no hesitation. If any should seek to make use of the ties of affection in order to draw us aside from our allegiance to Christ, we must resist them, with unqualified decision. "If any man come to me, and hate not his father, and mother, and wife and children, and brethren and sisters, yea, and his own life also, he cannot be my disciple." (Luke 10:26)
Let us see that we thoroughly understand this aspect of the truth, and also that we give it its proper place. If poor blind reason be listened to, it will be sure to present to the mind the most hideous perversion of this great practical subject. Reason, whenever it attempts to exercise its powers in the things of God, is sure to prove itself the active and efficient agent of the devil in opposition to the truth. In things human and earthly, reason may go for what it is worth; but in things divine and heavenly, it is not only worthless, but positively mischievous.
What then, we may ask, is the true moral force of Luke 14:26, and Deuteronomy 13:8-10? Most assuredly, they do not mean that we are to be "without natural affection," which is one of the special marks of the apostasy of the last days. This is perfectly clear. God Himself has established our natural relationships, and each of these relationships has its characteristic affections the exercise and display of which are in lovely harmony with the mind of God. Christianity does not interfere with our relationships in nature, but it introduces a power whereby the responsibilities which attach to those relationships can be duly fulfilled to the glory of God. And not only so, but in the various epistles, the Holy Ghost has given the most ample instructions to husbands and wives, parents and children, masters and servants, thus proving, in the very fullest and most blessed manner, the divine sanction of those relationships and the affections which belong to them.
All this is perfectly plain; but still we have to inquire how it fits in with Luke 14 and Deuteronomy 13? The answer is simply this. The harmony is divinely perfect. Those scriptures apply only to cases in which our natural relationships and affections interfere with the claims of God and of Christ. When they operate in this way, they must be denied and mortified. If they dare to intrude upon a domain which is wholly divine, the sentence of death must be written upon them.
In contemplating the life of the only perfect man that ever trod this earth of ours, we can see how beautifully He adjusted the various claims which as a man and a servant, He had to meet. He could say to His mother, "Woman, what have I to do with thee?" And, yet, at the fitting moment, He could, with exquisite tenderness, commend that mother to the care of the disciple whom He loved. He could say to His parents, "Wist ye not that I must be about my Father's business?" and, at the same time, go home with them and be sweetly subject to parental authority. Thus the written teachings of holy scripture, and the perfect ways of the living Christ do both combine to teach us how to discharge aright the claims of nature and the claims of God.
But it may be that the reader feels considerable difficulty in reference to the line of action enjoined in Deuteronomy 13:9-10. He may find it hard to reconcile it with a God of love, and with the grace, gentleness and tenderness inculcated in the New Testament scriptures. Here again we must keep a vigilant eye upon reason. It always affects to find ample scope for its powers in the stern enactments of the divine government; but, in reality, it only displays its blindness and folly. Still, though we would make very short work with infidel reason, we earnestly desire to help any honest soul who may not be able to see his way through this question.
We have had occasion, in our studies on the earlier chapters of this book, to refer to the very weighty subject of God's governmental dealings, both with Israel and the nations; but, in addition to what has already come under our notice, we have to bear in mind the very important difference between the two economies of law and grace. If this be not clearly apprehended, we shall find very considerable difficulty in such passages as Deuteronomy 13:9-10. The great characteristic principle of the Jewish economy was righteousness; the characteristic principle of Christianity is grace — pure, unqualified grace.
If this fact be fully grasped, all difficulty vanishes. It was perfectly right, perfectly consistent, and in perfect harmony with the mind of God for Israel to slay their enemies. God commanded them to do so. And, in like manner, it was right and consistent for them to execute righteous judgement, even to death, upon any member of the congregation who should seek to draw them aside after false gods, as in the passage before us. To do so was in full moral harmony with the grand ruling principles of government and law, under which they were placed, in accordance with the dispensational wisdom of God.
All this is perfectly plain. It runs through the entire canon of Old Testament scripture. God's government in Israel, and His government of the world, in connection with Israel was on the strict principle of righteousness. And as it was in the past, so it shall be in the future. "A king shall reign in righteousness, and princes shall rule in judgement."
