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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갈라디아서강해-MR디한

갈라디아서 강해(3)

by 복음과삶 2005. 7. 2.

 

갈라디아서 강해(3)

 

M.R 디한


 

 

바울의 권위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갈 1:1)

 

신약성경 27권 중 13권이 ‘바울’이란 같은 말로 시작된다. 만일 히브리서의 바울 저작권을 인정한다면 신약성경 27권중 14권이 바울에 의해 쓰여진 셈이다. 마태는 단 한 권을 썼고, 누가는 두 권, 요한은 다섯 권, 베드로는 두 권, 유다와 야고보는 각각 한 권씩 썼다. 나머지 사도들은 어떤 종류의 문헌도 우리에게 남기지 않았다. 마가와 누가는 사도들 가운데 들지 않았고 대부분의 정보를 사도바울로부터 받았다. 사도행전은 누가에 의해 기록되었는데, 그 절반 이상이 바울의 체험과 전도여행에 관한 기록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도행전을 바울의 책으로 일컬을 수도 있다. 사도행전은 총 28장 중 17장이 바울의 생애를 다룬 것이며 15장 이후에는 다른 사도들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다른 사도들의 사역은 이제, 이방인들에 대한 바울의 사역의 그늘 아래 사라져버렸다.

 

바울적인 책

 

이상의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신약성경을 바울적인 책으로 일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은 이방인에 대한 바울의 사역을 두드러지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하늘로부터 특별한 계시로 받은 그의 독특하고 색다른 메시지로 인해 다른 사도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당시의 율법주의적 교사들의 격렬한 반대를 받았는데, 그들은 바울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그의 사도적 권위를 불신케 하고 그의 은혜의 메시지를 부인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를 고소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그 자신을 변호하고 자신의 권위가 하나님께로서 온 것임을 증명해보이라는 요청에 거듭거듭 직면했다. 그의 여러 서신이 그의 사도적 권위에 대한 선언으로 시작된다. 로마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로 시작된다. 고린도전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로 시작되고, 고린도후서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로 시작된다. 에베소서도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사도로 임명받았다는 동일한 단언으로 시작되며, 골로새서 1:1에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도적 권위를 갖게 되었다고 동일하게 주장하고 있다. 디모데전서는 “하나님과 …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로 시작된다. 디모데후서에서 또 다시 그의 사도적 권위를 주장하며, 디도서에서도 자신이 사도임을 확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갈라디아서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주목해 보라.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갈 1:1)

 

왜 이처럼 바울의 사도권이 강조되고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왜 이처름 그의 사도적 권위가 강조되고 있는가? 왜 바울은 그가 가는 곳마다 그의 사도적 권위를 변호해야만 했는가?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 의해서 선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직접 하늘로부터 사도로 임명을 받았다. 둘째로, 바울의 메시지는 예루살렘 교회에 의해 선포된 사도들의 왕국메시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바울의 사역은 배타적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이방인들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 여러가지 이유에서 바울은 유대주의 율법주의자들에게 반대를 받았으며 심지어는 예루살렘의 사도들마저 그의 사도권을 의심했다. 그들은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기를 거절했는데 그것은 가룟유다가 자살함으로써 공백이 생긴 자리를 이미 채워넣었기 때문이었다. 즉 가룟유다 대신에 이미 맛디아를 대치시켜 놓았다(행 1:15-26). 이것은 예수께서 지시하신 바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일찌기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기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바 있었다. 그것은 명령이었다. 그분의 부활 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볼 수 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예수께서)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사도들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성령을 기다리라는 엄격한 명령을 받았다. 그들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되었다. 왜냐하면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는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육신의 힘에 의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이 임하여 너희를 지시하고 인도하시기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때가 이르기 전에는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잘못될 것이다.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임하신 후에야 그들에게 주의 일을 할 능력이 덧입혀질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임하신 후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 1:8)

 

참을성 없는 베드로

 

그러나 10일은 기다리기에 너무 긴 기간처럼 보였고 그래서 베드로를 위시한 사도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무엇인가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께서 임하시면 자기들이 곧바로 일에 착수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사도들의 숫자가 더 채워지지 않고 열 한 명 뿐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베드로의 제안에 따라서 그들은 가룟유다 대신에 열두번째 사도를 선출하기로 결정했다. 성령께서 임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택하시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베드로는 자기들끼리 모여서 후보자들을 추천하고 성령의 일(사도를 세우는 일)을 처리해버리자고 제의한 것이다. 이것이 사도행전 1:15-26에 나오는 유감스런 이야기이다.

 

“그 때에(성령께서 임하시기 전에) 베드로가 … 일어서서 가로되 형제들아 …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행 1:15,16,21,22)

 

예수께서 기다리라고 명하셨는데 베드로는 어디에서 이러한 권한을 얻었는가? 누가 베드로에게 열두번째 사도는 거기에 모인 소수의 무리들 가운데서 임명되어야 한다고 말했는가? 누가 그들에게 사도를 임명할 권한을 부여했는가? 그것은 모두 육체의 힘을 따라 되어진 일이었다. 그들은 성령께서 자기들을 인도해주실 것을 기다리려 하지 않았고 자기들이 앞장서 가버렸다.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도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행 1:23)

 