But, in Christianity, we see something quite different. The moment we open the pages of the New Testament, and hearken to the teachings, and mark the actings of the Son of God, we find ourselves on entirely new ground, and in a new atmosphere. In a word, we are in the atmosphere and on the ground of pure, unqualified grace.
Thus, as a sample of the teaching, take a passage or two from what is called the Sermon on the Mount — that marvellous and precious compendium of the principles of the kingdom of heaven. "Ye have heard that it has been said, An eye for an eye, and a tooth for a tooth; but I say to you, That ye resist not evil; but whosoever shall smite thee on the one cheek, turn to him the other also. And if any man will sue thee at the law, and take away thy coat, let him have thy cloke also. And whosoever shall compel thee to go a mile, go with him twain." Again, "Ye have heard that it has been said,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nd hate thine enemy; but I say to you, love your enemies, bless them that curse you, do good to them that hate you, and pray for them which despitefully use you, and persecute you; that ye may be the sons [huioin] of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for he makes his sun to rise on the evil and on the good, and sends rain on the just and on the unjust … Be ye therefore perfect [teleioi] even as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is perfect." (Matt. 5:38-48)
We cannot now dwell upon those blessed sentences; we merely quote them for the reader in order to let him see the immense difference between the Jewish and Christian economy. What was perfectly right and consistent for a Jew, might be quite wrong and inconsistent for a Christian.
This is so plain that a child may see it; and yet, strange to say, many of the Lord's beloved people seem to be clouded on the subject. They judge it to be perfectly right for Christians to deal in righteousness, and go to war, and to exercise worldly power. Well, then, if it be right for Christians to act thus, we would simply ask, Where is it taught in the New Testament? Where have we a single sentence from the lips of our Lord Jesus Christ, or from the pen of the Holy Ghost to warrant or sanction such a thing? As we have said, in reference to other questions that have come before us in our studies on this book, it is of no possible use for us to say, "We think so and so." Our thoughts are simply worth nothing. The one grand question, in all matters of Christian faith and morals is, "What says the New Testament?" What did our Lord and Master teach, and what did He do? He taught that His people now are not to act as His people of old acted. Righteousness was the principle of the old economy; grace is the principle of the new.
This was what Christ taught, as may be seen in numberless passages of scripture. And how did He act? Did He deal in righteousness with people? Did He assert His rights? Did He exercise worldly power? Did He go to law? Did He vindicate Himself, or retaliate? When His poor disciples, in utter ignorance of the heavenly principles which He taught, and in total forgetfulness of His whole course of action, said to Him, on one occasion in the which a certain village of the Samaritans refused to receive Him, "Lord, wilt thou that we command fire to come down from heaven, and consume them, even as Elias did?" What was His answer? "He turned and rebuked them, and said, Ye know not what manner of spirit ye are of, For the Son of man is not come to destroy men's lives but to save. And they went to another village." It was perfectly consistent with the spirit, principle and genius of the dispensation of which Elias was the exponent and representative, to call down fire from heaven to consume the men sent by a godless king to arrest him. But the blessed Lord was the perfect Exponent and divine Representative of another dispensation altogether. His was a life of perfect self-surrender, from first to last. He never asserted His rights. He came to serve and to give. He came to represent God, to be the perfect expression of the Father in every way. The Father's character shone out in His every look, His every word, His every act, His every movement.
Such was the Lord Christ when He was down here among men; and such was His teaching. He did what He taught, and He taught what He did. His words expressed what He was, and His ways illustrated His words. He came to serve and to give; and His whole life was marked by those two things, from the manger to the cross. We may truly say, time would fail us to quote the passages in proof and illustration of this, nor is there any need, inasmuch as the truth of it will hardly be called in question.
Well, then, is not He our great Exemplar in all things? Is it not by His teaching and ways that our course and character as Christians are to be formed? How are we to know how we ought to walk save by hearkening to His blessed words and gazing on His perfect ways? If we as Christians are to be guided and governed by the principles and precepts of the Mosaic economy, then, assuredly, it would be right for us to go to law, to contend for our rights, to engage in war, to destroy our enemies. But then what becomes of the teaching and example of our adorable Lord and Saviour? What of the teachings of the Holy Ghost. What of the New Testament? Is it not as plain as a sunbeam to the reader that for a Christian to do these things is to act in flagrant opposition to the teaching and example of his Lord?
Here, however, we may be met by the old and oft-repeated inquiry, "What would become of the world, what would become of its institutions, what would become of society, if such principles were to be universally dominant?" The infidel historian, in speaking of the early Christians, and their refusal to join the Roman army, sneeringly inquires, "What would have become of the empire, surrounded as it was on all sides, by barbarians, if every one had indulged in such pusillanimous ideas as these?"
We reply at once, If those spiritual and heavenly principles were universally dominant, there would be no wars, no fighting, and hence, there would be no need of soldiers, no need of standing armies or navies, no need of constabulary or police; there would be no wrong doings, no strife about property, and hence no need of courts of law, judges or magistrates; in short, the world, as it now is, would have an end; the kingdoms of this world would have become the kingdoms of our Lord and of His Christ.
But the plain fact is, those heavenly principles of which we speak, are not intended for the world at all, inasmuch as the world could not adopt them, or act upon them for a single hour; to do so would involve the immediate and complete break up of the present system of things, the dissolution of the entire framework of society as at present constituted.
Hence, the objection of the infidel crumbles into dust beneath our feet, like all other infidel objections, and the questions and the difficulties which are based upon them. They are deprived of every atom of moral force. Heavenly principles are not designed for "this present evil world," at all; they are designed for the church which is not of the world, even as Jesus is not of the world. "If," said our Lord to Pilate, "my kingdom were of this world, then would my servants fight, that I should not be delivered to the Jews; but now is my kingdom not from hence."
Mark the word "now." By-and-by, the kingdoms of this world will become the kingdom of our Lord; but now He is rejected, and all who belong to Him — His church — His people are called to share His rejection, to follow Him into the outside place, and walk as pilgrims and strangers here below, waiting for the moment when He shall come to receive them to Himself, that where He is, there they may be also.
Now, it is the attempt to mix the world and the church together that produces such terrible confusion. It is one of Satan's special wiles; and it has done more to mar the testimony of the church of God, and hinder its progress than most of us are aware. It involves a complete turning of things upside down, a confounding of things that differ essentially, an utter denial of the church's true character, her position, her walk and her hope. We sometimes hear the expression, "Christian world." What does it mean? It is simply an attempt to combine two things which in their source, nature and character, are as diverse as light and darkness. It is an effort to tack a new piece upon an old garment which, as our Lord tells us, only makes the rent worse.
It is not God's object to Christianise the world, but to call His people out of the world to be a heavenly people, governed by heavenly principles, formed by a heavenly object, and cheered by a heavenly hope. If this be not clearly seen, if the truth as to the church's true calling and course be not realised as a living power in the soul, we shall be sure to make the most grievous mistakes in our work, walk and service. We shall make an entirely wrong use of the Old Testament scriptures, not only on prophetic subjects, but in reference to the whole range of practical life; indeed, it would be utterly impossible to calculate the loss which must result from not seeing the distinctive calling, position and hope of the church of God, her association and identification — her living union with a rejected, risen and glorified Christ.
We cannot attempt to enlarge upon this most precious and interesting theme; but we should just like to point out to the reader an instance or two illustrative of the Spirit's method of quoting and applying Old Testament scripture. Take, for example, the following passage from that lovely thirty-fourth Psalm: "The face of the Lord is against them that do evil, to cut off the remembrance of them from the earth." Now, mark the way in which the Holy Spirit quotes this passage in the first epistle of Peter. "The face of the Lord is against them that do evil." (1 Peter 3:12.) Not a word about cutting off. Why is this? Because the Lord is not now acting upon the principle of cutting off. He acted upon it under the law; and He will act upon it, in the kingdom, by-and-by. But, just now, He is acting in grace, and long-suffering mercy. His face is quite as much and quite as decidedly against all evil-doers as ever it was, or ever it will be, but not now to cut off the remembrance of them from the earth. The most striking illustration of this marvellous grace and forbearance, and of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principles on which we have been dwelling is seen in the fact that the very men who, with wicked hands, crucified His only-begotten and well-beloved Son — evil-doers, surely, of the most pronounced type — instead of being cut off from the earth, were the very first to hear the message of full and free pardon through the blood of the cross.