후보자 명단이 제시된 후에 그들은 주께서 어느 사람을 선택하시는지 보여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헛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자기들이 뽑아놓은 두 사람의 후보자들 중에서 하나를 뽑아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왜 그들은 후보자가 될 두 사람을 그 120명 중에서 뽑아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자기들이 먼저 일을 처리한 다음, 단지 하나님께 자기들이 제시한 이 두 사람 가운데서 하나만을 뽑아달라고 구함으로써 하나님의 선택권을 그 두 사람에 제한해 버렸다. 주님 앞에 제시할 두 사람의 후보자 명단이 마련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주님께서 즉시 그 선택을 나타내 보이시도록 주님께 요구하는 것이 보다 더 쉬운 일이지 않겠는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선택권을 자유롭게 행사하시도록 허락지 않고 그 선택권을 이 두 사람에게로 제한했다. 그들은 ‘이 두 사람 중에 누구인지 보이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주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지 않으신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에 그들은 ‘제비를 뽑아’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행 1:26)

 

성령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제비를 뽑다니! 사도행전 13장에서 최초의 두 선교사들이 임명되는 것과 얼마나 다른가! 거기에는 사람들이 선출한 입후보자 명단도 없고 주사위를 던지거나 제비를 뽑는 일도 없었다. 그 대신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행 13:2)

 

하나님의 택하심 - 바울

 

하나님은 맛디아의 선택을 인정치 않으셨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는 다시는 성경 나머지에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임명을 무시하시고, 성령께서 임하신 후에 친히 바울이란 사람을 사도로 택하셨다. 그것은 사람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한 직접적인 임명이었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그의 직분에 임명되었다. 그는 디모데전서 2:7에서 자신이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신임장이 없었다

 

이 때문에 바울은 공식적인 사도로 인정받지 못했다. 예루살렘의 회중은 맛디아의 임명을 고수하면서 사도됨을 밝히는 바울의 주장을 일축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율법주의자들의 이런 도전을 받아야 했다. “바울은 사도가 아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장로들에게 세움을 받지 않았다. 그는 거짓 사도이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들에게 공식적으로 선택되지 않았고, 우리 종파에 의해 설교할 자격을 부여받지 않았고, 우리의 성직임명위원회로부터 임명받지 않았고, 우리 신학교 졸업생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어디를 가든지 직면하는 문제였으며, 바로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의 권위와 메시지와 사역방법을 끊임없이 변호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제 당신은 왜 바울이 그토록 많은 서신을 자신의 사도적 권위에 대한 선언으로 시작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갈라디아서 1장의 이 서언적인 구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바울은’라고 말한 다음 그는 다음의 괄호 속에서 자신의 사도권을 부인하려는 비난자들에게 더 이상 항변할 수 없는 강경한 답변을 덧붙이고 있다. “나는 사도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갈 1:1)

 

바울이 그의 사도적 사명을 언제 어디에서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이후에 알아보게 될 것이다. 갈라디아서의 처음 두 장은 다음의 세가지 사항에 대한 변호로 거의 전부가 할애되어 있다: 1) 그의 사역; 2) 그의 사역방법; 3) 그의 메시지. 우리는 이것들을 적절한 곳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이 장을 마치기 전에 이 갈라디아서가 전달된 교회들에 대해 잠깐 일아보도록 하자. 이 서신은 독특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바울 서신 중에서 일군(일군)의 교회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유일한 서신이기 때문이다. 다른 서신들은 디모데, 빌레몬, 디도와 같은 개인을 대상으로 쓰여졌거나, 단일 교회(로마교회, 고린도교회, 에베소교회, 빌립보교회, 골로새교회, 데살로니가교회)를 대상으로 쓰여졌다. 그러나 이 갈라디아서는 소아시아의 갈라디아 지방에 있는 몇몇 교회들에게 돌려가면서 읽혀지도록 쓰여진 회람서신이었다.

 

바울은 그의 첫번째 전도여행 시에 안디옥, 이고니온, 더베, 루스드라 성읍들에서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했었다. 이로부터 각 지역마다 지역교회가 세워지고 장로들이 임명되었으며, 그 교회들마다 새로 발견한 은혜의 자유 속에서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의심하는 거짓 스승들이 들어와서 그의 은혜의 메시지를 배척하고 이 지역의 회심자들에게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쳤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쓰게 된 경위이다. 즉 이것은, 은혜로 구원받은 다음에는 행위로 보존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율법주의자들의 거짓된 교훈에 대한 바울의 답변이다.

 

하늘로부터 계시받았으나 예루살렘의 율법적인 유대주의자들에게 배척당한 바울의 새로운 메시지는 이러했으니, 이방인들은 전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은혜로 구원받고 은혜로 보존된다는 것이었다. 바울의 메시지에 있어서 핵심적인 단어는 순전한 ‘은혜’였다. 갈라디아서의 핵심적인 대목은 3:10-12이고, 핵심 구절은 2:21이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은혜의 메시지란 예수 그리스도의 어떠하심과 그 이루신 일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믿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가 아니며 선행도 아니며 개혁이나 교육이나 계몽이나 제도가 아니다. 또한 그것은 규례나 의식, 기도나 자선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버림받은 가련한 죄인으로서, 파산하고 아무 도울 자 없는 죄인으로서 나아와, 그분의 은혜로 당신을 구원하시도록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이다. 인간은 구원받는데 있어서 어떤 조그만 몫이라도 담당하고 싶어하지만 하나님은 ‘안된다’고 말씀하신다. 당신은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결코 자랑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전적으로 주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 죄인이여, 잠잠히 있으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하라.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명백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 교회들의 문제가 여전히 우리들 가운데 존재하고 있다. 인간은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인가 해야 된다고 믿게금 되어 있다. 인간은 은혜로 구원받는 것 위에 종교나 선행, 교인이라는 신분, 종교의식, 율법의 행위 등을 덧붙인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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