Now, it may appear to some that we are making too much of the mere omission of a single clause of Old Testament scripture. Let not the reader think so. Even had we but this one instance, it would be a serious mistake to treat it with anything like indifference. But the fact is there are scores of passages of the same character as the one just quoted, all illustrative of the contrast between the Jewish and Christian economies, and also between Christianity and the coming kingdom.
God is now dealing in grace with the world, and so should His people, if they want to be like Him, and such they are called to be. "Be ye therefore perfect, even as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is perfect" and again, "Be ye therefore imitators of God, as dear children; and walk in love, as Christ also has loved us, and has given himself for us, an offering and a sacrifice to God for a sweet smelling savour. (Eph. 5:1)
This is our model. We are called to copy our Father's example, to imitate Him. He is not going to law with the world; He is not enforcing His rights with the strong hand of power. By-and-by, He will; but just now, in this day of grace, He showers His blessings and benefits, in rich profusion, upon those whose whole life is one of enmity and rebellion against Him.
All this is perfectly marvellous; but thus it is, and we, as Christians, are called to act on this morally glorious principle. It may be said, by some, "How could we ever get on in the world, how could we conduct our business, on such a principle as this? We should be robbed and ruined; designing people would take advantage of us, if they knew that we would not go to law with them; they would take our goods, or borrow our money, or occupy our houses, and refuse to pay us. In short, we could never get on in a world like this, if we did not assert our rights and establish our claims by the strong hand of power. What is the law for but to make people behave themselves? Are not the powers that be ordained of God for the very purpose of maintaining peace and good order in our midst? What would become of society, if we had not soldiers, policemen, magistrates and judges? And if God has ordained that such things should be, why should not His people avail themselves of them? And not only so, but who so fit to occupy places of authority and power, or to wield the sword of justice as the people of God?
There is, no doubt, very great apparent force in all this line of argument. The powers that be are ordained of God. The king, the governor, the judge, the magistrate are, each in his place, the expression of the power of God. It is God who invests each with the power which he wields; it is He who has put the sword into his hand, for the punishment of evil-doers, and the praise of them that do well. We bless God with all our hearts for the constituted authorities of the country. Day and night, in private and in public, we pray for them. It is our bounden duty to obey and submit ourselves to them, in all things, provided always that they do not call upon us to disobey God, or do violence to conscience. If they do this, we must — what? Resist? Nay, but suffer.
All this is perfectly plain. The world, as it now is, could not go on for a single day, if men were not kept in order by the strong hand of power. We could not live, or at least life would be perfectly intolerable, were it not that evil-doers are kept in terror of the glittering sword of justice. Even as it is, through lack of moral power on the part of those who bear the sword, lawless demagogues are allowed to stir up the evil passions of men to resist the law of the land, and disturb the peace, and threaten the lives and property of well-disposed and harmless subjects of the government.
But, admitting all this, in the fullest possible manner, as every intelligent Christian, every one taught by scripture, most assuredly will, it leaves wholly untouched the question of the Christian's path in this world. Christianity fully recognises all the governmental institutions of the country. It forms no part of the Christian's business to interfere, in any one way, with such institutions. Wherever he is, whatever be the principle or character of the government of the country in which his lot is cast, it is his duty to recognise its municipal and political arrangements, to pay taxes, pray for the government, honour governors in their official capacity, wish well to the legislature and the executive, pray for the peace of the country, live in peace with all, so far as in him lies.
We see all this in the blessed Master Himself, in perfection, blessed be His holy Name for evermore! In His memorable reply to the crafty Herodians, He recognises the principle of subjection to the powers that be: "Render to Caesar the things that be Caesar's; and to God the things that be God's." And not only so, but we find Him also paying tribute, although personally free. They had no right to demand it of Him, as He plainly shows to Peter; and it might be said, "Why did He not appeal?" Appeal! Nay; He shows us something quite different. Hear His exquisite reply to His mistaken apostle, "Notwithstanding, lest we should offend them, go thou to the sea, and cast an hook, and take up the fish that first comes up; and when thou hast opened his mouth, thou shalt find a piece of money; that take and give to them for me and thee.* (Matt. 17.)
{*The fact that the tribute money may have been for the temple does not touch the principle set forth in the text}
And here we get back, with increased moral force, to our thesis, namely, the Christian's path in this world. What is it? He is to follow his Master — to imitate Him in all things. Did He assert His rights? Did He go to law? Did He try to regulate the world? Did He meddle with municipal or political matters? Was He a politician? Did He wield the sword? Did He consent to be a judge or a divider, even when appealed to, as we say, to arbitrate about property? Was not His whole life one of complete self-surrender, from first to last? Was He not continually giving up until, at the cross, He gave up His precious life as a ransom for many?
We shall leave these questions to find their answer deep down in the heart of the Christian reader, and to produce their practical effect in his life. We trust that the foregoing line of truth will enable him to interpret aright such passages as Deuteronomy 13:9-10. Our opposition to idolatry, and our separation from evil, in every shape and form, while not less intense and decided, most surely, than that of Israel of old, is not to be displayed in the same way. The church is imperatively called upon to put away evil, and evil-doers, but not after the same fashion as Israel. It is no part of her duty to stone idolaters and blasphemers, or burn witches. The church of Rome has acted upon this principle; and even Protestants — to the shame of Protestantism — have followed her example.* The church is not called — nay, she is positively and peremptorily forbidden to use the temporal sword. It is a flat denial of her calling, character and mission to do so. When Peter, in ignorant zeal and carnal haste, drew the sword in defence of his blessed Master, he was at once corrected by his Master's faithful word, and instructed by his Master's gracious act: "Put up thy sword into the sheath; for all they that take the sword shall perish by the sword." And having thus reproved the act of His mistaken though well-meaning servant, He undid the mischief by His gracious touch. "The weapons of our warfare," says the inspired apostle, "are not carnal, but mighty through God to the pulling down of strongholds; casting down imaginations, and every high thing that exalts itself against the knowledge of God, and bringing into captivity every thought to the obedience of Christ" (2 Cor. 10:4-5.)
{*The burning of Servetus, in 1553, for his theological opinions, is a frightful blot upon the Reformation, and upon the man who sanctioned such an unchristian proceeding. True, the opinions of Servetus were fatally and fundamentally false. He held the Arian heresy, which is simply blasphemy against the Son of God. But to burn him, or any one else for false doctrine was a flagrant sin against the spirit, genius and principle of the gospel, the deplorable fruit of ignorance as to the essential difference between Judaism and Christianity.}
The professing church has gone all astray as to this great and most important question. She has joined herself with the world, and sought to further the cause of Christ by carnal and worldly agency. She has ignorantly attempted to maintain the Christian faith by the most shameful denial of Christian practice. The burning of heretics stands as a most fearful moral blot upon the page of the church's history. We can form no adequate idea of the terrible consequences resulting from the notion that the church was called to take Israel's place and act on Israel's principles.* It completely falsified her testimony, robbed her of her entirely spiritual and heavenly character, and led her upon a path which ends in Revelation 17 and 18. Let him that reads understand.
{*It is one thing for the church to learn from the history of Israel, and another thing altogether to take Israel's place, act on Israel's principles, and appropriate Israel's promises. The former is the church's duty and privilege; the latter has been the church's fatal mistake.}
But we must not pursue this line of things further here. We trust that what has passed before us will lead all whom it may concern to consider the whole subject in the light of the New Testament, and thus be the means, through the infinite goodness of God, of leading them to see the path of entire separation which we as Christians are called to tread; in the world but not of it, even as our Lord Christ is not of it. This will solve a thousand difficulties, and furnish a grand general principle which can be practically applied to a thousand details.
We shall now conclude our study of Deuteronomy 13 by a glance at its closing paragraph.
"If thou shalt hear say in one of thy cities, which the Lord thy God has given thee to dwell there, saying, Certain men, the children of Belial, are gone out from among you, and have withdrawn the inhabitants of their city, saying, Let us go and serve other gods, which ye have not known. Then shalt thou inquire, and make search, and ask diligently; and, behold, if it be truth, and the thing certain, that such abomination is wrought among you; thou shalt surely smite the inhabitants of that city with the edge of the sword, destroying it utterly, and all that is therein, and the cattle thereof, with the edge of the sword. And thou shalt gather all the spoil of it into the midst of the street thereof, and shalt burn with fire the city, and all the spoil thereof every whit, for the Lord thy God; and it shall be an heap for ever; it shall not be built again. And there shall cleave nought of the cursed thing to thine hand; that the Lord may turn from the fierceness of his anger, and show thee mercy, and have compassion upon thee, and multiply thee, as he has sworn to thy fathers; when thou shalt hearken to the voice of the Lord thy God, to keep all his commandments which I command thee this day, to do that which is right in the eyes of the Lord thy God." (Vers. 12-18.)
Here we have instruction of the most solemn and weighty character. But the reader must bear in mind that, solemn and weighty as it most surely is, It is based upon a truth of unspeakable value, and that is Israel's national unity. If we do not see this, we shall miss the real force and meaning of the foregoing quotation. A case is supposed of grave error in some one of the cities of Israel; and the question might naturally arise, "Are all the cities involved in the evil of one?"*
{*It is, of course, needful to bear in mind that the evil referred to in the text was of the very gravest character. It was an attempt to draw the people away from the one living and true God. It touched the very foundation of Israel's national existence. It was not merely a local or municipal question, but a national one.}
Assuredly, inasmuch as the nation was one. The cities and tribes were not independent, they were bound up together by a sacred bond of national unity — a unity which had its centre in the place of the divine presence. Israel's twelve tribes were indissolubly bound together. The twelve loaves on the golden table in the sanctuary formed the beauteous type of this unity, and every true Israelite owned and rejoiced in this unity. The twelve stones in Jordan's bed; the twelve stones on Jordan's bank; Elijah's twelve stones on mount Carmel, all set forth the same grand truth — the indissoluble unity of Israel's twelve tribes. The good king Hezekiah recognised this truth, when he commanded that the burnt-offering and the sin-offering should be made for all Israel. (2 Chr. 29:24.) The faithful Josiah owned it and acted upon it, when he carried his reformatory operations into all the countries that pertained to the children of Israel. (2 Chr. 34:33.) Paul, in his magnificent address before king Agrippa, bears witness to the same truth, when he says, "Unto which promise our twelve tribes, instantly serving God, night and day, hope to come."* (Acts 26:7.) And when we look forward into the bright future, the same glorious truth shines, with heavenly lustre, in the seventh chapter of Revelation, where we see the twelve tribes sealed and secured for blessing, rest and glory, in connection with a countless multitude of the Gentiles. And, finally, in Revelation 21 we see the names of the twelve tribes engraved on the gates of the holy Jerusalem, the seat and centre of the glory of God and the Lamb.
{*It may interest the reader to know that the word rendered, in the above passage, "twelve tribes," is singular, to; dodekaphulon. It certainly gives very full and vivid expression to the grand idea of indissoluble unity which is so precious to God, and therefore so precious to faith.}
Thus, from the golden table in the sanctuary, to the golden city descending out of heaven from God, we have a marvellous chain of evidence in proof of the grand truth of the indissoluble unity of Israel's twelve tribes.
And, then, if the question be asked, where is this unity to be seen? or how did Elijah, or Hezekiah, or Josiah, or Paul see it? The answer is a very simple one, They saw it by faith; they looked within the sanctuary of God, and there on the golden table, they beheld the twelve loaves setting forth the perfect distinctness and yet the perfect oneness of the twelve tribes. Nothing can be more beautiful. The truth of God must stand for ever. Israel's unity was seen in the past, and it will be seen in the future; and though, like the higher unity of the church, it is unseen in the present, faith believes it all the same, holds it and confesses it in the face of ten thousand hostile influences.
And, now, let us look, for a moment, at the practical application of this most glorious truth, as presented in the closing paragraph of Deuteronomy 13. A report reaches a city in the far north of the land of Israel of serious error taught in a certain city in the extreme south — deadly error, tending to draw the inhabitants away from the true God.
What is to be done? The law is as plain as possible; the path of duty is laid down with such distinctness, that it only needs a single eye to see it, and a devoted heart to tread it. "Then shalt thou inquire, and make search, and ask diligently." This surely is simple enough.
But some of the citizens might say, "What have we in the north to do with error taught in the south? Thank God, there is no error taught amongst us; it is entirely a local question; each city is responsible for the maintenance of the truth within its own walls. How could we be expected to examine into every case of error which may spring up here and there all over the land; our whole time would be taken up, so that we could not attend to our fields, our vineyards, our oliveyards, our flocks and our herds. It is quite as much as we can do to keep our own borders all right. We certainly condemn the error, and if any one holding or teaching it were to come here, and that we knew of it, we should most decidedly shut our gates against him. Beyond this, we do not feel ourselves responsible to go."
Now what, we may ask, would be the reply of the faithful Israelite to all this line of argument which, in the judgement of mere nature, seems so exceedingly plausible? A very simple and very conclusive one, we may be sure. He would say it was simply a denial of Israel's unity. If every city and every tribe were to take independent ground, then verily the high priest might take the twelve loaves off the golden table before the Lord and scatter them here and there and everywhere; our unity is gone; we are all broken up into independent atoms having no national ground of action.
Besides, the commandment is most distinct and explicit, "Thou shalt inquire, and make search, and ask diligently." We are bound therefore, on the double ground of the nation's unity and the plain command of our covenant God. It is of no possible use to say there is no error taught amongst us, unless we want to separate ourselves from the nation; if we belong to Israel, then verily the error is taught amongst us, as the word says — "Such abomination is wrought among you." How far does the "you" extend? As far as the national boundaries. Error taught at Dan affects those dwelling at Beersheba. How is this? Because Israel is one.
And then the word is so plain, so distinct, so emphatic. We are bound to search into it. We cannot fold our arms and sit down in cold indifference and culpable neutrality, else we shall be involved in the awful consequences of this evil; yea, we are involved until we clear ourselves of it by judging it, with unflinching decision, and unsparing severity.
Such, beloved reader, would be the language of every loyal Israelite, and such his mode of acting in reference to error and evil wherever found. To speak or act otherwise, would simply be indifference as to the truth and glory of God, and independency as regards Israel. For any to say that they were not responsible to act according to the instructions given in Deuteronomy 13:12-18, would be a complete surrender of the truth of God, and of Israel's unity. All were bound to act or else be involved in the judgement of the guilty city.
And surely if all this was true in Israel of old, it is not less true in the church of God now. We may rest assured that anything like indifference, where Christ is concerned, is most hateful to God. It is the eternal purpose and counsel of God to glorify His Son; that every knee should bow to Him, and every tongue confess that He is Lord to the glory of God the Father. "That all should honour the Son even as they honour the Father."
Hence, if Christ be dishonoured, if doctrines be taught derogatory to the glory of His Person, the efficacy of His work, or the virtue of His offices, we are bound by every motive which could possibly act on our hearts to reject, with stern decision, such doctrines. Indifference or neutrality, where the Son of God is concerned, is high treason in the judgement of the high court of Heaven. We would not be indifferent if it were a question of our own reputation, our personal character, or our personal or family property; we should be thoroughly alive to anything affecting ourselves or those dear to us. How much more deeply ought we to feel in reference to what concerns the glory and honour, the Name and cause of the One to whom we owe our present and everlasting all — the One who laid aside His glory, came down into this wretched world, and died a shameful death upon the cross in order to save us from the everlasting flames of hell! Could we be indifferent to Him? Neutral where He is concerned? God, in His great mercy forbid!
No; reader, it must not be. The honour and glory of Christ must be more to us than all beside — reputation, property, family, friends, all must stand aside if the claims of Christ are involved. Does not the Christian reader own this, with all the energy of his ransomed soul? We feel persuaded he does even now; and oh! how shall we feel when we see Him face to face, and stand in the full light of His moral glory? With what feelings shall we then contemplate the idea of indifference or neutrality with respect to Him?
And are we not justified in declaring that next to the glory of the Head stands the great truth of the unity of His body, the church? Unquestionably. If the nation of Israel was one, how much more is the body of Christ one! And if independency was wrong in Israel, how much more wrong in the church of God! The plain fact is this, the idea of independency cannot be maintained for a moment, in the light of the New Testament. As well might we say that the hand is independent of the foot, or the eye of the ear, as assert that the members of the body of Christ are independent one of another. "For as the body is one, and has many members, and all the members of that one body, being many, are one body; so also is Christ" — a very remarkable statement, setting forth the intimate union of Christ and the church — "For by one Spirit are we all baptised into one body, whether we be Jews or Gentiles, whether we be bond or free; and have been all made to drink into one Spirit. For the body is not one member, but many. If the foot shall say, Because I am not the hand, I am not of the body; is it therefore not of the body? And if the ear shall say, Because I am not the eye, I am not of the body; is it therefore not of the body? If the whole body were an eye, where were the hearing? If the whole were hearing, where were the smelling? But now has God set the members every one of them in the body, as it has pleased him. And if they were all one member, where were the body? But now are they many members, yet but one body. And the eye cannot say to the hand, I have no need of thee; nor again, the head to the feet, I have no need of you. Nay, much more, those members of the body, which seem to be more feeble, are necessary; and those members of the body, which we think to be less honourable, upon these we bestow more abundant honour; and our uncomely parts have more abundant comeliness. For our comely parts have no need; but God has tempered the body together, having given more abundant honour to that part which lacked. That there should be no schism in the body; but that the members should have the same care one for another. And whether one member suffer, all the members suffer with it; or one member be honoured, all the members rejoice with it. NOW YE ARE THE BODY OF CHRIST, AND MEMBERS IN PARTICULAR." (1 Cor. 12:12-27.)
We do not attempt to dwell upon this truly marvellous scripture; but we earnestly desire to call the attention of the Christian reader to the special truth which it so forcibly sets before us — a truth which intimately concerns every true believer on the face of the earth, namely, that he is a member of the body of Christ. This is a great practical truth, involving, at once, the very highest privileges, and the very weightiest responsibilities. It is not merely a true doctrine, a sound principle, or an orthodox opinion; it is a living fact, designed to be a divine power in the soul. The Christian can no longer view himself as an independent person, having no association, no vital link with others. He is livingly bound up with all the children of God, all true believers, all the members of Christ's body upon the face of the earth.
"By one Spirit are we all baptised into one body." The church of God is not a mere club, or a society, an association, or a brotherhood; it is a body united by the Holy Ghost to the Head, in heaven; and all its members on earth are indissolubly bound together. This being so, it follows of necessity, that all the members of the body are affected by the state and walk of each. "If one member suffer, all the members suffer with it." That is, all the members of the body. If there is anything wrong with the foot, the hand feels it. How? Through the head. So in the church of God, if anything goes wrong with an individual member, all feel it through the Head with whom all are livingly connected by the Holy Ghost.
Some find it very hard to grasp this great truth. But there it stands plainly revealed on the inspired page, not to be reasoned about, or submitted, in any way, to the human judgement, but simply to be believed. It is a divine revelation. No human mind could ever have conceived such a thought; but God reveals it, faith believes it, and walks in the blessed power of it.
It may be the reader feels disposed to ask, "How is it possible for the state of one believer to affect those who know nothing about it?" The answer is, "If one member suffer, all the members suffer with it." All the members of what? Is it of any mere local assembly or company who may happen to know or be locally connected with the person concerned? Nay, but the members of the body wherever they are. Even in the case of Israel, where it was only a national unity, we have seen that if there was evil in any one of their cities, all were concerned, all involved, all affected. Hence, when Achan sinned, although there were myriads of people totally ignorant of the fact, the Lord said, "Israel has sinned," and the whole assembly suffered a humiliating defeat.
Can reason grasp this weighty truth? No; but faith can. If we listen to reason we shall believe nothing; but, by the grace of God, we shall not listen to reason, but believe what God says because He says it.
And oh! beloved Christian reader, what an immense truth is this unity of the body! What practical consequences flow out of it! How eminently calculated it is to minister to holiness of walk and life! How watchful it would make us over ourselves, our habits, our ways, our whole moral condition! How careful it would make us not to dishonour the Head to whom we are united, or grieve the Spirit by whom we are united, or injure the members with whom we are united!
But we must close this chapter, much as we should like to linger over one of the very grandest, most profound, and most powerfully formative truths that can possibly engage our attention. May the Spirit of God make it a living power in the soul of every true believer on the face of the earth!
출처 : https://www.stempublishing.com/authors/mackintosh/Pent/DEUT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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